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 고객센터 직원들의 애환

 사실 나는 금융권 경력이나 자격증 하나 없이 오직 '고객 응대 하나만큼은 잘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으로 지방에서 올라와 고객만족센터에 지원했고 운좋게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처음 엄청난 양의 교육을 받을 때는 내가 직장인인지 수험생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서울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는데 공부까지 하려니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업무에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고객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전화받자마자 "야 너 어제 나랑 통화한 사람이야?"하고 화를 내더니 어제 통화한 X바꾸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고객이 있었다. "너도 내 계좌 보면 알겠지만 주식이 얼마나 망했는지 알아?"하며 욕을 하도 퍼붓길래 "고객님 제 월급이라도 빌려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고객은 조금 진정하더니 두어 시간 지나서 미안하다며 이해해달라는 말을 건넸다.
 
한번은 고객의 화면을 보며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때가 있었는데, 내가 자신의 컴퓨터화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고객이 화면 한쪽에 야동을 켜놓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당황했지만 고객이 너무 민망할 거라는 생각에 야동화면을 최소화시켰다. 하지만 전화기로 들려오는 민망한 소리때문에 결국 조치를 다 취하지 못하고 PC문제라고 안내한 채 전화를 끊은 적이 있다. 끝까지 처리하지 못한 건 내 잘못이었으나 그 상황에서는 빨리 전화를 끊고 싶을 뿐이었다.
 
나중에는 이런 일에 익숙해져 어느 남성 고객이 성희롱적인 말을 해오자 "고객님 그런 말씀은 전화 휴게방이나 가서 하세요."하고 말한 뒤, 전화를 끊는 대담함을 갖게 됐다.
 
물론 고객이 다시 전화해 한참 직원 욕을 했다는 후일담도 전해들었다.
 
이처럼 진상고객도 많지만 내가 하는 실수들도 만만찮다. 지방에서 올라와 사투리에 신경쓰며 종목명을 읽어내려가다가 그런 내모습에 웃음이 터졌던 적도 있다. 고객은 '이 아가씨는 내가 웃긴 얘기도 안했는데 웃는다"며 혼을냈다.
 
신입 때 업무도 제대로 파악이 안된 상태였던 나는 옆에서 지도해주는 분의 말을 그저 앵무새처럼 전달했었다. 어느 정도 업무를 처리하고는 안심하고 있는데 내가 체크해야할 사항을 깜빡한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고객님 잠시만요!!"한다는 것이 "아 저 언니!!"라고 크게 외친 적이 있다. 그 순간 센터에는 정적이 흘렀고 동기들과 지도해주는 분들은 모두 당황했다. "OO씨 고객에게 언니라고 하면 어떡해요!!"라고 혼났고 나는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지금은 옛이야기하듯 웃으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일할 때 긴장과 불안으로 인해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 당장 내일도 출근해서 전화기 앞에 앉으면 나는 또다시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에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 것이다. 못생겨져버린 손톱을 보며 속상할 때가 많지만 손톱들이 예쁘게 자라나있을 무렵에는 모든 것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져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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