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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이방원과 '대부' 마이클 꼴레오네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과 '대부' 마이클 꼴레오네
  • 장경순 기자
  • 승인 2015.11.24 2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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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SBS 월화드라마에서 유아인이 열연중인 이방원은 매우 독특한 조선의 태종대왕이다. 상대 여주인공인 신세경으로부터 옷도 벗겨지고 팔도 깨물린다. 분이로 등장하는 신세경은 공식 석상에서는 도련님(장가를 간 주인댁 자제이니 곧 서방님으로 바뀌겠지만)으로 깍듯하게 호칭하지만 둘만의 사석에서는 “야”라고 부르며 어린 시절 둘만의 비밀스런 정서를 이어간다.

지금껏 냉혈한 권력자로서의 면모만 보여준 대왕이었다. 그러나 유아인을 통해 대왕은 “나에게도 청춘이 있었다”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50부 가운데 15회, 16회를 거치면서 역시 정변에서는 한 치의 패배도 용납지 않는 패권군주의 면모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결정적 승세를 가늠하는데 있어서 15회에서 오히려 정도전보다 천부적으로 앞서고 있음을 살짝 내비친 후 16회에서는 불후의 명작 외화 ‘대부’의 마이클 꼴레오네와 같은 승부사로 등장했다.
 

▲ 왼쪽은 '육룡이 나르샤'의 해동갑족 모임에서 엄포를 놓고 있는 이방원(유아인). 오른쪽은 '대부'에서 아버지 빅토 꼴레오네가 입원한 병원에 의료진과 경호원이 모두 사라진 모습에 의심을 갖는 마이클 꼴레오네(알 파치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1972년 작품인 ‘대부’에서 알 파치노가 배역을 맡은 마이클 꼴레오네는 마피아 두목 빅토 꼴레오네(배우: 말론 브란도)의 셋째 아들이다. 가업을 물려받을 큰형 산티노 꼴레오네(배우: 제임스 칸)와 달리 마이클은 대학도 다니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훈장도 받은 모범국민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저격을 받는 사건 이후, 급격히 가문의 마피아 사업에 관성적으로 끌려들어가 마침내 아버지의 뒤를 잇는 보스가 되고 영화 말미에 아버지보다도 더 잔인무도한 대부임을 과시한다.

24일 방영된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원은 장인인 민제가 귀족들 회의를 주동하는 자리를 미리 알아내 가짜 화약과 무사들을 이끌고 쳐들어가 이들이 적대세력에 넘어가는 것을 막아내고 오히려 우군세력으로 묶어 놓았다.

비밀 장소를 알아내는 장면부터 결정타를 날리는 장면은 ‘대부’의 마이클과 닮은 꼴이다.

궁지에 몰린 적대세력이 꼴레오네 가문에 휴전을 요청하고 안전을 위해 약속장소를 비밀에 붙였다. 그러나 마이클은 형 산티노의 도움으로 장소를 미리 알아낸 후 먼저 숨겨둔 총을 꺼내 적의 우두머리 버질 솔로조와, 그와 야합한 경찰총수 마크 맥클러스키를 죽인다.

이전까지 마이클은 집안의 불법적인 일에 전혀 관련된 적이 없었음에도 이런 엄청난 일을 스스로 기획해 형을 설득하고 자신이 직접 해치운 것이다.

두 인물 모두 속한 그룹내에서 현재 상황에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거침없는 행동에 나섰다.

실제 역사 속의 태종 이방원과 영화가 아닌 원작소설 ‘대부’ 속의 마이클 꼴레오네도 닮은 점이 있다. 가족에 대해서다.

영화 ‘대부’에는 마이클의 부인 케이 애덤스(영화에서는 다이앤 키튼 등장)가 대부 아내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장면이 생략됐다. 너무나 잔혹한 본능을 드러낸 남편에게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 끝 장면이다.

소설에서의 케이는 이 때 아이들을 데리고 마이클을 떠나 친정으로 간다. 진정하는 시간이 지난 후 마이클의 의형 톰 하겐(영화에서는 로버트 듀발)이 설득하는 ‘특사’로 케이를 찾아온다.

톰은 케이에게 마이클의 한 마디를 전한다. 세상 모든 사람을 죽일 수 있어도 케이와 아이들만큼은 못 죽인다는 것이다. 웬일인지 케이는 이 말을 듣고 짐을 싸서 마이클에게 돌아간다. 이것이 소설 ‘대부’의 끝 장면이다.

태종 이방원이 저런 얘기를 입에 담은 적은 없지만, 그가 보여준 행적이 마이클의 다짐과 일치한다.

권력을 잡고 임금이 된 이방원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미련을 두지 않고 조금만 권력의 욕심만 보여도 처형했다. 이렇게 죽은 사람 가운데는 원경왕후 민씨의 남동생 네 명이 포함됐다.

처가를 이토록 철저하게 파괴했으면서도 태종은 원경왕후의 지위만큼은 절대 훼손하지 않았다. 또한 원경왕후가 낳은 큰아들 제의 세자자리를 지켜주는데 생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제를 세자에서 폐하고 양녕대군으로 강봉한 후에는, 다른 후궁의 소생이 아닌 원경왕후 소생의 또 다른 아들인 충녕대군(세종대왕)을 세자로 삼았다. 아내인 원경왕후와 그녀 소생에 대해서는 권력을 잡을 때와 마찬가지로 절대 빈틈이 없는 보호자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세자를 교체하는 시점에서 기력을 너무나 많이 소진한 나머지, 두 달여 만에 세자에게 양위하고 이로부터 4년 후 승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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