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다큐스페셜, 남성 중심·일제시대 극복한 3인 여성 소개

[초이스경제 김슬기 기자] 최근 사회전반에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진 가운데 20대의 경우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64.6%, 2014년 기준)이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62%)을 뛰어넘고 있다.

이런가운데 MBC '다큐스페셜'에서는 여성의 사회진출에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던 근대기,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여성 1호'들의 이야기를 전해 눈길을 끌었다.

10일 방송계에 따르면 지난 9일 '다큐스페셜'은 최초의 여성공군 비행사 권기옥, 잡지 '신여자'를 창간한 여성문학가 김원주, 여성 교육의 선구자 김필례의 발자취를 찾았다.

먼저 일제치하시대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권기옥은 중국과 한국의 최초 여성 공군이다. 어릴 적 독립운동자금, 평남도창 폭파 사건 등 항일민족운동에 참여했던 권기옥은 일본 경찰의 요시찰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1920년 중국 상해로 향한다.

당시 공군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에 있는 항공학교를 통해 비행사 배출에 힘썼다. 권기옥은 여성을 끝내 받아주지 않던 보정, 남원에 이어 윈난항공학교에 도전했고 항공학교 윈난성 주석이자 육군강무학교 책임자였던 탕지야오의 지지를 얻어내며 입학에 성공한다. 당시 권기옥은 여성임을 숨기고 남장을 하며 고된훈련에 임하는가 하면 거기서도 일제의 감시를 피하고자 중국 본적으로 등록했다.

 

▲ 공군의 어머니, 최초의 여성 공군 비행사 권기옥 /출처=MBC 홈페이지 캡쳐

 

윈난항공학교 관계자는 "권기옥은 중국 공군 역사상 최초의 여성비행사이며 항공사업과 중국 공군에도 커다란 공헌을 했다. 이후 윈난지역의 여성 비행사들은 1980~90년대에 이르러서야 배출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당시 비행기를 살 여력이 없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상황에도 권기옥은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중국군 비행사로 참가하며 활약했다. 이에 중국정부는 그녀를 명예공군으로 추대한다. 1943년부터 중국내 우리나라 비행사들과 함께 한반도 진공작전을 계획하던 권기옥은 1945년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평생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광복 후에도 권기옥은 공군으로서의 이력을 인정받아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위촉되는가 하면 한국공군창설에 온힘을 기울여 '공군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 16년간 한국연감 발간작업을 이어오는가하면 인쇄가 어렵던 시절 사비를 털어 공군사관학교에서 책을 인쇄한다. 그녀의 전재산은 조종사가 되려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최초의 여성지인 '신여자'의 발행인이자 1세대 여성 작가, 여성 기자로 활동했던 김원주의 이야기도 전해졌다. 1920년 창간된 여성지 '신여자'에는 당대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자했던 김원주의 의지가 담겨있다. 여성 문맹률이 90~95%에 달했던 시대에 김원주는 여성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고자 여성이 쓴 글로만 지면을 채우고자 했다.

한서대 문예창작과 유진월 교수는 "당시 여성 문맹자가 많았던 시절 '신여자'를 사서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수익을 내서 다음 잡지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방송에 따르면 특히 '신여자'는 1920년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와 일제강점기 하에서 남존여비의 사상이 지배적이던 시절 여성의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 그 중에서도 김원주는 '12~13세의 어린 소녀가 처음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고 평생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명백한 악습'이라고 말하는 등 여성해방과 자유연애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펼쳐나갔다.

또한 여성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는 실력을 갖춰야 하며 억압받는 삶에서 벗어나 남성과 동등한 삶을 살아가야한다고 김원주는 주장했다.

 

▲ 1세대 여성 작가, 여성 기자로 활동했던 김원주 /출처=MBC 홈페이지 캡쳐

 

잡지 수익이 나지않는 운영난에도 신여자는 창간호부터 4호까지 꾸준히 발간됐다. 이후 남편 이노익과 이혼하면서 비난여론에 휩쓸린 김원주는 일본으로 건너간 뒤에도 유부남이었던 시인 임노월과의 스캔들로 시달렸다. 이에 그녀를 향한 따가운 시선에도 조선일보에 '나의 정조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지말라'는 내용의 신정조론을 발표해가며 자신의 신념을 이어나간다.

최초의 여성 기자로 활동했던 그녀는 33세 돌연 불가에 귀의한다. 수덕사에 입산한 김원주는 30년간 오롯이 자신의 자아완성을 위한 수행의 길을 걷는다. 이후 1960년 긴 침묵을 깨고 출간한 '어느 수도승의 회상',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이름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여성 문학가로서 인정받는다.

최근 '어느 수도승의 회상'은 미국에서 영문본으로 출간되며 해외 종교학자와 불교학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한편 여성 최초 국비 유학생인 김필례는 서울정신여학교 선생과 광주수피아 중고등학교의 교장직을 역임하며 근대 여성교육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극소수의 여성만이 교육받던 시절, 1908년 김필례는 국비로 동경유학에 올라 큰 화제를 모았다. 김필례를 시작으로 동경 유학을 감행한 여성들을 중심으로 친목단체가 만들어졌고 이들은 여성의 교육과 계몽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암울한 조국의 현실과 마주한 그녀는 광주수피아 학교의 교장으로 일하며 학생들에게 역사교육을 통한 민족정체성을 심어주고자 노력했다. 당시 조선독립을 선언한 '2.8 독립선언문'을 학생들에게 배포하면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가 하면 '3.1 독립만세운동'에도 학생들과 함께 동참하며 힘을 보탰다.

이와 더불어 여성시민운동의 시초인 YWCA 창립에 큰 공을 세우고 학생과 더불어 부녀자들의 사회참여필요성을 널리 알렸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일제에 불복종하는 학교가 폐교 처분됐던 가운데 정신여학교와 수피아학교 역시 문을 닫아야했다. 광복 이후 정신여학교의 교장으로 추대된 김필례는 제자들과 함께 학교재건에 힘쓰며 지금까지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MBC '다큐스페셜' 제작진은 "아직 여성들 삶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선입견이 존재하지만 아주 조금씩 장애물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이런 시대를 맞은 것은 그 길을 기꺼이 닦아온 선대 스승이 존재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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