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기자는 현재 본지의 만필을 통해 ‘제1차 왕자의 난, 무인정사의 재구성’을 연재하고 있다. 태종 이방원이 정권을 잡은 무인정사를 일으킨 지 617주년이 되는 지난 10월7일 경복궁과 통인동, 안국동 등 당시 현장을 살펴본 후 정황을 재구성한 만필 6회를 썼고, 앞으로도 평론 중심으로 연재를 이어갈 예정이다.

만필에서는 역사와 다른 상상을 절대 하지 않고 있다. 기록된 역사를 재구성해 보면서 과연 그것이 타당한 기록인가를 따져보고 있다.

관련 만필을 쓰는 사람으로서 최근 방영중인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인기 배우들이 열연하는 드라마 덕택에 기자의 만필에도 독자들의 관심이 더해졌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자의 만필과 ‘육룡이 나르샤’는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성격은 전혀 딴판이다. 만필은 역사와 어긋난 상상을 더할 수가 없다. 역사의 설명이 없는 부분에 상식을 동원한 상상을 추가하기는 한다.

‘육룡이 나르샤’는 역사가 아닌 창작의 영역이다. 이 작품과 같은 ‘팩션 사극’ 뿐만 아니라 정통사극을 표방하는 다른 드라마도 어디까지나 역사가 아닌 창작물이다. 드라마들끼리 누가 맞는 역사냐 아니냐 다투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정통사극으로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한 KBS ‘정도전’에도 명백히 사실과 다른 장면이 들어간다. 제일 아끼는 세자가 끌려 나간 마당에 이성계가 아들을 제치고 정도전의 안위부터 염려한다는 건 기록뿐만 아니라 사람의 상정과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정한 이 드라마의 성격이다.

기자는 만필을 통해 정도전이 죽음을 맞는 자리에서 시를 읊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관군의 반격을 극도로 염려하고 있는 이방원이 “저 입도 고깃덩어리다”라는 폭언을 하면서 처형을 지시하던 밤에 죽을 사람이 시 한 수 짓는 것을 지켜봤다는 얘기가 너무나 현실적이지 못해서다.

그렇다고 이것을 역사왜곡이라고 트집 잡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이 장면 또한 창작물인 드라마의 연출일 뿐이다.

기자 개인에게 한민족의 역동성이 가장 돋보이는 시기는 후삼국시대고, 인물로는 태종대왕 이방원이다. 좀 더 역사를 공부하면 이런 평가가 바뀔지는 모르겠다.

원래 관심이 많던 이방원에 대한 이런저런 시도는 웬만큼 졸작이 아닌 이상 모두 흥미를 갖게 된다.
 

▲ 실제 역사속 조선 태종대왕의 일대기에 관심이 많은 기자한테는 이런 장면이 특히 기상천외하게 다가온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원(유아인)이 분이(신세경)를 달래려다가 팔뚝을 물고 있다. 분이에게 두어차례 먼저 물린 뒤다. 그러나 16회를 지나면서부터 어릴 때 천방지축이던 모습보다 철저한 패권가로서 이방원의 소양이 드러나는 빈도가 늘고 있다. /사진=SBS 홈페이지.

 

MBC 신봉승 사극이나, ‘용의 눈물’ ‘정도전’이 아무리 훌륭한 ‘정통 사극’이라 해도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여기서 흥미의 시작이나 생산적인 상상을 얻는데 그쳐야 한다. 드라마 본 것을 역사책 본 것과 동등하게 여기는 건 위험천만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는 때로 역사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무너뜨릴 때는 상고시대 인구가 부족한 때라 병차 500~700 승에 5만명 이내의 병력으로 전쟁을 했다는 것이 상식적 역사 기술이겠지만,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 봉신연의는 우주의 모든 신이 이 전쟁에 참전한 아시아판 ‘일리아드’로 서술했다.

드라마가 아닌 게임으로도 비유하자면, 삼국지연의에 깊은 아쉬움을 가진 사람들은 게임 속 유비가 돼서 조조의 핵심참모 사마의나 순욱을 거느려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는 이렇게 까지 각색했다간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인물의 성격은 다양하게도 바꿔볼 수 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임견미를 가공화한 길태미나, 전혀 다른 사람으로 재탄생한 이방우(이성계의 맏아들)는 이런 각색이 효과를 본 경우다.

단, 기자는 아직까지 드라마 분야를 제대로 취재하거나 공부한 적은 없다. 과연 어느 선까지의 각색이 정답이냐는 질문에 대답을 내놓을 수는 없다. 전문가들이 이런 방향의 쓴 소리를 내놓는다면 드라마 제작자들이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역사와 비교해서 한 줄 한 줄 이것저것이 틀렸다라고 비교하는 것은 경우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런 분들이시라면, 기자는 감히 기자의 무인정사 만필을 한 번 방문해 주시기를 청해본다.

민족사에서 근대 법치국가를 만드는데 평생을 헌신한 태종대왕은 아들 세종성군의 한글창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태종대왕이 없었다면 한글 창제는 1446년보다 한참 늦어졌을 것이라고 본다.

이토록 민족사에 헌신하신 분인데 때로는 최고 배우들을 통해서 청순한 연애 좀 해보면 안되나?라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생각의 틀을 벗어난 이야기 전개를 흥미롭게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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