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용학 대농 명예회장
[초이스경제 김의태기자]작달막한 키에 ‘재계의 마당발’로 통하던 박용학 전 대농그룹 회장이 생전에 절친했던 고향친구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을 뒤따라갔다.

정 회장이 타계한지 13년이 지나서야 한 고향(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월남해 기업을 일군 동갑내기 박 전 회장(99)이 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4일 오전 발인.

박 전회장과 정 전 회장은 전경련 공식 행사에서도 함께 농담하고 다녀 분위기를 살렸으며 숙소도 옆방을 잡을 정도로 행동을 같이 했다.

대농이 면방업계를 선도하던 시절 섬유산업은 수출의 견인차역을 했다.

그가 일군 대농은 재계 30위권에 들었으며 아들인 박영일 전 대농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직전인 1989년 내외경제신문과 코리아헤럴드를 인수해 언론부문에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왜 언론사를 인수하느냐는 물음에 “아들의 기업경영에 도움이 될 것같아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인은 1935년 원산상고를 졸업한 뒤 기계회사와 비료회사 등을 잇따라 설립·운영하며 모은 돈으로 1955년 대농그룹의 전신이자 곡물·비료 수출입 업체인 대한농산을 세웠다.

이후 태평양방직과 금성방직, 한일제분 등을 잇따라 사들이며 제분·방직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갔고 1973년 ㈜대농을 설립, 그룹으로 키웠다.

대농그룹은 1960년대 쌍용그룹으로부터 금성방직과 태평방직을 사들이면서 내 면방직 업계의 대표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1969년 미도파백화점을 인수, 유통업에도 진출한 후 ㈜대농은 유통 중심 대기업으로 거듭났다. 1970년대 초 오일쇼크를 견디지 못한 ㈜대농은 법정관리 체제로 접어들었으나 10년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고인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은 박영일 전 대농그룹 회장은 미도파건설을 비롯해 10여개사를 설립·인수하며 사세를 키웠으나 과도한 차입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1997년 신동방그룹과 성원그룹이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려 하자 이를 막느라 거액을 쏟아부으면서 대농그룹은 1998년 주력기업의 최종 부도처리와 함께 그룹이 해체됐다.

고인은 1980∼83년 한국섬유산업협회장을 지냈으며 1991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영일 전 회장과 딸 선영·은희·경희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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