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정상결혼 불가" 진단이라도 받아야 하나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이성에 관해서는 정말 일관된 삶을 살아오고 있다. 지천명의 나이로 접어드는 동안, 어떤 여성을 꼬셔본 적도, 여성이 나를 꼬셔본 적도 없다. 몇 차례 누구한테 관심을 간접 표현했다가 아주 엄하게 야단을 맞은 적은 있다. 수 십 년 전 얘기다. 이러고 나면 누구한테 ‘들이대는’ 무모한 용기는 절대 생겨나지 않는다.

긴 얘기 필요 없고 일단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서, 여태 운전면허도 없이 사는 게 이해가 안돼서,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지만 말이 안통해서, 어떻게 저런 옷을 입고 다니나... 등 여러 가지 지적을 받아왔다.

이렇게 기본 토양조차 마련이 안됐으니 결혼은 언감생심으로 20대, 30대, 그리고 40대를 지나갔다. 지금은 신이 나에게 인생의 모든 기능을 다 인스톨해주시지는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끔 뉴스에서 결혼 안하고 멋지게 해외여행을 다니고 개인 삶을 즐기는 사람들 얘기도 하는데 나하고는 아주 다른 얘기다. 여권 기한이 지난 지 12년쯤 된다. 신문사에서 유럽출장을 가는 일이 있었는데 마침 여권이 만료됐다. 이를 핑계로 다른 기자한테 양보한 것이 그 때쯤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저출산 풍조의 주범이니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싱글세 얘기다.

불가피하게 억울한 싱글은 정상 참작되는 길은 없을까. 혹시 의사로부터 “이 사람은 변태성향으로 정상 결혼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으면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을까.

정부가 워낙 세수 확보에 혈안이 돼서 웬만해선 씨알도 안먹힐 것 같다. 괜히 ‘공인된 바바리맨’으로 전락하면 그게 더 문제다.

해당 부처에서 곧바로 “농담이 와전됐다”라고 해명을 한다. 1960년대에 태어나 보고 들으며 자란 사람에게 이러한 사태의 초기 단계는 전혀 낯설지 않다.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나왔을 때 정부는 발뺌을 한다. 여론의 비난이 빗발친다. 헛소리구나 넘어가려는 무렵에 누군가 “거기에도 일리는 있다”고 반격의 깃발을 든다. 꽤 중요한 일을 맡는 사람이다. 그 다음엔 아주 더 높은 사람이 나와서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세상은 이렇게 뒤바뀐다.

삼선개헌도 처음에는 격렬히 반대하는 김상현 의원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걱정 마시오. 정말 내가 그렇게 하면 김 의원이 앞장서서 나를 물러나게 해 주시오”라고 했다지 않는가.

더구나 ‘싱글세’는 지금 대통령 스타일을 봤을 때 더욱 우리를 근심스럽게 한다.

예전 어떤 대통령은 만약 그가 독신이었다면 그 덕택에 도입우려가 없다고 안심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은 좀 달라 보인다.

“내가 독신이라고 해서 과세를 머뭇거려서는 안된다”는 한 마디가 벌써부터 귀에 쟁쟁거리는 듯하다. 이런 말이 한번이라도 나오면 세무 공무원들은 다산 사회의 전도사, 아니 워리어로 돌변할 것이 분명하다.

뉴스에서 하도 골드미스니, 화려한 싱글이니 하는 얘기를 쏟아내니 성실하게 한 가정을 이끄는 부모들의 눈에 위화감을 심어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도입하는 세금은 ‘싱글세’가 아니라 ‘화려한 싱글세’가 돼야 마땅하다.

매달 초,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내는 날 전에는 일체 지출을 삼가며 40년째 마시는 커피우유의 지출비중을 갈수록 예사롭지 않게 느끼는 이런 한심한 싱글은 마땅히 전혀 다른 부류로 간주돼야 한다.

우리 어머니 살아 계실 때 가끔 나한테 “너를 누가 같이 살겠냐”고 하셨다. ‘엄마하고 내 또래 여자들 생각은 달라’라는 ‘내 눈의 들보’를 30대 초반까지는 갖고 있었다.

스스로 됨됨이를 헤아려 함부로 남의 댁 귀한 딸을 적응 곤란한 생으로 끌어들일 생각이 없다. 용기를 발휘해 가정을 이룩하고 지키는 가장들을 존경할 따름이다. 같은 세상에 일없이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뭐라도 보탬 될 일이 없을까는 늘 염두에 두고 산다.

기자에게 문제의 발언을 했다는 복지부 고위 공무원, 딸을 둔 아버지일 리가 없다고 본다.

지금까지 상식과 다른 얘기를 많이 듣다보니 엉뚱한 걱정까지 앞선다.

싱글세 내라고 아우성을 치니 의무 결혼을 들고 나오는 건 아닌지. 이건 정말 광화문에 석고대죄를 드려서라도 말려야 할 것이다.

내 주제에 마음에 안 맞는 짝과의 의무결혼이 싫어서 그러냐고 따질지 모르겠다. 조금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중삼중 부정문장이 독자들께 죄송하지만 그만큼 조심스럽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강제로 내 옆에 두게 될까봐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짜증이라도 부리는 수가 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그러지도 못한다. 어디 조용히 사라지고 싶지만 마치 발이 땅에 달라붙은 듯하다. 손바닥과 등에는 식은땀만 가득하다. 사랑만 받으며 살아 온 사람들은 이 난감한 괴로움을 잘 모를 것이다.

싱글세 때문에 이상한 생각까지 하게 됐다. 요즘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은 나라의 ‘세금 부족’ 때문이라는데 왜 안드로메다까지 뻗어가는 상상을 하는지...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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