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나오냐는 시간의 문제였다. 귀에 그다지 낯설지도 않은 어휘다.

 
‘반기업 정서’라는 단어다.
 
최소한 1988년 노태우 정권이 출범하면서부터 ‘반기업 정서’라는 단어는 소위 재계 5단체를 통해서 일성이 제기되고, 일부 언론에 의해 반복 재생산되는 과정을 거듭하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예전 경우보다 상당히 늦은 타이밍에 이 말이 튀어 나왔다. 또 아무개 아무개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재계 단체의 상근직 고위 간부들이 대신 나섰다. 아무래도 아직은 이것저것 저울질 해보려는 모양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부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이동근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부회장, 중소기업중앙회 송재희 부회장, 한국무역협회 김무한 전무 등 경제 5단체 부회장단은 26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긴급’ 회동을 갖고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정년연장, 대체휴일제 도입 등 노동 관련 현안에 대해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우리 경제 현실과 기업여건을 고려치 않은 과잉입법은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전 회동을 ‘긴급’히 만든 것은 아침식사하면서 조간신문을 보다 이심전심으로 달려나왔다는 상황으로 해석이 된다. 전날 밤에 이뤄진 약속이라면 상식적으로 ‘긴급’이란 말을 쓰기 어렵다. 평생을 부지런히 살아온 재계 간부들인데 긴급히 만나기로 하고서 잠을 자고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재계 5단체는 ‘최근 경제·노동 현안 관련 규제 입법 등에 대한 경제계 입장’이라는 공동 발표문에서 “최근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반기업 정서와 시장 경제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각종 경제 노동 관련 규제입법은 기업의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킴으로써 우리 경제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정치권의 프로세스에 재계의 불안 요인이 전혀 없지는 않다. 최고 통치권자가 조금이라도 경제 개혁에 관심을 보인다 싶으면 선도적으로 뚜렷한 색깔을 천명하는 정치인이 ‘살벌’한 법안을 하나 들고 나오고 평소에 여기에 반대 소신을 지니던 원로 의원들까지 공동발의 형태로 도장을 찍어주는 현상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문제까지 서로 엄살을 주고받으며 정치투쟁 하듯이 여론전으로 몰고가는 현실이 아직은 지속되고 있다.

이번 모임이 재벌 회장들 지시를 부회장들이 받아서 만든 것인지, 부회장들 자체의 판단으로 만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든, 노무현 정부 시절에 반복적으로 내놓던 어휘 그대로 박근혜 정부에서 써먹는 것이 얼마나 통할지 모를 일이다. 그동안 잘못을 저지르고 교도소에서 형기라도 충실히 채운 재벌 회장 단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조금 더 귀가 기울여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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