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들, 고객 횡포에 우울·불안 증상 일반 근로자의 2배

▲ 출처=KBS 뉴스

 

[초이스경제 김슬기 기자] 최근 한 아르바이트 구직업체에서 진행한 '착한 손님' 캠페인이 네티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칭찬과 감사의 말을 전했고 아르바이트생들은 손님의 친절함에 당황하면서도 좋은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우리나라 감정노동자는 700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서비스 업종 전반에 '고객은 왕'이라는 인식이 도를 넘어 '고객들의 횡포'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KBS가 '일하는 당신, 행복하십니까'를 통해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22일 방송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일하는 당신, 행복하십니까'의 내용이 눈에 띈다. 감정노동이란 고객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해야 하는 업무를 말한다. 백화점 판매원, 콜센터 직원, 승무원이 대표적이다. 주변에서 쉽게 마주치는 아르바이트생들도 감정노동 종사자에 속한다. 이들은 '친절해야 한다'는 직업의식 하에 고객들의 욕설, 폭언은 물론 성희롱, 폭행에도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서울의 한 백화점 판매원인 박현주씨는 "손님이 '옷에 뭐가 묻었다'면서 '입었던 상품을 판매한 것이 아니냐'고 환불을 요구하셨던 경우가 있다. 분명히 본인이 묻히신 것 같은데 억지를 부렸다. 판매직에 대해 업신여기는 손님이 굉장히 많다. '내가 매출을 이 정도 올려주는데 너는 나에게 이 정도 서비스 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다"고 말한다.

김경민씨는 "고객은 왕이라는 인식 때문에 하인 취급을 당한다. 한 직원의 경우 고객이 돈과 과일을 뿌리면서 폭언을 해대자 울면서 일을 그만뒀다. 다시는 유통,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고 전했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홈쇼핑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경우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더 잦은 고통을 받는다. 박혜주씨는 "1년 전에 먹은 건데 지금 생각해보니 맛이 없다고 반품을 해달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언어 폭력은 항상 당하는 거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둔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품절된 상품을 네가 만들어와라", "네가 앉아서 하는 일이 키보드 치는 것 밖에 더 있나" 등의 무리한 요구, 인신 공격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외식업체 주문서비스를 연결하는 콜센터의 경우 직원이 해결할 수 없는 전화를 사장이 받고 있다. 전화성 대표는 "생일날 밤에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화가 많이 나신 고객이었는데 1시간 넘게 죄송하다는 말을 200번 정도 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콜센터 직원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막 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콜센터 직원은 교육받은 이 분야의 전문가이고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고 강조했다.

배제대학교 교양교육부 김현정 교수는 "욕을 들으면 그 당시는 물론이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그 경험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긴다. 예를 들면 콜센터 직원의 경우 전화기가 울리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나는거다. 그 상황 자체가 힘들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감정노동자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일반 근로자에 비해 우울감이나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가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감정노동에 종사한 근무가 길어질수록 우울증, 소화불량 등의 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높게 나타났다.

김현정 교수는 "서비스 직종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감정노동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전반적인 정신건강 수준이 나빠질 것이고 여기서 생겨난 감정의 응어리가 가족, 타인에게 부적절하게 표현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서비스직 최전선에 있는 아르바이트생 200만명과 수많은 시민들을 만나는 버스 운전기사 역시 감정노동으로 지쳐가고 있다. 버스 승무원으로 3년째 근무 중인 김민씨는 "어린 아이도 욕을 하고 돈을 집어던지면서 '네가 넣어라'는 식으로 말하더라. '나는 갑 너는 을'이니 무조건 서비스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고객과 승객으로부터 폭언은 물론 신체적인 위협이나 폭력에도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연세대 원주의대 예방의학과 장세진 교수는 "우리나라 전체적인 문제가 최근 사람들의 분노 조절능력이 많이 떨어져있다는 점이다. 감정노동자들은 일반 근로자와 다르게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부터 서비스 제공자는 '을', 서비스 받는 사람은 '갑'이 돼서 감정노동자로 하여금 큰 심적인 부담을 지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정노동 강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항공객실 승무원의 경우 특히 일정 시간 동안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고객과 함께 있다는 것에서 오는 중압감이 크다. 한 승무원은 "항공권을 보여 달라고하면 기분 나빠 하시는 분들이 있다. 못생겨서 서비스 받기 싫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 음료를 전달할 때 손 잡고 안 놔주는 건 다반사다"고 전했다.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김인아 교수는 "기업들 사이의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노동자들이 버틸 수 있는 것에 한계에 이른 상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전보건공단 강성규 기술이사는 "생산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 양질의 노동력은 더 급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하고 있는 사람이 건강하게 자신의 맡은 바를 잘 해나가야 하는데 감정노동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질병 때문에 제대로 일할 수 없다면 여기에서 오는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고 말했다.

최근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인식이 높아지면서 정부에서는 이들을 위한 보호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는가하면 기업 내에서도 근로자들의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각종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 백화점은 심리치료 전문가를 고용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를 진행하고 있으며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는 한 달에 한 번 친절한 고객에게 음료값을 할인해주는 이벤트를 만들었다.

김인아 교수는 "우리가 20대와 30대 젊은 노동자들이 속해있는 직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결국 우리 한국 사회의 건강에 큰 위협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말했다.

노동사회 연구소 김종진 연구원은 "'잘먹 었습니다', '수고하세요' 이런 간단한 인사가 좋은 서비스로 되돌아오고 작은 행동들이 모여 아름다운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제 700만명에 이르는 감정노동자에게 어떤 처우와 상황, 노동을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때가 온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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