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빙그레 이글스는 상당히 화끈한 홈런포의 구단이었다. 홈런왕 장종훈을 비롯해 이강돈 강석천 등 거포들이 즐비한데다 대타로 등장하는 임주택 진상봉 또한 잠실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마구 홈런을 쏘아댔다.

 
모 기업의 주력기업처럼 정말로 폭죽같은 공격력이었다. 이런 팀 칼러는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점차 퇴색된다. 팀 이름이 빙그레 이글스에서 한화 이글스로 바뀐 시기와도 일치한다. 오렌지색 줄무늬 유니폼이 붉은 색 상의로 바뀐 것 이상으로 팀 컬러가 변했다.
 
명칭 변경은 한화그룹의 계열분리에 따른 것이다. 당시 김승연-호연 형제의 분쟁 끝에 빙그레 그룹이 본가인 한화와 빙그레로 분리되면서 프로야구팀은 본가에 남게 됐다.
 
경제를 모르는 어린 아이들의 질문에 어른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설명을 해줘야 했고 꽤 조숙한 애들은 경영권 분쟁이란 개념도 포함된 설명을 들었다. 몇몇 어른들은 갑자기 장종훈도 많이 아파지고 폭죽 같은 홈런포가 얌전해 진 것에 “집안이 안정돼야...” 하는 식으로 얼버무려야만 했다. 한화그룹의 형제분쟁을 삼척동자 가운데서도 아는 애들은 알게 된 이유가 프로야구 때문이다.
 
2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재판에서는 이와는 좀 다른 얘기가 오고 갔다. 이번에 위장계열사 여부로 문제가 된 서클K코리아의 여신담당 업체 관계자는 쏟아지는 검사의 질문에 대해 “몰랐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상속분쟁 있었다는 것은 아는가”라는 질문에도 “몰랐다”고 대답했다.
 
삼척동자도 똘똘한 애들은 알았을 일인데 경제계에서 종사하는 사람이 모른다는 게 의외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이날 재판의 담당판사 설명에서 구할 수 있다.
 
윤성원 재판장은 증인들이 선서를 하기에 앞서 “증언이 거짓이냐 아니냐는 객관적인 사실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증인의 경험에 달려 있는 것”이라며 “검사나 변호인의 질문을 잘 듣고 자신이 경험한대로 기억에 따라 답변하면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아무리 야구가 인기가 있어도 안보는 사람은 안보는 것이다. 아무리 한 기업에 대한 여신을 담당하고 있어도 오로지 담당 업무에 충실할 뿐 증권가 ‘찌라시’에 이 기업 2세들간 다툼이 어쩌고 하는 얘기에 일절 신경 안 쓰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법은 진짜로 이런 개개인의 모든 경우를 포함해서 적용된다.
 
김승연 회장에 대한 다음 재판은 오는 26일로 예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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