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5공비리 청문회’ 장 밖에서 초선인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서 있었다. 그는 청문위원이 아니었다. 이 날 정 의원의 부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불러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 의원은 입장하는 청문위원 중에서 특히 같은 초선인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통일민주당 국회의원)에게 각별한 당부성 인사를 했다고 당시 언론은 전했다. 며칠 전 장세동 전 안전기획부장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하면서 일약 정치스타로 떠오른 노무현 의원이었다. 14년 후 대통령 후보 단일화와 지지 철회의 파동을 거칠 두 사람에게 의미심장한 만남의 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의원의 질문시간은 하루 종일 생중계 되던 당시 청문회에서 늘 프라임타임에 맞춰졌다. 이 또한 한국 정치의 숙명을 예고했다는 훗날의 소감이다.
 
정주영 회장에 대한 노무현 의원의 질문 공세는 장세동 전 부장 때와는 크게 달랐다. 장 전 부장에 대해서는 자금의 용도, 출처 등 구체적인 질문으로 기세당당하던 증인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부족해 마이크를 뺏기는 순간, 노 의원은 허탈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청문회를 진행한 사람은 노무현 의원과 같은 당 소속인 이기택 위원장이었다.
 
정주영 회장을 마주한 날 노 의원은 다소 해학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구체적 행위의 발생 시기 등을 따지기보다는 “이 돈을 그런 정치 자금에 갖다 쓰는 게 맞는 겁니까” 등 토론성의 것들이 늘었다. 이날도 질문 시간을 길게 써서 “여기가 재벌하고 토론장이야?”는 등 다른 의원들의 야유를 받았지만 노 의원의 얼굴에는 처절한 분노보다는 짓궂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줄곧 “기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업을 지키기 위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평화민주당과 통일민주당 등 야권에 주는 ‘선물’도 일부 자신의 증언에 집어넣었다.
 
▲ 1988년 5공비리 청문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통일민주당 국회의원)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일해재단에 관한 의혹을 질문하고 있다.

이 때 청문회에서는 일부 야당의원조차 정 회장에게 “증인”이라는 호칭 대신 “회장님” “증인님” 등을 써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청문회를 다녀 온 정 회장에게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에서 “뭐 그런 얘기까지 다하고 왔냐”는 볼멘 소리도 나왔다지만 재계에서는 “모처럼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 줬다”는 찬사가 나왔다. 또 다른 4대재벌 총수가 “어느 당에는 사회주의자 의원이 12명이 있어서 이런 당에는 우리가 정치자금을 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수준의 인식을 드러내던 시절에 당당히 국회에 나가 할 얘기 다 하고 줄 것도 주는 정 회장의 모습에서 ‘왕 회장’이란 말의 연원을 실감케 했다.
 
세월이 24년 흐른 지난해, 국회는 창업 재벌들의 손자를 계속해서 국회에 불렀다. ‘왕 회장’처럼 정권이 저지른 잘못에 애꿎게 엮인 것도 아니다. 이들 ‘금지옥엽’들이 서민 생활을 심하게 침해한 문제로 부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국회의 거듭된 소환에도 꿈적하지 않았다. 검찰이 기소한 내용에 따르면 국회를 무시한 죄는 벌금 몇백만원으로 털게 될 모양이다.
 
국회도 거리낄 것 없이 당당하게 나가 할 말 다하던 창업회장들의 자리에 지금 이들 2세, 3세가 앉아있다. 앉아있는 자리는 똑같아도 환경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창업회장들이 지금 2세, 3세들 나이 때 현대, 삼성 등 회사들의 기업규모는 지금에 비해 수백분의 1, 또는 수만분의 1에 불과했다.
 
수 만배로 커진 그 자리에 앉아있는 2세, 3세들의 역량이 과연 창업회장들에 비해 수만배 더 커졌을까. 책임 있게 나가서 얘기할 자리를 수백만원 벌금으로 해결하는 모습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