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뒤돌아보면 당시 한국경제는 주식시장을 필두로 각종 경제지표의 가파른 상승과 함께 호황기에 진입했다. 이후 집단이 우선시되었던 사회에서 개인의 내면과 취미, 취향이 중시되는 쪽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급속히 바뀌었다. 부에 대한 축적은 결국 취향의 정점인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나, 문제는 그것을 산업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는 기반이 전혀 없었다는 데 있었다. 기존의 칼럼에서도 밝혔듯이 은행에서 고객사은음악회를 개최하면서 인구 1000만 대도시 서울에 문화공간, 특히 공연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사실을 절감했던 것처럼 문화인프라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필자가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는 아니었기에, 공연장을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공연장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야 말로 문화예술의 근간을 마련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잘 풀리지 않는 실마리였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심정으로 신문기사 및 잡지 등을 탐독하며 계속 문화예술 쪽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모교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면서 공연장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 이었다. 순간 내머리가 번쩍이기 시작했다. 대학 내의 공연장. 학교의 관제행사나 학과 및 동아리 졸업공연을 제외하고는 늘 텅 비어 있는 공간. 그 공간을 전문적으로 운영한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던 것이다.
 
지난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대학은 청년문화의 중심이었다. 통기타와 장발로 표상되던 청년문화는 경직된 사회에 해방구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대학은 낭만과 청춘의 성지에서, 돈의 논리에 잠식되어 스펙과 외국어, 공모전 등에만 전념하는 공간으로 전락해가고 있었다.
 
여하튼 모교의 공연장 설립이라는 뉴스를 접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 학교에 제안서 및 운영 관련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공연장을 위탁운영하게 되었다. 시작부터 녹록치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있었다. 예전에 고객사은음악회를 위해 어렵게 대관했던 그 과정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렇게 몇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고객 서비스에 대한 4가지 방침을 세웠다.
 
첫째 ‘전화를 잘 받는 것’이었다. 야구에서도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경기가 시작될 수 없듯이, 공연장 대관은 대관문의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전화를 친절하게 받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두 번째는 ‘인사 잘 하기’였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은행에서 근무할 때부터 인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인사다. 사람들은 웃으며 인사를 먼저 건네는 사람에게 큰 호감을 보인다. 결국 이 사업은 사람을 얻는 일이자,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일이기에 지금도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다.
 
셋째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이다. 고객이 원하는 부분이 무엇일지 먼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필자가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우리사회의 서비스에 대한 개념은 상당히 낙후돼 있었다. 백화점이나 항공사, 은행 정도의 업종을 제외하면 서비스의 가치에 대한 인식 자체가 빈약했다. 그래서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한발 더 앞서 생각하는 태도를 갖기로 했고 그것은 큰 반향을 불러왔다. 그것이 필자가 운영하는 회사의 이미지 구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운영방침 마지막은 바로, ‘돈 받지 말기’였다. 필자도 사업을 시작해 보니, 연말 대목이나 방학, 어린이날 무렵 등 특정시기에 대관을 성사시키기란 말 그대로 난리통 그 자체였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대관을 하기 위해 돈봉투를 준비해 오는 곳도 여럿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경험적으로 특정 단체에 돈을 받고 대관을 해준다면 물론 지금 당장은 공돈이 생기니 기분이야 좋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필자가 운영하는 공간의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고, 또한 문제가 생길 때 원칙대로 처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소탐대실을 하다보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라는 확신도 나를 돈봉투 유혹에서 해방시켜주었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도 필자는 아무리 사소한 돈이라도 절대 받지 말 것을 늘 직원들에게 당부하곤 한다.
 
필자가 대학 내 문화공간을 틈새시장으로 여기며 사업에 손을 댄지 십수년이 흘렀건만 벌 탈없이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게 됐으니 그럭저럭 성공을 거둔 셈이다.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열린 대학교 캠퍼스의 문화공간은 그 자체로 문화의 발원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필자의 짧은 물음이 오늘날 여러 공연장을 운영하는 CEO가 될 수 있게 한 초석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의 문화공간은 훌륭한 문화사업의 터전이 되었고, 앞으로도 더 개발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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