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들이 연이어 붙잡히고 구속되는 가운데 전경련 회장의 역할이란?

 
예전 같으면 전경련이 나서서 “기업인을 핍박하지 마라”고 따지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정․재계 상황에서는 꿈꾸기도 어려운 얘기다. 이렇게 나설 경우 “사법 당국님, 다음 표적은 저로 해주세요”라고 자청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정권이나 정부가 기업인들에게 혹독한 심판을 하는 것은 기업의 소비자인 국민들의 분위기가 싸늘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가 경제를 위해 헌신하기 때문에 베풀어준 관용 속에서 크게 국민 여망을 저버리는 행위들이 선을 넘어갔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하고 또 새로 출범하는 정권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법부도 동조하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2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연임하면서 내놓은 취임사에는 이런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그는 “지난 50년간 우리는 잘 살아보자는 신념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우리 기업이 사회적 배려를 통하여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할 때”라고 강조했다.
 
현재 재계 형편에서는 그나마 허 회장이라서 나설 수 있는 여지가 조금 더 넓어지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직후 박근혜 당선인과 재계 총수들이 만났을 때 그를 비롯한 총수들은 “신규 순환출자도 막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었다. 물론 씨알도 먹히기 어려운 얘기였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사실 GS그룹 회장으로서 그는 순환출자에 대해서 아무런 근심거리나 애로사항이 없는 사람이란 점이다. 설령 과거 순환출자까지 금지한다고 해도 LG GS와 같이 지주회사 체제를 굳힌 그룹들한테는 해당 사항이 거의 없다.
 
당시 신규 순환출자를 언급한 것은 GS 차원을 떠나 재계 전체를 대변 했다기 보다도, 대기업들이 기왕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대단히 어렵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 차후의 입지를 넓히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하지만 이런 의도는 재벌 회장들의 신세를 별로 바꿔주지 못했다. 새해 들자마자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은 검찰에 불려다니기 바쁘고 최태원 SK 그룹 회장은 법정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섣불리 전경련이 나서서 “이거는 못하겠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허창수 회장은 취임사에서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창의와 혁신으로 투자를 확대해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도전과 희망 정신으로 좋은 일자리를 늘려 나가자”는 데 이어 “투명과 공정의 정신으로 윤리경영과 준법경영에 앞장서자” “책임과 통합의 정신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공고히 하자”고 요구했다.
 
경제가 어려운 때니 기업인들을 핍박하는 사회 분위기를 해소해달라는 따위 ‘투정’은 단 한 군데도 집어넣지 못했다.
 
그나마 허창수 회장이니까 침통한 반성문 분위기를 면했다는 평가다. 이날 그는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제34대 회장으로 만장일치 추대됐다.
 
전경련은 경제민주화와 사회통합 등에 대한 정치·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지켜할 규범과 다짐을 담은 기업경영헌장을 채택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전경련으로 재탄생하겠다고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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