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속의 애환 1] 노인들에게 ARS란 딱딱한 아가씨

 어느 직장을 막론하고 콜센터나 고객만족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애환은 가슴 절절하다. 상담을 하다 보면 별의별 고객이 다 있기 때문이다. 통상 대 고객 업무를 하다보면 고맙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고객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고객이 더 많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때로는 상담원에게 욕설도 마다 않는 고객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 더한 모욕을 주는 고객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 숱한 애환을 가슴에 묻고 하나의 인생스토리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있다. 개개인이 겪은 사례를 하나하나 묶어 한편의 책으로 출간시킨 사람들이 있다. 바로 키움증권 고객만족센터 직원들이다. 이들이 상담 현장에서 체험했던 조각조각의 소식을 모아 ’작은 소리 하나까지‘라는 책을 출간해 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어느 교수님의 강의보다도 진정 배울 게 많은 인생 교과서가 되고 있다. 책속에 담긴 절절한 사연들을 ‘초이스 경제’가 발췌해 연재한다. <편집자 주>

 <사례 1>한 할아버지 고객의 소박한 민원 "제발 사람이 전화좀 받아줘" 

어느 날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십니까? 키움증권 ooo입니다.”
“직원연결해줘요~ 만날(맨날) 똑같은 아가씨 말고 ...”

나는 무슨 소린가 하는 마음에 “예, 제가 직원인데?”라고 말했고,
할아버지는, “어어~ 아이고 왜 이렇게 사람 목소리 듣기가 힘들어? 그래도 이렇게 사람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좋아! 아가씨가 내 업무 좀 처리해줘. 만날 전화하면 딱딱한 아가씨가 받으니까 그 아가씨 바꾸지 말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딱딱한 아가씨란 ARS기계음을 말씀하시는 거다.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니 또다른 당부사항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목소리 이쁘게(예쁘게) 하려고 하지마. 그런 목소리는 이제 지겨워... 그냥 아가씨가 평소 친구랑 통화하듯이 해줘~”
 순간 망설였지만, 목소리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더니, “그래 그래. 그렇게 해줘”라며 만족해하셨다.
 “요즘 전화를 하면 똑같은 말만 반복되고 미치겠어. 버튼 누르라고 해서 또 똑같은 말만 반복한단 말이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단 말이야...(중략)”

할아버지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기분좋은 미소가 번졌다. 그러면서도 나이드신 분들이 종종 전화연결이 안될 때 이런 고충이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욱이 우리 회사는 지점이 없다 보니 대부분 업무를 유선 상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통화 지연이 되면 이러한 불만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많다.

나도 여러 가지 업무로 고객센터에 전화할 때가 있는데 가끔 기계음으로만 나오면 안내되는 멘트에 대해 되물을 수 없어 신경이 많이 쓰인다. 또 그 멘트를 듣고 있자면 형식적이고 딱딱한 말투는 그만 듣고 빨리 따뜻한(?)상담원이 연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아마 나이가 많으신 고객분들은 이렇게 기계로 대체되는 “안내 문화”에 더 낯설어 하실 것이다.

 할아버지를 통해 삭막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그래도 편리한 기계보다는 인간적인 정을 선호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있다는 걸 느꼈다. 기계적으로 녹음된 멘트는 오히려 고객들의 귀를 피곤하게 하고, 맞춤형 상담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한 명의 고객과 통화할 때마다 고객의 입장에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더 친절하고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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