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에 있어서 절대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이명박 정부는 지금도 엄청난 ‘MB맨’들을 공공기관 곳곳에 남겨 놓고 있다.

 
이들이 그런 고위직을 차지하는데 있어서 정당한 평가가 있었는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은 끝도 없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MB 낙하산’을 싹쓸이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소위 금융4대천왕부터 손을 보자는 이런 요구는 절대로 무리한 것이라 폄하할 수가 없다. 국민들은 지난 5년 극도의 인사 난맥이 관계자들의 탐욕에 기인한 것이란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이런 의심은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명박 전 대통령이 행사한 인사권은 모두 취소하라는 요구가 한국은행에도 일부 미치고 있는 듯 하다. 일각에서 김중수 총재 교체론을 내세우는 모양이다.
 
지난 2010년 전임자인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물러날 무렵, 특별한 소속 기관이 없던 기자에게 이상한 소식이 들렸다.
 
방금 재무부처 장관에서 물러난 사람이 한국은행 총재 자리를 넘본다는 것이었다. 언론인인 이상 이런 망발에 입을 다물 수는 없다고 판단해 오마이뉴스에 “차라리 군출신 총재를 임명하라”는 기고를 했었다(http://bit.ly/aF91T8). 과장된 제목이 아니었다. 시장경제를 이끌어가는 나라에서 중앙은행과 재무부처의 상호 견제와 균형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될 근본가치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시장경제 국가로 들어섰다. 그 이전, 거의 모든 것이 관주도에 의해 결정되던 경제가 이제 시장의 수요와 공급 원리에 따라가는 단계가 됐다는 얘기다. 이제 와서 시장경제를 포기하고 관치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2000 수준 주가 가운데 1500 포인트 정도는 미련 없이 반납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일부 조사에서 문제의 장관보다도 순위가 낮게 나온 인물이 있었다. 지금의 김중수 총재다. 김 총재의 평가가 이렇게 박한 이유는 ‘MB맨’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김중수 총재에 대한 이 조사는 한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가 재무장관 출신인사보다 못한 인물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다. 중앙은행 총재를 결정하는 문제에서는 군출신 인사가 차라리 재무관료보다 낫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정치권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재무부처와의 완벽한 견제 관계 형성을 의미한다. 만약 중앙은행이 재무부처의 입김에 질질 끌려간다면, 성장률 띄우기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무소불위의 발권력을 휘두르는 망국의 병까지 우려해야 된다.
 
그래서 당시 인기도 8위쯤 됐던 김 총재의 순위를 지금이라도 7위로 하나 끌어올려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8→7위, 이 한 단계 변화는 엄청나게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이명박 정부 막판의 온갖 설왕설래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박근혜 정부에게 고스란히 남겨준 2.75%의 기준금리, 다른 의미로 2.75%의 정책 여력은 상당부분 김중수 총재의 성과다.
 
혹시 만약 ‘김중수도 MB맨이라서’ 쫓겨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누가 오든 그는 이제 ‘박근혜 사람’이란 딱지를 떼어내지 못할 것이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래 처음으로 전임자를 임기 중에 몰아내기까지 했으니 이제 ‘완장맨’의 서슬퍼런 인간으로 비춰질 것이다.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중앙은행 총재가 대통령의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처럼 비참한 것도 없다. 김중수 총재도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부임하자마자 ‘금리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기회마다 금리를 올렸다.
 
그 결과가 지금의 2.75% 기준금리다. 이것은 앞으로 한국경제가 부진의 조짐이 있을 때마다 대응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여력이다.
 
요즘 미국에서 하는 양적완화를 대단히 거창한 업적처럼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양적완화란 금리를 0%로 떨어뜨려서 더 이상 어쩌지 못하니까 불가피하게 행사하는 매우 순탄치 못한 정책이다.
 
올 때야 ‘MB맨’으로 왔는지 몰라도 일단 와서는 발권력의 곳간을 지켜낸 일 만큼은 ‘MB맨’과 무관한 일이었다. 다만, 역대 최고 총재로 평가받는 고 전철환 총재가 그토록 노력했던 시장친화적인 소통면에 있어서 김중수 총재는 상당히 분발해야만 할 점이 있다.
 
오로지 삽질만 알고 금융은 몰랐다는 이명박 정부지만 이런 정권이 그나마 마지막 파국의 문을 들어서지 않은 이유 중에는 한은 총재의 임기를 보장하고 재무부처 출신 총재 임명을 안했다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무분별한 낙하산 청소하는 데야 임기를 따질 일이 아니지만, 중앙은행의 수장까지 이런 잣대에 무리하게 끼워 넣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얘기가 왜곡되는 것이다. 이는 ‘IMF 위기’의 교훈을 내던지는 결과가 된다.
 
사족 세가지:
 
1. 얼마 전, 외국의 모 잡지에서 김중수 총재를 최악의 총재 그룹에 포함시킨 것을 가지고 한은 총재 경질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이는 김 총재 정신 차리라는 질타와 ‘IMF 위기’에서 찾은 원칙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외국 잡지가 까칠한 글 하나 쓸 때마다 한국은 중앙은행 총재를 바꿔야 하나.
 
2. 전철환-박승 총재 시절, 한은 관련 기사를 쓸 때 KDI 원장으로 재직하던 김중수 총재와의 인터뷰를 포함하면 상당히 공들여 기사를 쓴 것으로 평가받았었다. 통화정책에 있어서 그는 진작부터 일말의 권위는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어쩌다가 최하위 총재 후보가 됐었는지 2008~2010년 기간의 처신이 궁금하다.
 
3. 그동안 김중수 총재에 대해서 가장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은 자신을 비난한 직원 때문에 한은 게시판을 뒤졌다는 얘기다. IMF 모든 차입금을 상환하는 날 굳이 국산 만년필을 고집하며 서명한 전철환 총재가 앉아있었던 자리에서 게시판이나 뒤졌다니 이건 정말 답이 없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