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말 미국 대학가는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스포츠 축제가 있다.

 
대학 풋볼 리그에서 이날만큼은 라이벌 관계에 있는 대학들이 일제히 맞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북 캘리포니아에서는 스탠포드 대 버클리(올해는 예외적으로 10월에 이미 열렸다), 동부에서는 하버드 대 예일, 텍사스에서는 오스틴과 A&M, 남 캘리포니아에서는 UCLA와 USC, 중부에서는 오하이오 스테이트(OSU)와 미시간이 일제히 맞붙는다.
 
말하자면 한국의 고연전이 미국에서는 풋볼 단일 종목으로 미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지는 셈이다. (고연전이냐, 연고전이냐는 이제 가나다순에 의한 표기가 다른 나라에서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에 부합할 것이다. 나는 이 두 학교와 아무 학연이 없음을 강조한다.)
 
단순히 NCAA 리그 상의 한 경기 차원을 넘는다. 스탠포드와 버클리는 별도의 ‘빅 게임’이란 명칭을 붙여 1892년부터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 'Beat Cal'이란 응원구호는 스탠포드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라이벌인 버클리를 이기자는 구호다. 2012년 양교의 전통적 라이벌 풋볼 경기를 맞아 마이어 도서관에 응원구호가 걸려 있다. /사진=스탠포드대 페이스북 페이지.
해당 학교 학생이나 동문만의 잔치가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의 늦가을 이벤트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의 지성인 집단이란 특성에 따라 이날 분출되는 활기는 모든 지역에서 긍정적 에너지를 증가시켜준다. 한국의 고연전에서 익히 보아온 바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도 라이벌전을 고려대와 연세대만의 전유물로 여길 게 아니라 모든 대학들이 오랜 세월 역사를 가장 많이 공유해온 다른 학교와 이런 라이벌행사를 벌여보면 어떨까 한다.
 
특히, 요즘 과거 명성을 자랑하던 지방 소재 대학들이 고전을 하고 있다는데, 재학생과 동문, 그리고 지역 주민들에게 우리 고향 자랑거리 대학이란 애착을 불어넣어주는데도 일조할 것이라고 본다.

동아대와 부산대, 경북대와 영남대, 전남대와 조선대 등 이런 학교들은 오랜 역사 속에 우수한 인재도 많이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 격동의 순간에 빠짐없이 커다란 지식인의 역할을 수행한 곳들이다. 학교와 지역의 모든 정신문화를 담아내는 이벤트가 아직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또 지역이 다소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포스텍과 KAIST는 비슷한 역사를 함께 개척하고 있는 이공계 분야의 양대 명문이다.
 
이런 학교들이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 모두에게 소문난 선의의 경쟁 상대임을 각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다만, 이 가운데 상당수 학교들이 국립으로 체육특기자를 뽑아가며 운영하는 운동부가 없기 때문에 고연전이나 미국의 11월 라이벌 전을 그대로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역의 특색에 따라 럭비나, 조정으로 해도 될 것이고, 또 굳이 특기자로 선발된 선수가 없어도 순수 아마추어 축구 시합을 가져도 될 것이다.
 
이미 성인이 된 대학생들이니 이런 행사도 학교 측에 의지하지 말고 총학생회가 중심이 돼서 학교 이웃과 긴밀히 의논해 가면서 멋지게 치러내는 것 또한 대학에서 한번 멋있게 배우게 되는 세상 공부다.
 
사족: 여기 언급한 국내 학교들은 모두 1. 가나다 2. ABC 순에 따라 표기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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