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나는 선수가 하마터면 은퇴할뻔 한 현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프로야구에서는 팀을 자주 옮기는 선수를 ‘저니 맨’이라고 한다. 에이스나 간판 슬러거는 아니지만 팀 전력의 균형을 맞춰줄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다. 언제나 필요로 하는 팀이 있기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 떠돌이 신세가 된다.

요즘 한국야구에는 팬도 ‘저니 팬’이 있다. 평생 한 팀만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마음에 드는 팀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구단 이미지나 위대한 감독의 존재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저니 맨의 팀 결정이 반쯤은 구단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저니팬은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응원 팀을 정한다.

올해 저니 팬을 집중흡수한 팀은 한화이글스다. 명장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덕택이다. ‘야신’ 김성근 영입의 결단을 내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이미지까지 개선됐다. 그의 2심 재판과정을 모두 지켜봤던 기자 또한 솔직하게 “좋은 일 하나는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9일 경기에서 이성열이 역전 투런을 터뜨리는 모습. /MBC스포츠 화면캡춰.


과연 한화는 최근 몇 년의 빈약한 경기력과 전혀 다른 모습을 올해 보여주고 있다. 놀라운 투혼 자체로 전통의 팬과 올해 한화를 선택한 저니 팬들을 뿌듯하게 하고 있다.

지난 9일 LG트윈스와의 경기 도중엔 한화선수 이성열이 검색어 1위에도 올랐다.

이성열은 이 경기 전날까지 넥센히어로즈 소속이었다가 한화로 트레이드돼서 왔다. 이성열이 오기 전 한화의 팬들은 ‘변비 타선’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한화의 거포 부재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투혼과 집중력이 늘어나 볼넷도 많이 얻어내 찬스를 잡지만 한 방이 부족해 잔루가 쌓이는 경기가 반복됐던 것.

이성열은 새 팀으로 오자마자 0대3으로 뒤진 4회말 2사 1, 3루에서 대타로 등장했다. 여기서 2루타를 터뜨렸다. 이것만으로도 ‘성공한 트레이드’ 평가가 바로 나오기에 충분했다.

6회 다시 타석에 섰을 때는 팀이 한 점을 더 만회해 2대3이었다. 주자가 1루에 있었는데 여기서 그는 역전 투런 홈런을 작렬했다. 드라마의 중심을 완전히 한화 쪽으로 묶어두는 한방이었다. 나중에 LG가 1점을 쫓아가긴 했지만, 이 경기는 한화가 이겨야만 된다는 정서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한화가 5대4로 승리했다.

박진감 가득한 경기이긴 하지만 막중국사에 임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야구위원회(KBO)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야구 경기 하나하나를 다 봐야 되느냐.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공정위가 중시해야 되는 건 배경의 이야기다.

이성열은 하마터면 지난겨울 선수생활을 그만둘 뻔 했다. 이렇게 경기장에서 펄펄 나는 선수가.

2014년 시즌이 끝나고 그는 자유계약선수(FA)를 선언했다. FA 제도는 프로야구 선수 계약의 노비문서화를 없애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을 얻기 위해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도 1970년대까지 선수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 강제로 경력이 끝장나버린 비운의 스타도 등장했다.

FA 시장에 나온 이성열이지만 그를 찾는 팀이 없었다. 기량은 지난 9일 모든 야구팬들이 목격한 그대로다. 익히 알려진 실력이기 때문에 그날 경기에도 나섰던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팀들이 이성열을 데려가지 못한 건 해괴한 FA 규정 때문이다.

현행 제도에서 원래 팀 아닌 데서 FA 선수와 계약을 하면, 이 팀은 원래 팀에 그 선수의 연봉 300%를 지불해야 한다. 명색이 자유계약선수인데 데려간 댓가를 지불한다니 참으로 웃기는 노릇이다. 이러면서 뻔뻔하게 ‘자유계약’이란 명칭을 붙이고 있다.

쓸 만한 선수인줄은 아는데 그 선수를 영입하자니 경기력과 비교해 구단이 감당할만한 지출 범위를 초과해 버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매년 이성열과 같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선수들이 속출한다.

그나마 한국사회는 ‘온정주의’라는 것이 멍청한 제도의 빈틈을 채워준다. 새 팀을 못 찾은 선수들을 원 소속팀이 다시 데려가기는 하지만, 공짜는 없다. 마치 FA 선언에 대한 죄를 묻듯 연봉이 깎이기도 한다.

이성열의 경우는, 마땅히 FA가 됐어야 할 선수를 트레이드로 처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두 명 에이스를 제외하면, FA란 있으나마나한 제도요, 은퇴 전까지 새로운 팀, 새로운 팬을 만나는 건 오직 구단의 트레이드 명령으로만 가능한 형편이다.

요즘 취업난이 심각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직장을 고를 때 내가 원하는 회사에 지원을 해서 다른 포부가 생기면 원하는 날 그만두거나 다른 직장으로 옮겨간다. 야구 선수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직장도 마음대로 못 고르지만, 다른 직장으로 옮겨가는 자유 또한 허울만 좋은 FA제도에 간신히 의지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다.

뭔가 올바른 쪽으로 변화를 주려고 하면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 사람들 심정을 맞춰주려고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절충안’이란 것으로 결론이 난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미봉책이 빚어내는 폐해는 계속 누적된다. 그걸 고치기 위해 또다시 소모적인 논쟁이 발생한다.

프로야구 FA제도가 딱 그런 식이다. 그래서 프로야구 선수계약도 노비계약이란 비난이 나온다.

더욱 한심한 것은 야구의 노비 계약에는 ‘악덕 승자’가 없다는 점이다. 선수들이 마음대로 팀을 못 옮긴다는 얘기는 팀이 원하는 선수를 마음껏 데려올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지금 FA제도는 절대로 프로야구단들 탐욕의 결과가 아니라 멍청함의 결과인 것이다. 누가 저렇게 멍청하게 만들었는지도 한심하지만, 여전히 못 고치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매일 저녁 다섯 개 방송국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중계한다. 이런 날들이 매년 6개월간 이어진다.

이렇게 국민과 밀접한 스포츠에서 불공정한 요소가 남아있다면 이것을 당국이 과연 좌시해야 하는가. 당국을 논하기 이전에 이 나라 굴지의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는 야구 스스로가 원시적인 제도를 손질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9일 2루타 홈런을 때린 이성열은 지난 겨울 소속 팀을 못 찾을 뻔 했었다. 그런 선수가 이성열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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