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미모의 기준 '다산형' 지금은 어떻게?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타이거마스크 매직 쇼’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 이리저리 돌아가던 채널이 머무르게 된다. 거기 나오는 도우미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검색해보면 연관검색어로 ‘타이거마스크 매직 쇼 미녀’가 뜬다. 한국 뿐만 아니다. 구글이나 야후에서 이 프로그램의 원제목으로 검색해도 ‘Breaking the Magician’s Code Assistants’가 연관검색어로 제공된다. 이미 이 여성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진 남성들이 전 세계적으로 들끓고 있어서 잠 못 이루는 밤에 열심히 검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타이거마스크 매직 쇼' (원제 Breaking the Magician's Code)에서 마술사는 언제나 미모의 여성들과 함께 쇼를 진행한다.

 

사실 이 여성들은 미모도 출중하지만 남자들의 문란한 상상을 자극할 옷차림을 갖추고 있다.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끌려들어가는 시선을 막을 길이 없다.

드높은 도덕성을 갖춘 마술 팬들에게는 불편함을 줄 소지가 있다. 도우미에게 선정적 차림커녕 아예 남녀분간도 안되게 곰의 탈을 뒤집어씌우면 이런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고 순수한 마술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마술사는 여태 한 사람도 없었다. 도우미에게 ‘야한 옷’이 아니라 곰의 탈을 씌우는 마술사는 쫄딱 망하는 지름길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술사가 요란한 외모의 여성을 동반하는 이유는 관객의 시선을 뺏기 위해서다. 만약 도우미가 시선을 끌어주지 못하면 사람들은 무대 위 ‘쓸데없이’ 자세한 곳까지 꿰뚫어 보게 된다.

미녀를 상자 안에 넣고 날카로운 칼로 3등분하는 공연을 하는데 맨 앞줄 관객이 “마술사 아저씨, 저 상자 완전분리가 안 되는 거네요?”라고 질문을 불쑥 던지면, 마술사는 공연을 멈추고 그날 관객 모두에게 환불해 줘야 한다. 환불 안하려고 멀쩡한 사람을 정말로 3등분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사람의 눈이 미녀에게 집착하는 본능을 마술이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 마술가가 도우미를 내세우듯, 기자는 혜리 사진으로 독자를 모은다. /사진=뉴시스

남성들은 왜 미녀에게 집착하나. 미모의 본질은 무엇인가.

생태계 이치로 따진다면, 이성에게 끌리는 것은 그만한 실용적 이유가 있어서다. 대부분의 생물 세계에서는 건강한 후손을 얻을 것 같은 대상에게 이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현재 인간 세계의 8등신 모델 같은 미녀들이 시집만 갔다하면 8남 10녀 정도는 거뜬히 낳아 줄 여성들일지... 좀 아닌 거 같다.

고대 사회에서는 확실히 인간도 다산형의 미모에게 이끌렸던 듯하다. 우리 모두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이치다.

하지만 오늘날은 모든 면에서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다. 부모님이 고대 사회의 미인 기준에 부합한 규수를 물색해 데려오면 아들은 “저는 좀 더 공부해서 성공한 뒤에 장가갈까 합니다”라고 사양한다.

그렇다고 당사자 남성들의 미인관이 집안 모두를 기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드라마나 주변에서 익히 많이 보고 듣고 해 왔다. 아들이 절세미인을 데려왔는데 어머니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어디서 불여우 같은 것이 들어와서 우리 집안 망했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상황 말이다.

얼굴값 한다는 말은 미모가 지금의 인간 사회에서는 그다지 가문의 행복과 풍요를 뜻하지 않음을 방증한다.

여성의 미모에 담긴 의미를 쉽게 결론 내기는 어려운 일일 거 같다. 사실 이렇게 심오한 문제까지 사색을 거듭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번 명절을 무지하게 할 일 없이 보내다가 이런 고민을 좀 하게 돼서 글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가설을 세워보자면, 지금의 산업사회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옛날처럼 달덩이 같고 복스러운 얼굴이 아니라, 속칭 ‘엣지 있어 보이는’ 얼굴에 요철형 신체를 추종함으로써 사회는 부가가치와 고용 기회를 창출하게 된다는 추측이다.

‘타고난 미인이 아니라 가꾼 미인이 아름답다.’ 어느 피부 관리 전문기관이 케이블TV에서 한 광고다.

미인의 기준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더 많은 관리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타고난 미인 아니어도 최고의 미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이런 시대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옛날과 달리 살벌하게 스스로를 가꾸는 미인이다보니 남성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까칠해졌다. 이 여인들에게 접근하려면 남자 또한 스스로를 부단히 다듬어야 한다. 성공의 동기부여가 여기서 비롯된다.

20세기 이후 자본주의 사회를 ‘군산복합체’라고 하는데 냉전이 사라진 지금은 ‘미인복합사회’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성형의술이 좀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로지 돈만 벌자는 그런 ‘양산형 미인’ 업종이 아니라 다각적인 행복 창출 분야로 도약할 소지도 많은 듯하다. 예뻐지긴 했는데 과연 몸에도 좋은 것인가 하는 고민은 더 많은 의학의 연구와 응용을 위한 토대가 된다.

한 사람이 다섯 가지 외모를 가지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건강과 건전한 가치관을 저해하지 않는 가운데 그런 기술이 나온다면 이걸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원래부터도 남자는 한 여자에게서 여러 개의 얼굴을 발견한다.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노 과레스끼의 소설 돈까밀로 신부님 시리즈는 내가 본 중 가장 훈훈한 소설이다. 고등학생 때 신부님과 공산주의자 읍장이라 해서 이념투쟁 얘긴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그와는 완전 다른 휴먼 스토리였다.

 

▲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노 과레스끼(1908-1968)의 소설 '작은 세상'에 등장하는 삽화.

 

마을의 성당에서 성모님 벽화를 그리기 위해 외부에서 미술가 청년을 초빙해왔다. 순결한 삶으로 예술에만 헌신해 온 청년은 도착한 첫날 주막에서 성모님의 모델이 될 완벽한 여인을 발견했다. 그 집 딸이었다. 그녀는 외지 손님인 화가에게 매우 다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벽화가 완성된 날, 마을은 격렬한 이념투쟁의 도가니에 빠져버렸다. 성모님의 모델이 된 그녀, 주막집 딸은 사실 공산당의 열렬한 전위대원이었던 것이다.

교회 원로들은 “성모님이 공산당원 얼굴을 하고 계신 사태가 벌어졌다”며 심각한 회의를 거듭했다. 성당 밖에는 공산당원들이 몰려와 화가를 격렬히 규탄했다. 그 때 화가의 눈에 그녀가 들어왔다.

“저 병신 같은 놈이 나를 파시스트들의 우상으로 모욕했다”고 그녀는 목청을 돋웠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결론은 언제나 전혀 식상하지 않는 인간의 승리다. 돈 까밀로 신부와 뻬뽀네 읍장 등 주인공들이 모두 나서 소동은 가라앉았다. 며칠 후 화가가 주막에 다시 들렀을 때 음식을 내주는 그녀는 원래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성모님은 그냥 공산당원 얼굴을 갖게 되셨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돈 까밀로에게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다른 에피소드에 이들 부부가 또 등장했는데 화가가 주로 부인에게 맞고 지내는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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