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지방자치제 도입과 함께 달라진 것은 내 손으로 우리 동네의 일꾼을 뽑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지자체 실시이후 각 자치단체가 독자적으로 문화시설 건립과 같은 차원 높은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여건도 함께 마련되었다. 

 
1995년 이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문예회관 건립 붐이 일기 시작했다. 덕분에 바야흐로 90년대 후반부터 공연예술계에도 소위 공적자본이라는 게 유입될 수 있었다. 비록 그 배경에는 건립 당시 자치단체 수장의 치적이나, 정치적 맥락을 고려하여 건립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문화공간을 통해 국민의 문화향유 증진에 큰 도움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막대한 세금을 들여 지어진 당신의 거주지 인근 문예회관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하고 물으면 몇몇 소수의 문예회관 말고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서울의 경우 각 자치구마다 인구가 적지 않고 예산 또한 상당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자치구가 문예회관을 설립,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예회관 건립과 더불어 각 구청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문화재단을 대거 발족시키며 지역사회의 문화사업을 시작하였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구문화재단, 구로문화재단, 마포문화재단, 강남문화재단 등의 재단이 신설되었고, 이곳에선 지역사회를 위한 각종 문화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공공의 영역인 문화재단의 설립이 지역별로 특성화된 사업의 기틀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문화재단의 발족은 겉으로는 그럴싸하지만, 하나의 재단을 설립한다는 건 사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단순히 예산만을 따져봐도 그렇다. 시도 단위의 광역 문화재단인 경기문화재단의 경우 출연금이 자그마치 1175억원에 달했고 서울문화재단과 인천문화재단도 각각 500억원과 395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연간 운영예산으로 경기문화재단 378억원, 서울문화재단 252억원, 인천문화재단 110억원 등 각 재단이 목하 수백억원씩을 쏟아 붓고 있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며, 행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없다면 운영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문화예술의 인프라는 기초예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가 가장 근원적이라고 볼 때 우리 사회가 함께 감내해야 하는 부분은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음표는 남는다. 넉넉지 않은 자금의 압박으로 다수의 지자체 문화재단 및 문예회관에 대한 지원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문화예술이 삶에 기여하는 면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지만, 어려운 지자체의 살림살이에 예술의 가치만을 들이대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인천문화재단의 예를 들어보자.
 
2004년 12월에 설립된 인천문화재단의 경우 수차례의 논의와 토론을 거쳐 재단 시스템을 확정하기까지 무려 5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되었다. 물론, 이러한 설립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많은 비용이 발생했고, 그에 따른 논란도 심화되었다. 문화재단 설립 이후에도 부실운영 등에 관한 잡음이 꾸준히 야기되었으며, 현재의 문화재단 외에 기타 재단설립을 추진하고자 하는 인천시의 무리한 행정이 또 다시 문제로 제기되기도 했다.
 
인천연대의 지난 2011년 보도자료에 따르면 인천문화재단은 2004년 400억원의 기금을 출자하여 재단을 설립한 뒤 2010년까지 1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키로 한 바 있다. 그러나 2011년까지 505억원만을 조성하는데 그쳤다. 그리하여 1000억원 기금조성 기한도 2020년으로 수정해 연장한 바 있다. 문제는 인천시의 재정상황이다. 지금도 3조2000억원 가량의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있는 인천시에서 추가적인 재원마련이 쉽지 않다는 점이 핵심사항이다.
 
결국 의욕적으로 시작한 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이 날이 갈수록 인천시의 발목을 잡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의도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지만, 지자체의 살림살이가 풍족하지 못하다 보니 날이 갈수록 지원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무턱대고 재원확보 요청만을 일방적으로 외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책임한 태도일 것이다.
 
자, 그렇다면 문화재단의 역할을 강화하는 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우선 전략적인 사업적 접근이 필요하겠다. 문화예술의 기반을 다지는 사업과는 별도로 수익성 있는 사업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준 높은 공연예술을 저렴하게 관람토록 하는 것도 문화복지에 해당되지만, 그러한 문화나눔을 체계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재정자립도를 높여 나가는 것이 실질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최소한의 기본적인 운영이 가능해질 때, 예술과 경영의 합리적인 균형이 만들어내는 ‘문화예술의 나눔’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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