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기자] 2004년 국회 취재를 처음 했다. 그전까지는 ‘기자는 어디나 다 똑같은 기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기자가 부당하게 취재 제약을 받으면 내 회사, 남의 회사 가릴 것 없이 함께 따지고 바로잡아야 되는 것. 앞서 금융단 취재기자를 하면서 다른 회사 선배들로부터 배운 교훈이다.
 
그런데 모든 취재영역의 기자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는 걸 정치 취재를 하면서 깨닫게 됐다.
 
국회 취재를 시작한 날,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 전신) 대변인과 국회 복도에서 한바탕 붙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모 방송국 여기자와 촬영 기자에게 대변인이 “누구 허락으로 함부로 찍느냐”고 소리 지르면서 소동이 시작됐다.
 
순간, 나는 예전 금융단 선배기자들의 모습을 떠올렸고 자동적으로 “뭐가 문젭니까”라고 소란의 복판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어쩐지 주변의 다른 기자들이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느낌이 조금 들기는 했다.
 
대변인은 곧 나에게 “어디 누구냐. 명함 내놔라”며 따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정당 대변인들에게는 인사를 한번 해야 했으므로 명함을 건넸다. 이게 대변인의 성질을 더욱 긁어버렸다. 당시 내가 속한 회사는 한나라당이 ‘적대적(?)’ 언론사로 여기는 곳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몇 분 동안 대변인과 나는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헤어졌다. 구경하던 기자들은 상황이 끝나고 나서야 내게 와서 “이번에 새로 출범하는 곳입니까”라며 말을 건넸다. 취재 첫날부터 구정물 튀긴 듯한 느낌은 들었지만 지나서 생각하니 출입처 첫 출근에서 대단히 훌륭하게 내 영역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한심한 소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회사의 야당반장으로 후배 여기자 하나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내가 사고를 치고 오니 온갖 고초를 여기자가 겪게 됐다.
 
보도자료를 일부러 따돌리고 돌리는 따위야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는 짓을 대단한 ‘갑질’처럼 여긴 한나라당 당직자의 유치한 자기만족일 뿐이었다. 정당 배포물처럼 기사 쓰기 맥 빠지는 보도자료도 달리 없다.
 
그러나 아침 브리핑 때 대놓고 행패를 부리는 건 심각한 얘기였다. 남자 당직자들이 와서 여기자의 팔을 잡아당겨 브리핑 장에서 몰아냈다. 한나라당 당사도 아니고 국회에서 국회의장의 허가를 받아 취재하는 기자에게 이런 행패를 부렸던 것이다. 당시 다른 회사 누군가가 우리 여기자에게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한겨레신문 창간 때하고 하나 바뀐 게 없군요.”
 
이 때 일은 이 후배한테 지금도 본의 아니게 미안한 일로 기억되지만, 이 또한 지나서 생각하니 이 후배가 기자로서 급속도로 성장한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됐든 취재원에 접근이 안 되는 건 심각한 현실이었다. 취재 못하게 한다고 소설 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때 우리 후배한테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해준 사람이 바로 한나라당의 이정현 부대변인이었다. 국회의원인 대변인 아래 여러 사람의 당직자가 부대변인을 맡고 있는데 이정현 부대변인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 7·30 재보궐선거 순천·곡성 국회의원에 당선된 새누리당 이정현 당선인
 
오다가다 복도 한 구석에서 후배와 이 부대변인이 한참 얘기를 하는 모습도 보게 됐다. 얼마나 취재 불이익을 받는지 생생히 목격한 가운데 그의 모나지 않는 성격이 함께 작용한 배려로 풀이됐다.
 
나름 취재 채널이 생기니 아침마다 물리적 충돌을 하는 일도 없어졌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정치 취재 환경은 내편 네편을 가리는 듯한 분위기가 작용한다. 기자 본분에 비춰봐서는 아주 못마땅한 환경이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기자들의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이게 또 역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당과 언론사가 소위 ‘적대적’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기자와 취재원으로서 의기투합하는 일은 이럴 때 더 많이 생겨난다.
 
이 때가 17대 국회이고, 이정현 부대변인과 함께 부대변인 하던 사람들 가운데 ‘저쪽으로’ 줄을 선 사람들은 18대에 국회의원이 됐다.
 
‘이 쪽으로’ 선 줄을 줄곧 지켜왔던 그는 모시는 분이 크게 되고 나서도 정치판에서 얘기하는 ‘사지 출마’를 하다 여전히 원외인사로 머물렀다. 그러던 그가 2014년 7월30일 자기 당의 절대 취약지역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우리 정치는 극심한 진영논리, 정파논리로 인해 까닭 없이 과격하게 처신하는 사람이 빛을 보는 구조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국가 전체에 끼치는 손실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중후하고 두루두루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중시되는 정치 풍토 정착에 이정현 국회의원 당선인이 큰 발자취를 남겨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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