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부건아’(開府建牙)라는 말이 있다.

 
뜻 자체는 관부를 개설하고 깃대를 세운다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구경한 건 역사소설 ‘강희대제’에서다.
 
청나라는 앞선 명나라와 달리 황제의 아들들에게 상당히 많은 일을 시킨 왕조다.
 
명나라의 경우, 태자를 제외한 황자들은 향후 정변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인물들로 봐서 정치 참여를 금지시켰다. 각자의 봉지에서 안락한 생활을 즐기라는 거였다.
 
그러나 개국 당시의 취지와 달리 황자들이 비운 자리는 환관들이 차지해 극심한 비밀경찰 통치가 자행됐다. 신뢰를 잃은 조정은 200여년 역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하고 심지어 황제가 몽고족의 포로로 붙잡히는 대망신도 겪었다.
 
황제의 아들은 수두룩했지만 이자성의 난과 청나라의 공세에 맞서 싸울 만한 장한 자손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명의 뒤를 이은 청나라는 이와 달리, 황제의 아들들을 저마다 ‘개부건아’의 자격으로 일정한 국사를 돌아가며 맡게 했다. 4대 성조(강희제)부터는 아예 태자 책봉도 폐지해 가장 뛰어나다는 아들 이름을 비밀 액자에 숨겨 황제가 죽은 후 발표하도록 했다. 황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모든 황자들이 후계자가 되는 경쟁을 지속하도록 한 것이다.
 
강희제의 경우, 스물 네 명의 아들들에게 내무 재정 관리, 형부 비리 관리 처벌, 서역 원정 등 임무를 나누어 맡게 했다.
 
액자 속 편지 한통에 대권이 결정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황자들의 소란이 있기도 했지만 의욕이 넘쳐나는 황자들은 청나라의 강한 국력에 큰 기여를 했다. 명나라와 달리 강한 국력을 줄곧 유지해온 청나라는 오늘날의 중국에 넓은 강토를 남겨줬다. 티벳이 중국에 복속된 것 또한 청나라 때다.
 
오늘날 한국의 재벌 문화는 아직 아버지 회장의 그룹을 자녀가 물려받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아버지 눈에 돋보이기 위해 젊은 시절 형제들과 경쟁을 펼쳐 후계자가 된 회장은 대체적으로 지금에 이르러 업계에서 더욱 공고해진 지위를 누리고 있다.
 
외아들이나 장남이란 이유로 경쟁 없이 후계자가 된 회장들이라고 해서 다 실패한 건 아니지만, 형제 경쟁이 있던 곳보다 결과가 좋지 않다. 한 때 방탕하다고 소문났다가 승계 후 ‘마음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은 2세도 끝내는 위기의 벽을 넘지 못한 사례가 있다.
 
회장의 아들딸이 많아야 더 치열한 경쟁이 벌어져서 많은 경험도 쌓고 할 텐데, 요즘은 재벌 회장들조차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추세다. 자녀가 둘이나 셋이어도 아들딸 구별 말고 제대로 경쟁을 시키는 것이 바로 기업의 미래를 튼튼하게 하는 기초란 생각이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 형제간 싸움 붙이는 게 어디 속이 편하겠는가마는 지금의 한국 재벌들은 가내 속성이 예전의 왕조와 흡사한 점이 많다. 왕가의 일에는 상정(常情)이 없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대상그룹이 지난 10월17일 임창욱 회장의 차녀인 임상민 씨를 부장으로 발탁해 경영에 투입하더니 지난 3일에는 언니 임세령 씨를 특정 사업분야 상무로 임명했다.
 
▲ 대상그룹 임세령 상무(왼쪽)와 임상민 부장.
 
직위 상으론 상무가 더 높지만 그룹 핵심 업무냐 아니냐 하는 차이도 엿보인다. 두 딸에게 공평한 경쟁의 기회가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맞다면, 차기 구도 혼미라는 식으로 볼일은 아닌 듯하다. 경쟁은 당사자에게는 피곤하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득이 되는 일이다.
 
1980년대 초 모 일간지에서 연재했던 재계 총수 시리즈에서는 대상그룹의 창업주 임대홍 회장의 내용이 가장 특이했다. 일체 인터뷰에 나서지 않고 실험실에 직접 들어가는 재벌 회장으로 소개됐다. ‘미원 대 미풍’이 호암 이병철 회장 생전 3대 숙원의 하나가 된 비결일 것이다.
 
기업 문화가 독특하다고 해도 내부 경쟁의 효력은 어디서나 통하는 최고의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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