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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황제'라는 별명을 얻은 중국 임금
'조선 황제'라는 별명을 얻은 중국 임금
  • 장경순 기자
  • 승인 2015.03.22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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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통치는 내팽개치고 조선 원조에만 매달린 만력제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명나라 신종 만력제는 48년을 재위했다. 명나라에서는 가장 오래 다스린 임금이다.

임금이 오래 재위하면 대개 통치가 안정되고 국력이 강해지지만 그는 예외였다. 정사는 등한히 하고 재물은 엄청나게 밝힌 혼군으로 비난을 사고 있다. 명나라가 망한 것은 만력제부터 시작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딱 하나 매우 성실하게 정무에 매달린 것이 있다. 1592년부터 일본 침략에 시달리는 조선을 군사적으로 돕는 것이었다. 체면치레로만 도운 것이 아니라 정말 열성적으로 조선을 도왔던 모양이다. 이때 조선 선조는 평안도 끝 의주로 피난해 있었다.

만력제가 참전키로 하자마자 이여송이 이끄는 4만의 명나라 원군은 평양성을 탈환하고 한양 근처까지 승승장구로 내려왔다. 지도로는 조선 육군이 잃은 땅 절반을 단번에 다시 찾은 전과다. 박석고개에서 크게 패해 기세가 꺾였지만 명나라의 조선 지원이 초기부터 어떤 수준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순국에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이 승전을 기뻐하다가 눈물을 흘렸다고 하니 명군은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6년 전쟁을 조선과 함께 싸운 것이다.

왜군이 조선을 공격하면서 “명나라로 가는 길을 빌려 달라”는 핑계를 댔으니 명분상으로 만력제가 이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명나라 사람들 눈에는 제 나라 정치는 뒷전이고 재물과 주색만 밝히는 황제가 조선 원조에는 열성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이 이상할 따름이었다. 마침내 그에게 ‘조선 황제’라는 별명이 붙게 됐다.

 

▲ 명나라 신종 만력제는 명나라 패망의 원인을 제공한 임금으로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돕는 일에는 열성적이어서 중국 사관들로부터 '조선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명나라에서 평판이 어떻든 조선에서 만력제는 인기 폭발이었다. 만약 그가 조선을 방문했다면 1960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과 같았을 것이다. 당시 환영하는 한국 국민들로 인해 그의 자동차가 고장 날 정도였다고 한다.

병자호란 때 조선 사대부들은 자기 묘비에 청나라 연호를 쓰기 싫어서 만력 연호를 그대로 쓰기도 했다. 신종은 이미 수 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도 말이다. 만력제는 아마 중국 황제 중 유일하게 자신의 연호가 사후에 외국에서도 쓰인 황제일 것이다.

중국 지도자 가운데 만력제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 또 있다. 중국 내에서 평가와는 별도로 한국에는 대단한 공헌을 한 사람이다.

대만의 건국대부 장제스 초대 총통이다. 그는 대만 총통에 앞서 한 때 중국 대륙의 통치자였다. 오늘날 중국의 주인은 그를 대륙에서 대만으로 몰아낸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중국인들은 자기들 역사의 영웅에 대해서는 국가 이념을 초월해 평가하는 경향도 있고 또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오늘날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떨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건국대부로 존경받을 만한 입장이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또한 차지하고 있던 대륙 전체를 잃게 된 객관적 사실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20여년 대륙을 다스리는 동안 대한민국이 일제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는 일에 최대의 지원자였다.

1943년 11월 카이로에서 중국의 장제스 총통은 한국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만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시아 질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세 정상은 1914년 이후 일본이 점령한 태평양 도서 일체를 박탈하고 중국으로부터 빼앗은 모든 영토를 중국에 반환, 그리고 한국에 ‘적절한 절차’에 따라 자유와 독립을 준다고 합의했다. 임시정부라는 문패를 달고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던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합류하게 된 첫 번째 순간이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2011년 4월16일 인터넷매체 데일리안에 기고한 글에서 장제스의 역할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는 루즈벨트가 류큐를 중국에 반환하겠다는 제안을 먼저 내놨는데도 여기에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오히려 합의의 세 번째 사항인 대한민국의 독립을 기습적으로 제안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강효백 교수는 “류큐에는 없는 인물, 대한민국에는 윤봉길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 장제스 중국 주석,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왼쪽부터)가 모인 1943년 11월 카이로 정상회담에서 장제스 주석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국의 독립을 제안해 정상들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일본침략군 지도부를 일거에 섬멸한 쾌거에 장제스는 “백만의 중국군대가 이루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젊은이가 해냈다”고 감격했다. 이는 곧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공동 투쟁의 동지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1943년 카이로에서 한국 독립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아쉬운 것은 외교력이 부족해 샤를르 드 골이 이끌던 프랑스 망명정부 같은 전승국 지위를 얻지 못한 것이다.

이봉창 윤봉길 두 열사의 거사가 없었다면, 한국은 일본의 침략에 편승한 전범 국가로도 몰릴 국제정세였다. 오로지 임시정부의 실력 투쟁으로 광복의 토대가 갖춰졌다.

백범일지에도 있는 시계의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거사 전 날 윤 의사가 백범 김구 선생과 손목시계를 바꾸면서 “선생님 시계가 낡았는데 저한테는 좋은 시계가 필요할 일이 없어서요”라고 얘기하고 있다. 순국을 결심한 그 어마어마한 순간에 남의 팔목에 있는 시계가 윤 의사의 눈에 들어왔다.

앞서 임시정부의 존재를 크게 알린 이봉창 의사의 거사 직전 모습도 비슷하다. “공작금을 저한테 맡기실 때 놀랐습니다. 평생 쓸모 없는 놈 취급만 받으며 살아왔는데 그런 저를 어떻게 믿고 거금을 맡기시다니.” 죽으러 가기 전날 백범에게 남긴 소회다.

대한민국은 이런 섬세한 서정을 지닌 열사들의 위대한 거사로 해방되고 건국된 것이다.

최근 유력일간지 원로기자가 자신의 논설에서 “우리는 광복과 더불어 미국의 ‘손’에 이끌려 비로소 중·일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먹고살 만한 나라’로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참담한 망발이다. 언론계 원로급 기자의 글이니 더욱 참담하다. 앞서 ‘문창극 총리 파동’에 이어 또 한 번 이 나라 언론의 빈약한 역사의식을 접하게 된다.

일제의 잔재가 가득한 시절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인가라고 추측해보기도 한다. 고질적인 정파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풀어나간 논리의 일부다. 이런 말다툼에서는 때로 표현이 심하게 나가기도 하지만, 이것은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의 선을 넘었다. 실증 역사로만 최소 2000년, 민족의 신화로는 5000년의 긍지는 완전히 실종됐고 1945년 영문도 모르고 독립한 제3세계 원주민 국가들로 우리 스스로를 전락시키고 있다.

20세기 수난의 역사를 겪긴 했지만, 한국사는 1945년 리셋, 원점 재출발한 것이 아니다. 연도도 모를 수 만 년 전 중앙아시아와 몽고를 거쳐 이 땅에 들어온 선조들이 길을 내고 작물을 뿌리면서 시작된 시민사회의 발전사는 끊어져 본 적이 없다.

한국과 중국에 대한 역사도 어느 학교 어느 선생에게 배운 것인지 의아하다. 한국은 중국에 갇혀 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거란의 감옥을 격파하고 중국에 손을 내민 것이다.

고려 문종 때인 1071년, 고려와 사대 외교를 맺고 있는 패권국 거란의 압력을 무시하고 송나라와 국교를 맺은 것이 19세기까지 지속된 한중 외교의 정형이다. 송나라가 고려에 군사적 압력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전혀 아니었다. 고려는 송과의 문화 및 경제 교류를 원하고 있었다. 세 차례 침략을 물리친 고려를 거란은 더 이상 억제하지 못했다.

이 때 형성된 무역라인은 고려의 예성강에서 송나라를 거쳐 멀리 아라비아까지 이어졌다. ‘코리아’라는 이름도 이 무역라인에서 얻게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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