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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부터 토토가까지...'90년대 열풍'이 갖는 의미
건축학개론부터 토토가까지...'90년대 열풍'이 갖는 의미
  • 김슬기 기자
  • 승인 2015.04.21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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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문화적으로 가장 여유롭던 시대...향후 X세대의 역할은?
▲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초이스경제 김슬기 기자] 최근 문화계는 90년대의 화려한 귀환이 돋보인다. 지난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이 4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으는가 하면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케이블 채널에서는 유례없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기획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가 최고시청률 35.9%를 나타냈고 90년대 유명곡이 실시간 음원차트를 점령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MBC '다큐스페셜'이 문화계에서 불고 있는 90년대 열풍의 의미를 전해 눈길을 끌고 있다.

21일 방송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다큐스페셜'은 '90년대와의 인터뷰'편을 통해 그 시절을 추억하고 현재와 미래에 있어 90년대가 갖는 의미에 대해 전했다.

무한도전의 '토토가'는 특히 30~40대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제는 엄마가 된 아이돌 멤버 SES 슈의 등장에 자신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고 20년간 무대에 서지 않았던 터보 김정남을 통해 자신의 찬란했던 대학 시절을 떠올린다.

90년대를 배경으로 다룬 웹툰 '찌질이의 역사' 작가 김풍씨는 "무한도전 '토토가'의 관객들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것이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90년대 초창기만 해도 굉장한 호황 같은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영화감독 장항준씨는 "지금에 비해 그 때는 돈이 너무 쉽게 벌리던 때다. 당시 음반 판매량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가 계속 발전만 할 줄 알았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지금은 오히려 모든 게 정체돼있는 느낌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학창시절을 장래에 대한 공포로 살아왔던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던 시대였고 취업 자체가 아니라 어느 회사를 갈 지 고민했던 시대를 살았다"고 전한다.

1990년대 문화는 X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X세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의 과도기를 보내면서 가장 풍성하고 찬란했던 청춘시절을 보냈다. 숫자에 의미를 담았던 삐삐부터 성공의 상징이었던 핸드폰, 서태지 음악이 흘러나오는 워크맨, 전화선을 연결해야만 했던 PC통신까지 이제는 모두 아련한 추억이 됐다.

실체가 규명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X세대를 처음으로 언급한 광고감독 김태곤은 "당시 20대를 이해하기 위한 분석에서 시작했다.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했는데 공통적인 관심사가 없었다. 각자가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세대였다"고 회상한다.

장항준 감독은 "당시 처음으로 한 세대의 명칭을 부여했던 것이 X세대다"고 언급했으며 가수 김원준씨는 "당시 음악 프로그램에서 관객들이 모두 X모양의 손동작을 하고 있던 것이 생각난다. 그만큼 자신들은 다르고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가장 순수한 시대에 청년들을 넉넉하게 품어주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대학로에서 90년대를 배경으로 만든 연극이 30~40대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제작자 이재준씨는 "이 연극은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90년대 대치동 학원가를 누볐던 햄버거세대의 소소한 일상이다. 물론 일상적이고 깊이가 얕다는 평도 있다. 반면 우리 세대는 전쟁을 겪어본 세대도, 민주화항쟁을 했던 세대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굉장히 큰 문제고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한다.

90년대 들어 학생운동에도 큰 변화를 맞았다. 당시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용진씨는 "당시 등록금 시위를 벌이다 명지대 1학년 학생이 정경에게 맞아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생들은 정권의 잔혹함을 규탄하고 책임지라고 전면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학생운동에 피곤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학생운동의 열기가 식어갔다"고 회상한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학의 공기는 급격히 바뀐다. 몇 년 터울의 젊은이들은 대학이란 한 공간 안에서도 어색한 사이가 됐다.

X세대, 신세대로 불렸던 젊은이들은 여느 때보다 자기욕망에 충실하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했다. 30~40대가 된 그들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건설사에서 근무하는 41세 송석곤씨는 레고 동호회 사람들과 키덜트 페어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살아간다. 전자회사 부장인 43세 김요한씨 역시 영화 '에일리언 2'에 나온 기기에서 착안한 레고작품을 만드는 게 취미다. 이처럼 유년시절 즐기던 장난감, 만화 등을 다시 찾는 세대를 중심으로 성장한 키덜트 시장은 연간 7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최근 도시생활을 벗어나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경기도 양평에 집을 지은 41세 손종호씨는 "인천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전셋값을 7000만원 올려달라기에 집을 짓는 것을 마음먹었다. 토지매입까지 총 3억3000만원 정도 들었다. 솔직히 아파트에 살 여건도 안됐지만 비싼 값을 주고 사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은 아이들이 또래와 어울려 놀 수 있고 여유가 많이 생겨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40세 박진완씨는 "예전에는 이웃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피해서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이웃과 음식을 나눠먹고 등교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아빠들이 힘을 모아 비가림막을 만든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최근 제주도로 떠난 30~40대는 지난해 기준 5000명이 넘는다. 제주도 전입인구 50%수준이다.

한편 잇따른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되는 청춘들은 활기차고 희망적이었던 90년대를 동경하기도 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열심히 일해도 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수 없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1999년 22.5%에서 2013년 53.2%로 늘었다.

정덕현 문화예술평론가는 "지금 젊은이들에겐 희망이 없고 큰 것 꿈꾸기보다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 꿈이 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90년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97년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회사가 도산했다. 회사 선배가 '10년간 즐겁게 살았으니 10년간 죽어라 고생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너무 미웠는데 그게 현실이 됐고 불황은 20년간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IMF 경제위기는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가치관은 크게 바꿔놨다.

김풍 웹툰작가는 "97~99학번이 IMF 시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다. 작품 캐릭터에서도 표현됐지만 실제 아버지의 성격이 원리원칙을 중시하시는 분이었다. 당시 회사의 회계업무를 맡으셨던 아버지가 연대보증 책임을 지게 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모두 도망치는 상황에서 성실하게 살아왔던 사람만 피해를 입었고 그것을 보며 '아버지처럼 사는 게 정답은 아니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IMF 앞에서 무너졌던 아버지들의 인생에서 자녀들은 성실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달리 생각하게 됐다. 이와 더불어 압축성장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부실공사와 정밀 안전점검의 부재로 15년 만에 붕괴됐던 성수대교, 매장을 늘리기 위해 건물 벽과 기둥을 없애면서 붕괴된 삼풍백화점, 컨테이너 박스 불법증축과 스티로폼 내벽으로 만든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19명의 학생이 목숨을 잃었던 씨랜드 사건까지 사회 곳곳에선 속도만을 중시했던 경제발전의 허상이 드러났다.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씨는 "지금 우리가 유럽에서 좋다고 하는 제도들은 그 나라 국민소득 1만불~2만불이던 시대에 만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대에 소비만 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큰 흐름을 볼 때 90년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세대가 50대 정도 됐을 때는 좋은 한국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20대 때 펼쳐서 만들지 못했던 다양성 시대를 40~50대에는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고 내다봤다.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과 교수는 "90년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경제, 문화, 정치적으로 가장 세련되고 여유롭고, 희망이 가득했던 시기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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