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 고객센터 직원들이 전하는 천태만상

키움증권 고객만족센터에 입사해 많은 고객을 대하고 업무처리에 익숙해질 쯤이었다. 그 해 여름 난 더 잘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얼마 후 나는 회사의 VIP 고객을 담당하는 부서로 배정받았다.

VIP고객업무를 담당하게 됐다는 것은 직원으로서 매우 뿌듯하고 기분좋은 일이지만 나에겐 썩 그렇지도 않았다. 그만큼 매우 까다롭고 힘든 일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VIP의 거래금액은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이를 정도로 크기 때문에 예민한 경우가 많았고, 그만큼 바라는 요구사항도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들은 증권 지식도 상당히 높아서 어설픈 응대를 했다가는 엄청난 욕설과 함께 회사에 큰 손실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특별 관리대상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직원들은 더욱 예민하고 조심스럽게 말해야했고, 업무처리에 온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다.

하지만 난 근거없는 자신감, 소위 '근자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업무에 임했다. 입사 후 열심히 공부하고 배운 것들이 있으니 당연히 VIP업무도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오만이었던가. 나의 근자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게다가 엄청난 폭풍이 나에게 몰려오고 있었다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VIP의 경우 일정기간동안 특정직원이 떠맡아 관리한다. 직원들에게 일정기간씩 돌아가며 배정 관리토록 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해 8월 내겐 꽤나 어려운 고객이 배정됐다. 거래액이 수억원대에 달하는 VIP고객으로 상당히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주로 우리회사에 맡긴 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주식을 거래하는 분이었는데, 이미 100건 상당의 대출건이 있어서, 이 고객은 그날 주가에 따라 성향이 수시로 바뀌곤 했다.

그날 주가가 오를 때는 천사목소리로 직원들에게 반갑게 대해줬지만, 주가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온갖 협박과 욕이 난무했고, 이미 우리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필 내가 그 고객을 관리하자 마자 주식 시장에서 사상 초유의 대사건이 발생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그것이었다. 이제 막 증권업무에 입문했었던 내게 너무 생소한 이름이었던 그 사태가 주식도 하지 않는 나를 펑펑 울릴 줄이야. 나는 처음에 그 사태가 한국에 주는 파급력을 이해조차 못했었다.  그러나 연일 매스컴에 모기지사태가 거론됐고, 세계의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들이 파산하며 미국시장을 강타했다. 그 여세로 국제 금융시장은 경직되었고 연이어 리먼브러더스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주식시장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마치 잘짜인 드라마처럼 이 모든 것들이 순차적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심지어 주식거래가 정지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기도 했다. 고객들의 성향은 날로 날카로워졌고, 연일 계속되는 주식 폭락 사태로 인해 날카로워진 고객을 상대해야 했던 그 때. 고객만족센터가 초 비상 체제로 운영되어 모든 직원들의 업무도 매우 고달팠다. 울며 뛰쳐나가는 직원들이 태반이었고, 그만두는 직원들도 생겼다. 

내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는 차마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겨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는데, 내게 배정됐던 그 VIP고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고객은 언급했다시피 100여건의 담보대출을 받은 상태여서 그 피해가 엄청났다. 이미 예민함이 최고조에 달한 탓인지 말끝마다 험한 소리가 들려왔다. 난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고객의 담보대출 비율을 계산해야했고, 만기가 되기 전에 팔아야 하는 종목 등을 안내해야 했으며, 이자 출금일을 확인하고 처리하는 방안을 안내해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했지만, 계속되는 폭락으로 손실은 점점 늘어났다.

그 고객은  분노로 가득차 있었고, "내게 손실을 주는 본사 담당자를 칼로 찔러 배를 가르겠다", "피를 보겠다", "사람 한 두명 죽이는 건 지금 내게 일도 아니다"라는 등의 욕설과 협박으로 날 두려움에 떨게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속에 고객의 아픔과 절망, 원망이 함께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하루에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없어져가는 걸 보는 고객의 허탈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그런 고객에게 주가가 폭락하고 있을 때 반대매매에 대한 안내를 하는 나는 두려움을 넘어 공포감에 짓눌릴 수 밖에  없었다.  우리도 고객들의 주가가 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금융시작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결국 그 고객의 수억원대 자산은 몇 달만에 몇 천만원으로 줄었고, 심지어 VIP에서조차 탈락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때 가장 참담했던 순간은, 그 탈락 안내전화를 담당자인 내가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발생했고, 피할 수 없었다. 수십 번의 용기를 내어 겨우 전화를 드렸다. 하지만 막상 고객의 목소리가 들리자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심한 욕설과 불같은 성향의 그 고객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날 당황스럽게 했다. 고객은 침착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자식들이 "이제 증권회사랑 싸우지말고 용돈드릴테니 손실 본 금액은 잊으셨으면 한다. 이제 편안히 즐겁게 살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더니 "OO씨도 그 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았지? 수고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나도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비록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나와 개인적으로 관계된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 고객의 마지막 말에 몇 달동안 고생했던 내 모습과 주식폭락으로 무너진 가장의 모습이 오버랩핑 되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모기지 사태도, 리먼사태도 점차 잊혀져가지만 아직도 나는 그 분의 마지막 말과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따금씩 생각날 때면, 진심으로 그 분이 행복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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