정책금융공사와 반토막난거 말고 뭐가 달라졌나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산은금융지주, 즉 산업은행 민영화는 한마디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실패한 미완의 정책이었다.

 
시중은행을 인수해 민영화의 디딤돌로 삼아보려던 계획도, 우리금융지주와 합병해 메가뱅크를 만들어 보려던 방침도, 기업공개(IPO)를 통해 새로운 변신을 시도해 보려던 구상도 모두가 헛수고였다. 민유성 행장과 강만수 행장이 연이어 이 방안 저 방안을 모색해 봤지만 그들과는 별 인연이 없는 정책들이었다. 산업은행 측에서 이들 정책을 거론하기가 무섭게 때로는 여론이 등을 돌리고, 국회가 비토 놓고,금융노조가 반대하면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추진조차 해보지 못한 채 없었던 일로 접어야 했다.
 
산업은행을 정책금융공사와 반 토막 낸 것 말고는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었다. 어설픈 민영화 추진 속에 산업은행만 졸지에 표류했다.
 
정책금융공사의 등장으로 산업은행은 많은 것을 잃었다. 산업은행에서 분가해 나간 정책금융공사가 오히려 산업은행의 주주가 되면서 주인행세를 하고 나섰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정책금융공사는 산업은행이 갖고 있던 덩치 큰 자산을 절반이나 떼어 갔고 산업은행 고유의 자금조달 수단인 산업금융채권(산금채) 발행에서도 당장 불이익을 안겨 주었다. 정책금융공사가 산은보다 정부기관의 성격이 좀 더 강하다 해서 더 좋은 대우를 받았다. 정책금융공사가 발행하는 정책금융공사채권(정금채)이 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산금채보다 더 우대를 받았다. 2012년 11월14일 현재 5년물 정금채 금리는 연2.95%로 낮은 반면 산금채는 연 2.97%로 정금채 금리를 웃돌았다. 채권금리가 낮을수록 채권 값이 비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세하나마 정책금융공사가 산업은행보다 우월한 대접을 받고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었다.
 
산업은행은 채권 뿐 만 아니라 예금상품 판매에서도 날벼락을 맞았다. 민영화에 대비해 마땅히 굴릴 데도 없이 고금리의 다이렉트 예금상품을 마구 팔아댄 것이 화근이었다. 2012년 10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당장 이 문제로 큰 소리가 오갔다.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은“다이렉트 예금의 수신이 5조원을 넘었는데도 당초 서민과 중소기업을 돕는 다는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현재 대출실적이 고작 411억 원에 그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며 강만수 행장을 몰아세웠다.
 
다이렉트 예금의 금리도 문제가 됐다. 2012년9월중 5조2797억원에 달한 다이렉트 예금의 수신 금리는 연 4.25~4.50%로 꽤 높았다. 이는 시중은행 평균 조달금리인 연 2%대의 두 배에 이르는 높은 금리였다. 당연히 고객 예금이 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비싼 금리를 주고 빌려온 돈중 411억 원만 소화시켰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머지 돈은 전혀 수익을 내지 못한 채 고객들에 대한 이자지출만 가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 하여 산업은행이 아이들 머니(idle money)사태를 자초하며 거액의 손실을 떠 안고 있음이 국정감사를 통해 만방에 알려진 것이다.
 
아이들 머니란 은행 업무에서 은행원들이 여유자금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할 때를 지칭하는 용어다. 때문에 아이들 머니를 발생시킨 직원은 징계를 면할 수 없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은행 전체가 나서 아이들 머니를 발생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산업은행은 밀려드는 예금을 감당 못해 자신들 고유의 자금 조달 수단인 산금채 발행도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산금채 조달금리 역시 연3% 이내인데 반해 다이렉트 예금 금리는 연 4%를 넘어 이래저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 돼버렸다.
 
김기식 의원의 아이들머니 추궁에 강만수 산업은행장은 “대출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신용보증기금과 협약으로 (이 예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진행하는 방법을 고려중이며 대출 요원을100명으로 확충했다는 말로 공격을 피해갔다.

국정감사가 있은 후 필자는 산업은행 간부를 만나 왜 그토록 많은 다이렉트 예금을 팔아 아이들머니를 발생시켰느냐고 물었을 때 그 간부의 대답이 궁색했다. 그는 다이렉트 예금을 팔기 시작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산금채를 팔아 낮은 금리로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고 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은행의 신인도를 평가할 때 채권을 발행해 돈을 조달하면 가장 낮은 점수를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금채 비중을 줄일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반면 예금을 받아 조달한 자금에 대해선 비교적 높은 평가점수를 주기 때문에 다이렉트 예금을 팔게 된 측면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금리가 높다보니 너무 많은 돈이 몰려 걱정이라고 했다.
 
이 간부는 그러면서 다이렉트 예금의 인기가 너무 높아 국정감사 이후 수신 금리를 0.5%포인트 내렸다고 했다. 또 아이들 머니 해소를 위해선 산업은행과 거래하는 우량기업의 직원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대출에 나서고 있다는 말도 곁들였다. 아이들 머니 해소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 지난 10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조준희 기업은행장(왼쪽부터) 강만수 산업은행장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진영욱 정책금융공사사장.

산업은행의 위상이 깎여서일까. 산은지주 수장에 대한 국회의 대접도 후하지 않았다. 10월16일 국회국정감사에 출석한 강만수씨는 총재도 아니고 산은금융지주 회장도 아니었다. 일부 국회의원은 꼬박꼬박“강만수 산업은행장님”이라고 호칭했고 그가 앉은 자리의 명패도 “한국산업은행장”이라고 적혀있었다.이것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바라보는 산업은행의 현주소였다. 마치 표류하는 산업은행의 위상을 대변해 주는 호칭 처럼 보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