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국내 창작뮤지컬계의 큰 손으로 꼽히는 윤호진 연출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 에이콤인터내셔널 대표)가 공연예술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2009년에 초연해 해외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의 티켓가격을 1995년 <명성황후> 시절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VIP석 5만원, R석 단돈 3만원이라는 전에 없는 가격을 제시하자 공연예술계는 과연 그렇게 받아 어떻게 제작비를 충당한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필자 또한 고개를 갸웃거렸을 만큼 <영웅>의 몇 푼 안되는 티켓가격은 당시 공연예술계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 뮤지컬 '영웅'의 모습.

지금이야 연간 뮤지컬시장규모가 3000억원을 웃돌 정도로 크게 성장했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매력적인 장르는 아니었다. 그건 물론 문화의 인프라 자체가 열악했기 때문이리라. 당시만 하더라도 오페라와 해외 대형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최고 티켓가격을 유지하면서 공연시장을 주도해왔다면, 이제 뮤지컬은 대중예술의 새로운 장을 열고 동시에 산업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해주는 유일한 공연예술장르가 되었다. 2012년 최고의 히트작인 <위키드> 내한공연만 보더라도 단기간 매출이 260억원을 넘나들 정도로, 작품 하나의 히트로 소위 대박이 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영웅>의 티켓가격 파괴선언은 그야말로 의외의 사건이었다. 그 선언으로 인해 적정한 티켓가격과 관련된 많은 의견이 제시되었다. 일부는 애당초 티켓오픈 때부터 가격인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꼼수’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창작뮤지컬 육성지원사업 재공연 부문에 선정되어 5억원의 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영웅>의 저가 마케팅이 가능했던 게 아니었느냐는 분석도 뒤따랐다. 한동안 다양한 의견들로 갑론을박이있었으나, 어찌 됐든 필자는 제작자의 용단을 칭찬하고 싶다.
 
해외공연까지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온 <영웅>은 스타마케팅을 배제하였고, 거듭된 공연을 통해 습득된 프로덕션 자체의 힘을 믿고 내부 캐스팅을 통해 비용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에 더 주목해 볼 가치가 있다. 스타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제작비 부담을 줄이고, 나아가 작품 고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방식으로 티켓가격을 파괴 했으니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관객들의 주머니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뮤지컬 부흥을 시도 한 것은 옳은 방향임이 분명하다.  
 
사실 요즘 대극장의 뮤지컬 티켓가격은 VIP석은 차치하더라도 R석마저 1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유사 대중예술장르인 영화에 비해 최대 10배 이상 비싸다는 것은 사실 공연예술시장을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버리는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공연 예술에 열광하는 주된 이유는  현장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감동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비용이 간단치 않다. 대형뮤지컬을 기준으로 한 편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 투입되는 인원은 주/조연 배우, 앙상블팀, 음악팀, 무대팀, 조명팀, 음향팀, 하우스팀 등 어림잡아 최소 70~80명은 소요될 것이다. 그 많은 인원이 하나의 작품을 위해 모든 걸 쏟아 붓는다. 라이브라는 속성 상, 매번 되풀이되는 수고와 노력이 수반된다. 그 많은 인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물론, 껑충 뛰어오른 주연배우의 개런티, 공연장 대관료, 홍보비 등 엄청난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의 티켓금액으로 일정 수치 이상의 유료관객이 찾지 않는다면 적자를 면하기 힘든 구조이다.
 
따라서 <위키드>처럼 흥행과 작품성 모두에서 재미를 본 작품이 있는가 하면, 흥행은 물론 비평에서도 혹평을 면치 못하는 작품도 있다. 다르게 얘기하면 이는 뮤지컬시장의 시스템 자체가 아직은 매우 허약하다는 진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흘러가는 모습을 보니 오늘날 뮤지컬산업은 국내의 영화산업과 비슷한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우리가 잘만 하면 영화처럼 뮤지컬 부문에서도 얼마든지 성장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영화의 경우 초창기만 하더라도 질적인 차이로 인해 외화를 다수 수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시대를 열며 우리 영화의 질적 수준이 크게 높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2012년 기준으로 1억1400만명 이상의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을 정도로 괄목할 만한 산업적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렇다면 우리의 뮤지컬계는 어떠한가. 국내에서 공연되는 대형뮤지컬의 대부분이 외국작품을 사오거나, 라이선스 공연에 해당된다. 아직까지 창작뮤지컬이 활성화된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여러 공연단체에서 중소규모의 뮤지컬 제작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새싹이 흙을 뚫고 나오려는 그런 시작단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런 움직임들이  머지 않아 한국 뮤지컬 산업의 수준과 규모를 크게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영화산업이 그랫듯이 말이다.
 
다시 티켓가격 논의로 돌아와 보자. 뮤지컬산업의 성장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기정사실로 보인다. 그럴 경우 산업적으로 견고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적절한 티켓가격 역시 산업기반으로서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영웅>의 파격적인 티켓가격 책정은 뒤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차치하고라도 안정적인 시장 확보를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타마케팅을 포기하고 작품의 질을 올려 관객들과 만나는 일종의 승부사다운 기질이 엿보인다. 그 선택이 후대에 어떻게 기록될지 필자는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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