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커서 무엇이 되려고...' 고민한 옛 사람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부모가 봤을 때, 자식은 하는 일마다 마땅치 않고 불안불안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공자의 문하생 가운데 효의 상징으로 이름을 떨친 증삼(曾參), 곧 증자(曾子)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증삼을 데리고 밭일을 나갔다. 증삼의 일하는 모습이 못마땅한 나머지 화가 솟구쳐 들고 있던 농기구로 아들을 두들겨 패고 말았다. 매질이 상당히 심했는지 증삼은 그만 기절해버렸다.

아버지는 덜컥 겁이 나고 무엇보다도 증삼이 멀쩡한지 걱정됐지만 옛날 아버지들 특유의 본심을 감추는 기질부터 앞세웠다. “일도 못하는 그놈의 자식, 잘 죽었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한마디를 내뱉고 자리를 떴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증삼은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공부를 하러 스승 공자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미 밭에서의 소동을 들은 공자는 증삼이 “불효막심한 녀석”이라며 문도 열어주지 않고 꾸짖었다.

까닭은 이렇다. 부모가 종아리를 들고 온다면 당연히 맞아야겠지만 몽둥이를 들고 올 때는 이성을 잃은 것이니 피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바보같이 그걸 그냥 얻어맞았다가 몸이라도 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효중의 불효라는 것이 공자의 말씀이다.

직경 1.5cm가 넘는 고체를 아버지가 들고 있을 때는 무조건 도망치는 것이 공자님 말씀에도 부합한다는 사실을 요즘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공자나 유학의 모든 것이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도 있는데, 유학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모든 가치를 사회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놀라운 정신문화다. (사족: 증삼이 저렇게 맞고 자라서 효의 상징 증자로 성장했다는 따위의 황당한 궤변은 절대 엄금이다.)

장차 학문으로 크게 성공할 아들인데 증삼의 아버지는 지금 당장 밭일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의 잣대로 아들을 판단하고 있다.

▲ 초패왕 항우의 모습.

 

한고조 유방과 천하를 다툰 초패왕 항우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 할아버지 항연이 진시황제에 끝까지 맞서다 순국한 총사령관이었으니 아버지 또한 이 전쟁의 와중에 세상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대신해 숙부인 항량이 항우를 키웠다.

글을 가르치자 항우는 자기 이름을 쓸 줄 알게 된 후 더 이상 배우려들지 않았다. 검술은 글보다 좀 흥미를 보이는 듯 했지만 한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익힌 이상으로 배우려 하지 않았다. 병법을 가르치니 크게 기뻐하고 열의를 보였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열정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지식이나 체제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다보면 새로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을 내다보는 안목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명문거족 출신의 항우는 한때 천하를 차지했다가 동네건달, 장례식 나팔수, 떠돌이 옷감장수들로 구성된 유방의 세력에게 패망하고 말았다.

아이의 장래를 내다본다는 것은 아이 자체의 소질과 함께 다가오는 시대를 모두 가늠한다는 것이니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항우에게 지구력이 부족해도 워낙 타고난 자질이 출중해 무난한 지도자감은 된다고 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항량은 이미 진나라에 대항한 거병의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다. 난세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를 자기 자신이 열고 있었다.

자식을 제대로 못 알아보기는 항우의 숙적 유방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건달 짓이나 하는 막내아들을 두둔할 아버지는 별로 없을 것이다. 집안 살림을 지탱하는 둘째 형만 못하다고 늘 구박을 했던 모양이다. 하는 일도 없이 밥만 축내는 막내아들 유방 때문에 노인은 나중에 3년 동안 항우한테 포로로 붙잡히는 고초도 겪었다.

그러나 이 아들 덕택에 그는 노년에 태상황이라는 황제보다도 더 높은 지위를 얻게 됐다.

항량이나 유씨 노인이나, 조카나 아들의 자질을 못 알아보기는 마찬가지지만, 항량은 항우의 앞날을 이끄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고 유씨 노인은 유방이 커서 무슨 일을 하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아비가 아들의 재목을 정확히 알아봤음에도 결과를 바꾸지 못한 경우도 있다. 전국시대 조나라 명장 조사와 조괄 부자다.

조사는 진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겨 온 나라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고 아들 조괄은 병법 서적에 통달한 수재였다. 그러나 아버지 조사는 아들의 병법이 탁상공론이라고 일축했다. 자신의 사후에도 절대로 조괄이 장수로 등용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아내에게 신신당부했다.

조사가 죽고 진나라와 전국시대 최대의 전쟁인 장평 전투가 벌어졌다. 양국 모두 40만 명이 넘는 군대를 투입해 백만대군의 격전장이라고 불린 전투다. 조나라 왕이 지구전으로 버티는 노장 염파를 해임하고 조괄을 후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려고 했다.

조사의 아내이자 조괄의 어머니가 직접 임금을 찾아가 불가함을 주장했다. 왕이 뜻을 굽히지 않자 조사의 아내는 “그렇다면 패전하더라도 조씨 가문에 책임을 묻지 말아줍시오”라고 청을 해서 왕의 동의를 얻었다.

조괄이 지휘를 맡은 후 조나라 40만 대군은 섣부른 공세를 감행했다가 양도가 끊긴 채 포위됐다. 조괄은 전사했고 무수한 병력이 진나라 장수 백기에게 투항했으나 백기는 포로들의 반란이 두려워 이들을 모두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부모가 자식을 제대로 알아보느냐와 자식의 성패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만큼 사람의 일은 어떤 일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부모가 일일이 자식을 조종할 수도 없는 일이다.

차라리 앞날을 몰라서 지금의 속이 편한 것이다. 그래도 부모가 줄 수 있는 불변의 보약은 있다. 바로 긍지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긍지는 아이가 어떤 고난에 처해서도 기적 같은 저력을 발휘하는 원천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아이는 어깨너머로 이미 부모가 하는 일을 보고 배우면서 자라고 있다. 일일이 가르친 것 이상의 교육이 평생 동안 이뤄져왔다. 어차피 자식의 평생을 책임질 수도 없는 일인데, 올바른 심성 심어줘서 믿고 맡기는 것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도 상황에 따라 부모가 자식을 위해 약간의 묘수를 부리는 여지는 있다. 청나라 강희황제는 대만 원정의 일등공신 시랑에게 보답 차원에서 쓸 만한 자식이 있냐고 물었다. 시랑은 “시세륜이라는 녀석이 재주가 좀 떨어지고 나머지는 쓸 만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강희황제가 나중에 그의 아들들을 살펴보니 시랑의 대답은 거짓이었다. 그의 아들 가운데 시세륜의 재능이 월등했다. 시세륜은 어찌됐든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다고 본 아버지가 좀 못난 다른 자식들을 위해서 황제가 특별히 베푸는 기회를 활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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