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晉나라, 동맹국 군대 동원 밥먹듯 하더니

[초이스경제 장경순의 만필세상] 기원전 632년 성복전투의 승리를 통해 패자(霸者)로 부상한 진(晉)나라의 가장 큰 일은 패업의 유지였다.

패자의 주된 임무는 대륙의 평화를 뒤흔드는 세력에 대해 주나라 왕실을 대신해서 응징을 가하는 것이다. 주 천자의 왕명을 내세워 동맹군을 불러 모으지만 동맹국들을 불러 모은 힘은 사실 주나라 천자가 아닌 진나라 임금의 위엄이었다.
 

▲ 진(晉)나라 문공이 주나라 천자를 모시고 천토에서 제후들과 회맹하는 모습. 춘추시대 최대 강대국 진은 이와같이 주나라 왕실을 내세워 제후들을 불러 모으고 자신의 패업을 도모했다. 그러나 문공 시대 제후들과의 동맹은 강압적이기 보다는 자발적이었다. 후대인 소공이 군사적 강압으로 제후들을 불러모은 것과는 형편이 다르다. /사진=김구용 열국지 삽화.

 

그런데 크나큰 대륙에서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그 때마다 법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진나라 군이 일일이 출동해야 하니 국력의 피폐 뿐만 아니라 군의 피로가 말이 아니었다.

여기다 진나라에 어리석은 임금이 등극하면 패권은 크게 흔들렸다. 춘추5패에서 성복전투의 승자 진문공의 다음을 이은 사람이 초나라 장왕인 것은 이런 까닭이다.

초나라는 춘추시대 진나라의 최대 숙적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는 진나라 패업이 가능하게 해 준 원인제공자이기도 했다. 초나라가 무서워 중원 열국은 기꺼이 진나라에 복종한 것이다.

잠시 흔들렸던 진나라를 중흥시킨 것은 도공이다. 도공은 즉위하자 대외 출병하는 데 있어서 매우 지혜로운 전략을 채택했다. 천천히 출발해서 조속히 돌아온다는 것이다.

진나라의 위엄이 살아있는 이상, 진군이 출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분쟁을 해소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진군이 분쟁 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모든 사태가 해결돼 도중에서 돌아오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다시 진나라가 유력 가문들의 나눠먹기 식 정치로 흔들리자 천하는 다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진나라가 느슨해진 것은 숙적 초나라가 조금씩 ‘왕화’되기 시작한 점도 한 원인이다.

초나라도 이제 중원 침략보다는 자신들만의 막대한 국력으로 번영을 누리니 ‘패자’ 진나라와 굳세게 단결할 필요가 예전보다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틀어, 할 일이 없다고 강대국이 스스로 물러나는 법은 없다. 진은 여전히 천하 제후들을 자신의 통솔 하에 묶어두려고 했다.

기원전 530년경, 양설힐이라는 신하가 진나라 임금 소공에게 아뢰었다. “장차 제후들이 복종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보이니 그들을 위협해야 합니다.” 양설힐은 또 “비록 덕은 부족할지라도 많은 군사를 부릴 수는 있습니다”라는 오만한 소리를 덧붙였다.

진 소공은 주나라 천자의 칙사도 온다는 구실로 제후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소공은 이 회담 자리에 30만 명의 자국 군대 호위를 받으며 참석했다.

중국 역사소설에는 병력의 과장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기원전 632년 성복 전투의 동원 병력이 전차 700승에 5만 명이다. 이보다 5~6배 더 많은 병력을 소공이 동원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시무시한 진나라 위세 속에 강국 또는 중견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 대부분이 포함된 열 두 나라 임금이 회담장소로 모였다. 임금 중에 누구하나라도 진나라 방침에 이견을 표현하면 진나라 30만 대군의 군영에서 큰 깃발이 숲처럼 솟아나고 함성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제후들은 다시 한 번 남방 초나라의 위협에 진나라를 중심으로 굳게 뭉칠 것을 서명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는 동맹국 동원은 진나라가 천하의 신망을 잃는 지름길이 됐다. 많은 군비를 들이고 백성들의 원성을 사며 동맹에 군대를 이끌고 달려갔지만 얻는 것이 거의 없거나 왕도를 실현하는 확실한 성과도 없었다. 어렵사리 잡은 적장을 진나라 만의 이해관계로 석방하는 일도 빈번했다.

첫 번째로 용기를 발휘한건 역시 3대 강대국인 제나라다. 진을 무시하고 독자의 군사 활동을 펼쳐봤는데 진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유일 강대국 진이 점차 허수아비가 되는 가운데 21세기 오늘날과 아주 유사한 일도 벌어졌다. 미국이 소련, 중국, 그리고 다시 러시아를 주요 경계 대상으로 삼아왔지만 탈레반, 소말리아 반군, 이슬람국가 등 전혀 예상치도 못한 세력에게 시달리는 것과 같다.

이 때도 전혀 예상 못한 대륙의 동남부 해안에서 대륙을 뒤흔드는 파란이 시작됐다.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시기로 접어든 것이다.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도 유명한 시대다.

두 나라 모두 지금의 동중국해안에 있던 작은 나라다. 제후 대접도 못 받던 이들이지만 유일강대국 진나라가 허수아비가 된 틈을 타 춘추5패의 마지막 두 자리를 차지하는 주인공이 됐다. (사관들 중에는 오월의 패권이 극히 일시적이어서 진(秦)나라 목공, 송나라 양공으로 오월을 대신한 사람도 있다.)

550년의 춘추시대에서 국제질서의 가장 큰 책임을 지던 유일강대국 진(晉)에 대해 천하는 존재 가치를 묻기 시작했다. 답변을 내놓지 못한 진나라는 한, 위, 조 세 나라로 분열되면서 춘추시대가 종식되고 전국시대가 열렸다.

전국시대는 진(晉)이 아닌 진(秦)이 주인공이 되는 시대다. 진(秦)과 나머지 6국의 대결기라고 봐도 된다.

원래 서쪽 끝의 궁핍했던 진(秦)나라가 강대국이 되는 데는 효공, 법치주의자 상앙, 진 소양왕, 원교근공의 이론가 범수, 용병의 달인 백기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한 인물이 바로 진왕 정, 즉 진시황제다.

의미심장한 것은 오늘날 중국의 영어이름 ‘차이나(China)’가 바로 이 나라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 2011년 중국드라마 '초한전기'에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천하를 순시하는 행렬의 모습. /사진=드라마 '초한전기' 화면캡처.

 

내년에 펼쳐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젭 부시는 유력한 공화당 주자 가운데 하나다. 그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아들이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동생이다.

최근 그가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확실한 입장을 세우지 못하고 난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형이 벌인 전쟁으로 인해 발목이 잡히고 있다. 미국이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 살상 무기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 2008년 이라크를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에게 이집트 기자가 이라크 전쟁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신발을 던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는 그의 동생 젭 부시에게도 부담이 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라크 전을 벌일 때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강하게 참전을 종용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할 때다.

친미 위주 외교에서 벗어났다던 참여정부지만 한국도 이라크에 파병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미국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층 이탈을 감수하면서까지 파병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강대국의 힘으로 다국적군을 동원하고서 많은 뒷 탈을 남기고 있는 모습이 역사책 속에서는 전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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