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아시아化가 엿보인 아시안컵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기자는 표준어를 써야하니 국민학교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하지만 1970년대 우리 어린 시절을 얘기하는데 초등학교라고 하면 그것도 느낌이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옛날 얘기할 때는 그냥 국민학교라는 옛날 말을 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릴 때 노인들은 왜 ‘소학교’라는 말을 썼을까 이해된다.

2학년 어느 토요일 종례시간에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짜장면에 대해 훈시하셨다. 짜장면은 위생이 나쁘다는 등등의 이유로 집에서 시켜먹지 말라는 당부였다. 당장 그 날 집에 가면 짜장면 시켜달라고 조를 생각이었는데 선생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마음을 바꿨다.

박정희 정부가 짜장면 값 인상을 억제하는 바람에 한국에서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화교자본이 크게 자리 잡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날의 종례는 그러한 보이지 않는 정책과 관련 있었던 건 아닌지 세월이 흘러서 추측해본다.

초등학교 2학년이라면, 토요일이 왜 좋은가를 제대로 배운 지 2년이 되는 나이다. 특히 그 해 늦가을 어느 날은 아주 흥분이 된 가운데 서둘러 집으로 달려왔다.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한국과 호주의 아주 중요한 한 판이다.

▲ 한국이 1973년 5월 28일 월드컵 예선전에서 이스라엘을 이긴 사실을 전하는 동아일보의 지면. 이 경기에 이어서 한국은 호주와 최종 예선전을 치르게 됐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화면 캡춰.

그 해 봄, 차범근이 국민적 영웅으로 우뚝 솟은 왼발 슛으로 이스라엘을 물리쳤을 때,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 축구를 정복한 줄 알았다. 매달 어린이잡지를 보고 있었는데 이 경기 장면이 표지사진으로 나왔다는 이유로 이 때부터 ‘소년중앙’에서 ‘새소년’으로 갈아탔다. 마침 새소년의 만화 ‘바벨2세’가 점점 명성을 얻어갈 무렵이다.

사실은 서독 월드컵 아시아 예선의 A조에서 우승한 것이었다. B조 우승자 호주와 홈앤드어웨이 경기를 해야 했는데 이거는 왕중왕 가리기인줄 알았지 이 조차도 예선에 불과한 줄은 몰랐었다.

가정의 TV라면 대부분 흑백TV 한 대에 모든 가족이 모여서 보던 시절이고, 집에 TV가 없어서 우리 집에서 저녁까지 보고 가던 친구네 집에 드디어 TV가 들어오기도 했었다.

화면의 호주 팀은 흰색에 검은 색 바지를 입고 있어서 우리는 서독 팀과 유니폼이 똑같다고만 여겼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노란색이 흑백화면에 하얗게 나왔던 모양이다.

서울운동장에서 낮 경기로 열린 경기는 한국이 먼저 두 골을 넣어서 관중 뿐만 아니라 시청하는 사람까지 모두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솔직하게는 우리 집 TV 앞에 앉은 인원은 형하고 내 친구까지 합쳐도 7~8명 정도 였으니 나머지 3000만 국민이 어쨌는지 눈으로 본 건 아니지만 이 정도 추측은 확신으로 몰아붙여도 될 거 같다.

그러나, 호주의 반격을 이기지 못하고 경기는 2대2로 끝나고 말았다. 그 때 어른 중에는 두 번째 골이 들어갔을 때 골키퍼 변호영까지 하프라인으로 달려 나와서 함께 환호한 걸 타박하는 분도 있었다.

시드니 원정에서 0대0, 서울에서 2대2였으니 해가 바뀐 후 중립지대인 홍콩에서 3차전이 열렸다. 여기서 1대0으로 패해 한국은 1974년 월드컵 본선에 가지 못했다.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등이 활약한 무대였다.

그 다음 1978년 대회는 예선 방식이 달라져서 아시아 최종 5강이 티켓 한 장을 다투는 자리에 한국이 합류했다. 한국은 3승4무1패로 6승2무의 이란에 뒤져 또 본선 진출을 놓쳤다.

이 때 이란의 2무는 모두 한국과의 경기다. 한국에 1패를 준 팀은 이번에도 호주였다. 시드니 원정 때 명 수문장 변호영이 부상으로 실려 나가면서 뼈아픈 패배를 당하고 돌아왔었다. 차범근이 국가대표로 활약한 것은 이 때까지였다. 1979년 독일로 떠난 그는 1986년 본선 진출 후에 한국 국가대표로 돌아오게 된다.

 

▲ 지난달 31일 한국과 호주의 아시안컵 결승 경기. /사진=뉴시스

 

2015년 아시안컵 축구대회는 한국과 호주의 결승이 열리기 전부터 ‘과연 호주가 아시아냐’라는 논란이 제기됐다. 아시아 축구회장이 자신의 발언이 완전히 왜곡됐다고 해명하기는 했지만 강한 나라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을 불평한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호주가 아시아 축구에 들어와서 가끔씩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가져간들 크게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세계 지리분류대로 따진다면, 터키는 더더욱 아시아 축구에 포함돼야 마땅하다. 터키는 한국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2002년 대회에서조차 이기지 못한 차원이 다른 축구 강국이다. 아시아에 있었다면 한국 양궁이나 태권도 같은 절대 강자로 월드컵 본선 따위 문제도 되지 않을 터키지만 유럽의 일원임을 자처해 월드컵에 나왔다 안 나왔다 한다.

국가가 유럽을 지향하는 방침을 갖고 있다 보니 터키의 축구인들이 희생을 감수하게 됐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특히 1998년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사태가 났을 때부터 아시아 지향의 새로운 국가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들은 축구 경기 한 번 더 이기고 지는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국가의 장래와 관계된 것들이다. 조만간 아시안게임에도 호주가 등장해 금메달 경쟁을 같이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축구 또한 대국적 관점에서 본다면, 강한 나라가 추가됨으로써 아시아 전체의 축구시장이 확대되는 긍정적 측면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대회 운영 면에서도 큰 성공이라는 이번 아시안컵이 이런 이치를 잘 보여준다.

한국은 명색이 이 대회 1, 2회 우승팀인데 그에 걸맞는 성실함을 보여주지 못한 적도 있다. 1992년 대회에 1진이 아닌 2진을 내보냈다가 본선도 못 나간 적이 있다. 아시아축구협회는 한국의 ‘태업’을 의심하면서 향후 아시안컵 우승팀에게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할 정도였다. 이 또한 이번 한국 팀의 선전으로 말끔히 씻겨 내려간 과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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