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성인이라고 하면 석가모니, 공자, 그리스도, 마호메트를 일컫는데, 만약 공자에게 성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공자 시대에 그리스도와 마호메트는 아직 탄생하기 전이고 석가모니는 열 두살 정도 연배가 위다. 그렇다고 해서 공자의 대답이 “석가모니”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두 분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존중하는 성인은 있다. 요와 순 같은 전설상의 인물 뿐만이 아니다. 공자의 저서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 중에도 성인이 있다.
 
주나라 개국 공신이자 무왕의 아우이며, 공자의 고향 노나라 시조인 주공 단이다. 지금부터 3100년이나 전의 인물이지만 주공 단에 대해서는 소위 ‘호풍환우’하는 얘기가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다. 이 또한 유가(儒家)의 원조성인다운 면모다.
 
▲ 4대성인의 하나인 공자가 성인으로 여긴 주공 단의 초상.
형인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무너뜨리는 전쟁에서 주공은 수레를 달리며 용맹을 떨친 장수는 아니지만, 주나라 800년 사직의 근간을 수립했다. 이는 주나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중국의 정신 문화에서 중요한 골격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공자가 그를 성인으로 여기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지, 자신의 고국 시조여서가 아니다.
 
주공 단이 마련한 가장 큰 원칙은 ‘적장계승’이다. 앞선 은나라까지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계승하는 ‘형종제급’이 빈번했지만, 주나라에서는 종통(宗統)에 따른 승계제도를 새로 확립했다.
 
이 제도를 세우려면 우선 주공 자신의 희생이 뒤따라야 했다. 무왕의 아우인 주공부터 왕위를 차지할 꿈을 버려야 했다. 오히려 그는 다른 형제들인 관숙, 채숙, 확숙이 형종제급을 주장하며 일으킨 반란을 토벌했다.
 
적장계승에 대한 그의 희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성껏 어린 조카 성왕을 보필하는데 조카는 오히려 숙부를 의심하고 그를 가둔 것이다.
 
헌신적인 숙부를 처벌한 성왕은 어느 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방치됐던 상자를 발견했다. 단단히 채워진 자물쇠를 열고 보니 주공의 기도문이었다. 성왕이 병에 걸려 사경을 해맬 때 주공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자신의 목숨으로 왕을 살려달라고 기원한 내용이었다. 성왕은 곧 주공을 방면했다.
 
이밖에도 주공은 지식인을 예우하는 토포악발의 고사 등 수많은 위정자의 교훈을 남겼다. 토포악발(吐哺握發)은 찾아온 선비를 맞이하기 위해 감던 머리를 휘어잡고 입안의 고기를 내뱉고 달려 나가기를 세 번이나 거듭했다는 고사다.
 
조선을 포함한 유교국가에서 적장계승을 중시한 건, 적장자가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다는 믿음 때문은 아니다. 임금 혼자서조차 멋대로 국가 대권을 결정할 수 없게 만고불변의 원칙을 못박은 것이다. 그 대신 적장자가 아둔하더라도 군신간의 권력 균형 등 국가 시스템이 건재해 이를 해결하는 끊임없는 고민을 한국과 중국의 유학자들은 지속해 왔다. 그 결과, 후대로 갈수록 동생이 왕위를 노리고 정치를 어지럽히는 폐단은 크게 감소했다.
 
조선 개국공신이자 초기의 권신인 정도전이 절대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점이 여기에 있다. 고려보다도 더 분명한 유학의 이념을 세운다던 조선에서 개국 초기부터 임금도 아닌 신하의 입맛에 맞는 어린 임금을 멋대로 세우려 했으니 어떤 경우로도 정도전의 처사는 조선의 이념에서 벗어나도 너무나 한참 벗어난 것이다. 그로인해 스스로 일신에도 큰 불운을 자초하고 말았다.
 
만약 정도전이 사심을 버리고 적장자인 방과(정종. 사실은 이성계의 차남이지만 맏형 방우가 입산 후 요절해 적장자)를 철저히 보필했다면 과연 5남 방원(태종)에게 천하가 돌아갔을까. 개국 초부터 이런 소동을 겪고 나니 조선은 더 한층 적장계승을 수호했다. 세종대왕이 슬하의 대군(소헌왕후 소생)만 여덟인데도 손수 단종을 세손 책봉한 것도 이러한 적장계승에 대한 의지였다.
 
지배구조에 관한한 과거 순환출자에 대해서도 전혀 걱정이 없는 LG그룹이 4세 시대를 슬슬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3세 구본무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 부장이 최근 인사에서 약진해 차세대의 면모를 엿보이고 있다.
 
LG그룹은 진작부터 ‘적장계승’의 가내 원칙을 철저히 지켜, 후사가 없을 때는 형제의 아들을 입양하기도 한다. 역사에서 보던 왕실 모습 그대로다. 형제간 사이좋게 승계하라던 모 재벌에서 몇 년 전 엄청난 불행이 벌어진 것을 생각하면 나름의 슬기로운 방식일 수도 있다.
 
승계권에서 벗어난 자녀들을 위해서 무슨 편의점이나 빵집 사업 침탈하는 작태만 벌이지 않는다면, 이걸 굳이 흉보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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