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스타인이 연합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합창'교향곡 영상물 표지

[초이스경제 김의태기자]11월9일로 25주년이 되는 베를린 장벽 붕괴는 음악사에도 획기적인 일로 기록된다. 인류애라는 장대한 테마로 모든 교향곡의 상징이 된 베토벤의 9번 교향곡 4악장 합창부분에서 ‘환희(Freunde)의 송가’를 ‘자유(Freiheit)의 송가’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1989년  성탄절에 분단의 종식을 기념하는 특별 콘서트가 동베를린의 샤우스필하우스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열렸다.

고희를 넘긴 노익장의 번스타인은 포디엄에 올라 이 도시를 분점했던 네 나라 오케스트라, 즉 뉴욕 필·키로프 오케스트라·파리오케스트라·런던심포니와 독일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단원들로 구성된 연합 오케스트라, 그리고 합창단을 지휘했다.

합창은 젊은 시절 실러가 쓴 시에 베토벤이 곡을 붙인 것이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여, 천국의 딸들이여/ …/
시대가 엄하게 갈라놓은 것을 다시 결합시키며/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서,모든 사람들은 한 형제가 되는도다“

▲ 번스타인

번스타인은 ‘환희’를 ‘자유’로 바꿔 부르도록 지시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라는 시대적 상황도 그렇고 작곡가 본래 의도도 역시 그러하리라는 것이었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격정적으로 지휘했던 번스타인은 10개월 뒤 별들이 빛나는 창공으로 떠났다.

번스타인의 지휘자세는 발을 구르는 듯 격정적인가 하면 춤을 추는 것처럼 격렬했다. 포디엄위에서 펄쩍펄쩍 뛰어오기도 했다.

과거의 전설적 명지휘자부터 젊은 신예에 이르기까지 합창교향곡의 음반을 남기려 하지 않은 지휘자는 없었다.

번스타인이 다국적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이날 연주는 동독의 자유와 독일 통일을 넘어 인류애와 평화를 기리는 역사적 명연으로 꼽힌다.

교향곡에 최초로 성악(인성)을 배치한 합창교향곡은 훗날 후기 낭만파인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에도 영감을 주었다.

자신을 말러의 환상이라고 생각한 번스타인은 티셔츠를 입고 “나는 말러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빈에 왔다고 한다. 그는 가장 유대적인 인물로 빈 필하모닉을 이끌고 역시 유대인인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함으로써 말러를 추방한 도시 빈을 정복한 셈이 됐다.

유럽출신이 장악하다시피한 지휘계에서 번스타인은 미국의 자존심이었다. 러시아출신으로미국에 이주한 부모사이에서 태어난 번스타인은 하버드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뉴욕필하모니의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급환으로 쓰러지자 그 의 대신 지휘를 맡아 데뷔했다. 번스타인은 이 한번의 기회로 유명세를 탔고으며 1958년 뉴욕필의 음악감독에 취임했다.

▲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한 장면

번스타인은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1957)의 음악을 담당해 가장 미국적인 뮤지컬을 창작했다는 평을 받았다. 흑인 민권운동에 참여하고 월남전을 반대하는 등 한때 진보적 성향의 정치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는 지휘자이면서 피아니스트 작곡가였으며 ‘청소년음악회’를 주관하는 등 청소년들의 자상한 음악교사이기도 했다.

▲ 지난 2일(현지시간) 결혼식을 올린 MTT(오른쪽)와 그의 매니저 조슈아 마크 로비슨

번스타인 타계 이후  미국인 지휘자 맥을 이어온   마이클 틸슨 토마스(MTT)샌프란시스코심포니 음악감독이 고희를 앞두고 이달 초 38년간 동거한 파트너와 동성 결혼식을 올려 클래식계에 화제가 됐다.

중·고교를 함께 다닌 두 사람은 1970년대 초 재회한 후 동거해왔다.

흔히 MTT로 불리는 그는 미국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지휘자로 최근 말러교향곡 사이클 음반을 내놓아 21세기 새로운 말러 상을 이루었다는 평을 받았다.

▲ 리서설에서 지휘하는 MTT

MTT는 2011년 기준 연봉 203만달러를 받아 이탈리아 출신인 리카르도 무티 시카고심포니 지휘자에 이어 연봉 랭킹 2위에 올랐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