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권태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은 타고난 ‘싸움닭’이다. 정통 재무관료의 길을 걸어온 그의 경력에서는 보기 드문 성향이다.

특히 그는 한국은행에서 가장 ‘악명(?) 높은 모피아’이기도 하다. 1988년 한국은행 독립에 관해 재무부(현재의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서 다섯 명씩 나와서 포럼을 결성했는데 그는 여기서 가장 강경한 재무부 입장으로 일관했다.

 
경제 문제 뿐만 아니라 시사와 정치에서도 자신의 주관을 거리낌없이 피력한다. 당연히 사표를 항상 주머니에 넣고 사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한미 FTA에서 스크린쿼타가 문제가 되자 그는 모든 대중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영화 스타들에게 정면으로 포문을 열었다가 한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악플을 먹고사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그는 반대 주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상당히 인간적인 호감을 얻고 있기도 하다.
 
고위 관료라고 해서 생각 다른 사람에게 교묘하게 불이익을 주거나 하기보다는 자리를 마다않고 찾아가서 기탄없이 자기 생각을 던지는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눈에 한마디로 ‘쿨’한 스타일이다.
 
2010년에는 젊은 사람들이 정부의 천안함 발표를 잘 안믿고 또 4대강에도 극히 부정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대학생들의 한 동아리를 찾아갔다. 이 동아리는 영어로 진행하는 곳이어서 그의 강연 또한 영어로 진행됐다.
 
대학생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제약회사 사장으로 한국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등이 이날 강연에서 그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는데 대해서도 일일이 답변했다. OECD 대사로도 근무한 그에게 영어 강연 자체는 아무 문제도 안됐던 것이다.
 
권태신 부위원장이 그동안 재무관료, OECD 대사, 국무총리실장(장관급),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거치면서 가져온 생각들을 일체 가감없이,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최근 책을 출간했다.
 
▲ 지난 2010년 국회에 출석한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장관). /자료사진=뉴시스
 
‘내가 살고 싶은 행복한 나라’(중앙books)라는 책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도 거리낌없이 피력했다. 그러나 특히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 가장 강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오랜 재무 관료생활에서 겪은 여러 가지 이면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진념 경제부총리로부터 ‘승진 사기’를 당한 일화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을 준비하던 무렵, 한국 경제가 극히 어려웠을 때다. 북한 핵 위기와 중국의 전염병 발병, 오랜 경기 침체가 모두 중첩됐을 때다. 특히 미국은 영변 핵시설을 공격할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었는데 이것이 가장 큰 원인이 돼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내리겠다는 경고를 하고 있었다.
 
2월11일,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전망을 부정적으로 떨어뜨렸다. 다음 번 조치에서 등급을 깎겠다는 신호다. 국제금융국장이던 그는 ‘나의 공무원 생활이 여기서 끝나는구나’ 생각하며 무디스에 전화와 편지를 모두 동원해 항의했다.
 
3월4일 예고도 없이 찾아온 무디스 방문단을 만난 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반기문 외교보좌관(현 UN사무총장),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당시 중장)과 함께 미국 무디스 본사를 방문하는 사절단이 됐다.
 
권태신 국장은 “반기문 보좌관의 유창한 언변과 설득력 있는 논리에 더해 차영구 육군 중장의 별 세 개 계급장이 있는 군복이” 협상장소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3월11일 또 다른 신용평가기관인 피치와 협의하기 위해 홍콩을 방문 중에 무디스의 톰 번 부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국의 신용등급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세 사람은 홍콩 시내에서 이목에 관계없이 몇분 동안 펄쩍펄쩍 뛰었다고 한다.
 
앞서 2002년 진념 경제부총리를 수행해 무디스를 방문했을 때도 권태신 국장은 신용등급을 올려달라는 강공을 펼쳤다. 진 부총리는 “내가 국제금융국장 하나는 잘 뽑았어”라고 하며 “만약 등급이 두 단계 올라가면 1계급 특진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2주일 후 신용등급이 진짜로 Baa2에서 A3로 두 단계 올라갔다. 앞선 대화를 알고 있는 기자들이 권 국장 특진이 맞냐고 묻자 진 부총리는 “그 친구는 일을 잘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더 있어야 된다”고 발뺌(?)했다.
 
진 부총리는 퇴임하는 날 퇴임사에서 권태신 국장과 신제윤 과장(현 기획재정부 1차관)을 언급하며 당시 일을 사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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