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참모들은 대통령에 경제 상황 제대로 알리고 대처해야

▲ 사진 출처=SBS 8 뉴스

 

[초이스경제 최원석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치권과 경제계의 반응에 상당한 온도차가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선 정치적인 측면만 고려하면 김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분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치적을 두말없이 칭송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아쉬운 점도 있었다. 바로 한국 경제가 낙관론으로 일관하다 한순간에 환란의 위기를 맞은 점은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잘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한국 경제가 한순간 무너져 내리면서 원-달러 환율은 2000원선에 육박했고 회사채 금리는 연 30%를 넘나들었다. 영원히 건재할 것 같았던 재벌그룹이 붕괴되고 여러 부실은행이 문을 닫는 일도 벌어졌다. 경제계에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논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수많은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고 집으로 산으로 길거리로 흩어졌다. 해외 유학을 나갔던 한국 인재들도 치솟는 원화 환율을 감당하지 못해 속속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그래서일까. 23일 입을 연 윤여준 당시 환경부 장관의 회고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윤 전 장관은 김영삼 정부의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체제 도래와 관련해 “사실은 그 직전까지도 김영삼 당시 대통령께서는 한국 경제가 순탄하게 가고 있다는 (참모들의) 보고를 받으셨다”고 회고했다.

기자가 돌이키건대 윤 전 장관의 이 말은 거의 다 맞는 말이다. 당시 청와대 경제 참모들조차 우리 경제의 실상을 대통령께 제대로 전달하지 않아, 재무부 출신 모 비서관이 대통령에게 한국 경제의 실상을 직보했다는 말까지 전해져 내려 올 정도다.

기자가 보기에도 당시의 경제 참모들은 한심했다. 필자가 당시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의 전신)에 출입할 때다. 기자는 늘 의문을 가졌었다. 한 해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300억 달러를 웃돌 정도로 한국 경제가 궁지에 몰리는 데도 일부 고위 경제관료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한국의 적자 규모는 아직 수치상으로 견딜만한 수준에 있다”면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양호하다”는 이른바 ‘펀더멘털 타령’만 일삼았다.

당시에도 경제계 일각에서는 “반도체,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소위 4가지 먹거리 산업을 제외하면 한국 경제는 위태롭기 짝이 없다”며 “한국 경제의 착시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쏟아냈지만 적어도 이들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 뿐 아니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대선 출마 후 현대그룹에 대한 돈줄 죄기 등 특정 재벌에 대한 벌주기도 살벌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YS 정부(김영삼 정부의 영문 약칭) 경제 참모들의 안이한 경제 진단은 한국에 대형 참사를 안겨주었다. IMF 구제금융에 간신히 의존해야 할 정도로 우리 경제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돌이켜 보면 YS 정부 때와 현재의 경제 상황은 여러 면에서 닮은 꼴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경제적 측면만 놓고 보면 그렇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경제는 큰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 YS 정부 때는 자고 일어나면 경상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자고나면 수출이 줄어 걱정이다.

YS 정부 때는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금융기관 및 일부 기업의 방만한 경영이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벌어서 이자도 못내는 좀비기업이 3000개를 넘어설 정도다.

YS 정부 때 보다 더 나빠진 측면도 있다. 그때는 무엇보다 정치가 안정돼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아울러 20년 전 환란 당시에는 가계 사정이나 국가 재정은 그래도 튼실했다. 그런데 지금은 가계부채 대란 위기에 몰려있다. 공적 부문의 부채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YS 정부 시절엔 한국 등 위기에 닥친 아시아 국가들을 제외하면 다른 선진국 경기는 건재했다. 따라서 수출 한국의 경제 회복 속도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가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이는 한국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쉽게 회복할 수 없는 환경에 직면해 있음을 의미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 정부 경제관료들의 행보가 안타깝다. 미국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고, 한국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중국 경제가 추락하고 있는데도, 지금 한국의 경제부처는 부채 관리 및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이렇다 할 실적을 못내고 있다. 빚은 잔뜩 쌓이는데도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릴 궁리만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 다시 한번 운동화 끈을 고쳐 매야 한다. 우리 경제를 하루 빨리 재정비해야 한다. 더 이상 YS 정부 때 일부 경제 관료들이 보여준 안이한 경제 정책이 반복돼서는 안되는 상황에 다시 몰려 있다. 가계와 공공의 빚을 줄이고 부실기업을 손질하는 일이 시급하다. 더 큰 위기가 오기 전에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각종 ‘고름’을 짜 내야 한다.

23일 윤여준 전 장관이 새삼 YS 정부 때 느닷없이 닥친 외환위기를 다시 한번 거론하면서 안타까움을 표명 한 것이 큰 의미를 갖는 것도, 이같은 한국 경제의 절박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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