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살인사건...처벌 수위 턱없이 약하고 보복도 빈발

▲ 출처=MBC PD수첩 홈페이지

 

[초이스경제 김슬기 기자] 지난해 5월 미국 명문대학교에서 조기졸업 후 한국에서 생활하던 26살 이선정씨가 교제하던 남자친구로부터 살해당했다. 고 이선정씨는 전 남자친구인 이씨로부터 지속적인 데이트 폭력에 시달렸지만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연인 간에 벌어지는 살인 또는 살인미수 사건은 매년 100여건에 달한다. 3~4일에 한번 연인에 의해 죽거나 살해당할 뻔 했다는 의미다. 연인 간 폭력사건도 매년 6~7000건 이상 발생한다. 그러나 죽음의 위협에 내몰리는 여성들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 가족은 물론 경찰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흡한 제도 때문에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17일 방송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MBC 'PD수첩'에서는 데이트 폭력 위험에 노출된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선정씨의 경우 영어강사로 일했던 당시 수강생이었던 이씨와 교제하다가 지난 5월 이별을 통보했다. 피의자는 그녀의 집에 침입해 자려고 누워있는 선정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야산에 구덩이를 파고 시멘트를 부어 시체를 암매장했다.

경찰관계자는 "피의자는 갑작스런 이별 통보로 인해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미국 명문대학을 조기 졸업할 정도로 수재였던 것과 달리 일정한 직업도 없었던 피의자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한다.

이선정씨의 가족들은 "당일 좋은 조건에 취업을 했다는 전화통화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회사로부터 '선정씨가 일방적으로 퇴사 통보를 해왔다'는 우편물을 받았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수없이 연락했지만 돌아오는 건 메신저 대화 뿐이었다. 피의자가 보낸 것이다"면서 울분을 토한다.

그러나 범행 전부터 이선정씨가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선정씨의 친구는 "잠이 들어서 연락을 못 받았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하더라. 얼굴이 멍들고 부어있었다. 무서워서 미국을 다시 가야될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고 전했다.

23살 한수연(가명)씨 역시 남자친구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에 시달리다가 살해당했다. 피의자는 충동조절 장애를 겪고 있었고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수연씨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고 한수연씨의 친구는 "싫어서 헤어지자고 하자 죽이겠다며 협박을 해왔다더라. 경찰에 신고하자고 말하니 보복을 두려워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창원대학교 법학과 류병관 교수는 친한 관계에서 이정도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국가와 사법기관이 이 부분에 관여를 안하게 되면 단순한 폭력이 아닌 성폭행, 살인, 유괴 등 강력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21살 신은영(가명)씨는 여성들이 데이트 폭력에 대해 숨기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여성들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한번 당하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런 고통과 무서움을 처음 느꼈다. 폭력에 시달려 헤어지자고 말하자 전 남자친구는 SNS를 통해 나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삭제해달라고 말하자 다시 만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친구들마다 찾아가 해명할 수도 없고 소문 자체가 무서워서 어쩔 수없이 만나야했다. 이후로도 폭력이 계속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랑으로 키워준 부모님께 실망시킬까봐 말도 못하고 좋게 헤어지려는 마음뿐이었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서 결국 다시 헤어지자고 말했는데 이번엔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면서 협박해왔다"고 전했다.

은영씨는 정신과에 입원치료를 받는 중이지만 여전히 불안하다고 말한다. "(수감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나올 텐데 집을 포함해서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 다시 찾아올까봐 두럽다"고 말한다.

이화영 한국 여성의 전화 성폭력 상담소장은 "피해자의 주민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는 물론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간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복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이메일을 해킹하거나 예전 영상,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데이트 폭력은 신체적에 가해지는 물리적인 폭력은 물론 스토킹 등의 정신적인 피해로도 이어진다. 40대 김영주(가명)씨는 지난 2003년 게임사이트를 통해 만난 유씨와 연인 사이로 발전했지만 이별 통보 이후 지속적인 폭력과 공갈에 시달려야 했다.

김영주씨는 "해외에도 나갔다가 들어왔는데 스토킹이 계속됐다. 하루에 문자가 80개가 온 적도 있다. 집 주소를 알아내서 문을 열어달라고 위협했지만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었다. 협박죄와 공무집행방해죄로 10개월 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출소한 뒤에 또다시 스토킹이 시작됐다. 협박죄로 고소해서 지금은 스토킹에서 벗어났지만 누구 하나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한국 여성의 전화에 걸려 온 스토킹 피해상담을 분석한 결과 스토킹 가해자 70.7%가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며 가해 목적이 이별통보 후 만남을 요구하거나 헤어짐에 대한 보복인 경우가 43%를 차지했다. 지난 2013년부터 스토킹 등 지속적인 괴롭힘에 대해 범칙금 8만원을 부과할 수 있게 됐지만 이는 노상방뇨, 장난전화에 산정된 벌금(10만원 이하)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고은희 변호사는 "스토킹이 협박, 감금, 강간, 살인 등 중대한 범죄의 미수단계일 가능성이 있는데도 우리나라 경범죄 처벌법은 너무 가볍다"고 평가했다.

지난 1999년부터 발의된 스토킹 관련 특별 법안은 8개에 이르지만 국회에서 통과된 적은 없다. 올해 초 스토킹 범죄 처벌에 관한 법안을 발의한 새정치민주연합 남인순 의원은 "기존 발의된 법안보다 형량과 벌금을 상향조정했다. 또한 경찰이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분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응급조치 부분도 강화했다. 스토킹의 경우 현재 10만원 이하의 벌금만 받으면 끝이고 이후 더 큰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야 사회에서 관심을 갖게 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국회에서 꼭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대구에서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김서진(가명)씨는 앞서 경찰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지만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직업과 재산상태를 속인 노씨는 김서진씨가 이별 통보를 하자 집 주변을 배회하고 직장을 수차례 찾아왔다. 자살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가하면 실제로 번개탄을 피워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에 심각성을 느낀 김서진씨 어머니가 파출소를 찾았고 이후 9일 동안 6번이나 경찰에 위험을 알렸지만 보호받지 못했다. 실제 폭행전과가 있었던 노씨에 대해 파출소 관계자는 "기소 중지나 수배가 있을 경우에만 파출소에서 조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영국 맨체스터시에서는 지난 2009년 SNS를 통해 만난 남자친구로부터 살해당한 클레어우드 사건을 계기로 데이트 상대의 폭력 전과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2012년 그레이터 맨체스터를 포함한 4개 지역에서 시범 시행했던 클레어법은 영국 전역으로 확대시행 중이다.

그레이터 맨체스터 경찰서 공공안전부 트리샤 경감은 "데이트 상대가 과거 폭력적인 과거를 가지고 있다면 그 정보는 관계유지 여부에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미국에서 1994년 제정된 '여성폭력방지법'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형사상 처벌 외에도 금전적 배상을 의무화했으며  데이트 폭력도 보호대상에 포함시켰다. 호주 퀸즈랜드주에서는 가정폭력의 개념을 확대해 '친밀한 개인적 관계'에서 오는 폭력도 가정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류병관 교수는 "'가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2조 2항의 가족구성원 개념에 데이트 관계도 포함시킬 경우 보호처분 시 접근제한,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행위 제한, 보호시설 감호위탁, 의료기관 치료위탁이 가능하고 위험에 노출된 피해자를 경찰이 격리하고 접근금지를 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큰 범죄로 발전해서 형사고발을 하고 처벌을 당했을 때 갖게 될 원한감정, 보복감정에 의한 2차 범죄를 방지할 수 있고 현재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범죄를 예방하는 역할도 있다. 또 다른 법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소비되는 시간적, 경제적 낭비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PD수첩’ 제작진은 “이 순간에도 위험에 처해있을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일찌감치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한 미국과 인권침해 우려에도 데이트 상대의 전과를 조회할 수 있게 한 영국처럼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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