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제일 무서웠던 "엄마 도망간다"는 말, 한동안 잊고 살다가

▲ 1960년대 생들의 어머니를 가장 잘 표현해 준것은 1990년대 MBC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다. '그리운 어머니'라는 코너에서 주인공의 동료장병들은 저마다 이제 곧 나올 분이 "우리 어머니가 확실하다"고 능청을 떨어준다. 주인공이 밝혀지면 "너의 부모가 곧 나의 부모"라는 심정으로 모두들 축하해 준다. /사진=유투브 캡쳐.

 

[초이스경제 장경순의 만필세상] 올해 어버이날에는 잔혹동시라는 것이 등장해서 한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저런 소식을 모아보니 어린 아이가 쓴 것은 맞는 것 같고, 시는 시일 뿐 아이는 이걸 현실과 구분 안하는 어른들이 더 무섭다는 반응을 보인 듯하다.

영화 ‘펄프 픽션’이 유명해진 1990년대부터 엽기라는 소재가 문화 각 방면에 자리 잡고 있는 추세는 분명하다. 현재 국내에서도 한 밤중에 방영되는 만화 ‘심슨스’ 곳곳에도 엽기 코드가 들어 있다.

호머 인생에서 최대 낙원 모의 술집에 위생 검사관이 들이닥쳐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뭐가 문제냐며 따지는 모에게 검사관이 대답하는 말.

“봐요. 여기 내 전임자 시체도 여태 누워 있잖아요.”

이날의 주제는 술집 리모델링을 통해 모와 호머의 부인 마지가 갑자기 가까워졌으나 마지는 호머와의 부부애를 재확인한다... 뭐 그런건데, 이렇게 3초 동안 지나가는 엽기 코드를 끼워 넣는다. 이전 이후 스토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시청자는 어떻게 저런 발상이 순간 들어갈 수 있느냐며 뒤집어지게 웃으면 되는 장면이다.

아무리 그렇지만 이번 잔혹동시는... 그래도 엄마인데.

이것이 우리 1960~1970년대 아동들의 정서다. 무조건 우리 기준에만 맞춰놓고 요즘 애들이 다 잘못했다 논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 우리는 왜 엄마에 대해서 절대불가침의 대상으로 모셔놓고 살고 있는지.

우리 시대 엄마를 풍자한 요즘 개그코너가 하나 있다. 케이블채널 tvN 코미디빅리그의 ‘국제시장7080’이다. 우리 엄마는 이 코너 속 엄마처럼 기세등등하게 살았던 분은 아니지만, 몇몇 장면은 “다른 집 엄마들도 저랬구나”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대표적으로 엄마가 잘 들리지도 않는 푸념을 쉴 새도 없이 늘어놓는 장면. 행여 들려도 뭔 소린지 알 수도 없는 데 엄마는 뭔가를 계속 내뱉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가 몹시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100% 확신했고, 80%는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가게 갈 테니 10원(70년대 생들에게는 100원)만 달라는 말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때다.
 

▲ 코미디 빅리그 '국제시장 7080'에서 엄마로 나온 개그맨 정현수가 70년대 엄마들의 주특기 끊임없는 넋두리를 하고 있다. /사진=tvN 홈페이지 화면캡쳐.
▲ 엄마의 넋두리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귀를 기울이는 아버지와 아들. /사진=tvN 홈페이지 화면캡쳐.

 

이 코너에서는 엄마가 시장을 보는 모습도 나온다. 지금처럼 단위포장에 정찰제가 매겨진 때도 아니었다. 상인이 자기 마음대로 가격을 정하는데 사실 손님과의 흥정에서 물러날 생각까지 해서 매긴 값이다. 통의동 살 때는 금천교시장, 통인동으로 와서는 통인시장. 100미터는 훨씬 넘는 시장의 허름한 가게들을 들를 때마다 엄마는 한 번도 부르는 값대로 산 적이 없다.

코빅 코너에서는 엄마로 나온 남자 코미디언이 “더 너! 더 너!” 외치면서 봉투가 뜯어지도록 콩나물을 집어넣는데 이건 코믹하게 연출한 것이다. 모든 생필품이 아쉽던 그 시절 얘기다.

요즘은 재래시장에 가서 야채를 살 때, 주인 할머니가 감당도 안 되게 많이 주기 때문에 오히려 당혹하게 된다.
 

수십년 잊고 살았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

숙제를 안하고 게으름부리거나 하면 엄마는 바로 파리채를 집어 들고 해결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선생님이 나를 한 달 동안 지켜본 끝에 엄마를 호출하거나, 아버지하고 한바탕 크게 다툰 후 뭔가 나만 잘못한 거 같지 않을 때 엄마는 가장 무서운 말을 했다.

“자꾸 이러면 엄마 도망간다.”

엄마가 도망을 가다니... 엄마 없으면 내가 얼마나 막막한 처지가 되는 지, 사실은 그거보다 더 앞서는 생각이 있었다. 저 불쌍한 우리 엄마가 도망을 간다니 혼자서 어떻게 살려고...

진짜 엄마가 도망을 갔으면 나는 아마 학교고 집이고 다 버리고 길바닥으로 엄마 찾아다니려고 했을 거다.

▲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의 모습. 김혜자는 1970년대 어머니 연기의 대명사다. /사진=뉴시스

우리 시대 엄마들, 거의 모든 분들이 아마 도망가느냐 마느냐 임계점에 서 본 적이 있었던 거 같다. 그 때 엄마들은 이 세상에 가정법원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아버지하고 다퉈서 친정집에 가면 큰 외삼촌이 바로 데리고 돌아와서 무조건 아버지한테 빌라고 야단을 치던 세상이다.

세월이 바뀌면서 먹을 것 입을 것도 많아지고 어릴 때 기억들도 점점 희미해졌다.

제일 무서워했던 그 말도 몇 십 년을 잊고 살았다. 내 나이 마흔이 넘어 엄마가 난소암 판정을 받았는데 상태가 상당히 안 좋다고 했다. “진짜로 우리 버리고 도망가려나 보다.” 잊었던 얘기가 그때 다시 기억났다.

그 때부터 1년 반을 투병하다 엄마는 떠났다. 그래도 그동안 수술은 잘 돼서 한 때 왕성한 식욕을 되찾은 때도 있고 예전보다 차라리 속 편하게 지냈던 적도 있다. 아주 힘들어지기 전까지는 엄마가 병을 고쳐보려는 용기를 잃지 않아서 지금은 우리 버리고 도망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엄마 도망간다는 말을 우리는 제일 무서워했다. 우리가 엄마에 대해서만큼은 일체의 엽기 코드를 적용할 수 없는 철벽같은 정서적 장벽이다. 빈말로라도 엄마한테는 못된 소리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디씨인사이드 같은 험한 표현이 덕담처럼 오가는 공간에서도 엄마에 대한 못 된 표현은 살벌한 응징을 받는 장면도 수 차례 봤다.

요즘 사춘기 애들 키우는 엄마들도 대부분 1970년대 생이다. 아이들에게 도망간다고 겁을 주는 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를 절감하며 자란 사람들이다. 젊은 엄마들은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몰두를 했나보다. 도망가는 불쌍한 엄마보다는 슈퍼우먼 엄마로. 그래야 아이가 더 안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게 아이들에게 결과적으로 ‘엄마’라는 개념을 엽기로부터 보호하는 내면의 장벽을 느슨하게 한 거 같다. 잔혹동시는 이래서 존재가능해지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이렇게 추측해 본다.

“혹시 속상했을 엄마들, 너무 강하지만 마시고 솔직하게 한번만 약해 보세요. 아이들 본심은 아마 바로 확인될 거 같아요.”

주의사항: 요즘 애들, 연출된 장면은 바로 알아본다. 그것이 주의할 점이고, 또한 우리 때와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른 점이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