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 상권 발달하면 재건축 이유로 재계약 거부하는 사례 빈발

▲ 출처=MBC 시사매거진 2580

 

[초이스경제 김슬기 기자] 그간 상가 권리금은 건물주를 배제하고 세입자들끼리 관행적으로 지급했다는 이유로 법적 보호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이에 지난 5월엔 국내 상가 권리금 규모가 33조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건물주로부터 억울하게 내쫓기는 상가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가건물임대차 보호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세입자들의 지위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이런 가운데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취약한 권리금 보호규정으로 인해 눈물짓는 소상공인들의 사연을 집중 부각시켜 눈길을 끌었다.

30일 방송계에 따르면 '시사매거진 2580'은 상권이 발달할수록 내쫓길까 불안해 하는 상가 세입자들의 사연을 전했다.

8년 전 북촌 골목에 옷가게를 연 정명진씨는 당시 2000만 원의 권리금을 집주인에게 지급했다. 그러나 최근 북촌 상권이 발달하면서 건물주는 정명진씨에게 '리모델링을 하겠다'며 가게를 비우라고 요구했다. 정씨는 "2000만 원을 돌려주면 나가겠다고 했지만 법에 규정이 없기 때문에 못 준다더라"며 억울해 한다.

정씨와 같이 권리금과 시설 등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세입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개정법은 권리금을 법조항에 명시하는가 하면 건물주는 세입자가 새로운 사람으로부터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게 협조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상가 세입자들은 바뀐 것이 별로 없다고 하소연한다.

서울 도심에서 국수집을 운영하는 이대일씨는 30년 넘게 다니던 전자회사에서 퇴직한 뒤 퇴직금과 대출금 1억7000만 원을 들여 식당을 열었다. 권리금만 8500만 원 이었지만 장사 시작 1년 만에 건물주가 바뀌었고 새 건물주는 재건축을 하겠다는 이유로 나가달라는 말을 전했다. 관련법이 개정될 것이란 소식에 희망을 걸었던 이대일씨는 "개정법에서도 건물주가 재건축을 한다고 하면 보상받을 길이 없다"면서 "다른 세입자에게 양도하려 해도 임대인이 새로운 세입자에게 재건축 사실을 알리면서 들어오겠느냐고 묻는데 누가 들어오겠느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임대차 분쟁 사례 중 재건축 관련 내용이 60%를 차지한다.

김영주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건물주는 상권이 발달할 때 재건축을 하려고 한다"면서 "건물이 낡아서 영업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하고 건물을 고쳐야겠다는 임대인은 없는 상황에서 열심히 일한 임차인들의 피해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건물주가 기존 상인이 새로운 세입자로부터 권리금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례도 있다. 최근 이색 맛집을 찾는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한 서울 연남동 일대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박춘옥씨는 "4개월 전 새 건물주가 가게를 쓰겠다고 비워달라더라"며 "다른 곳에서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새로운 임차인을 찾아 계약했지만 건물주는 그 계약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법적 분쟁을 불사했다"고 말한다.

박씨는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 사는데 변호사 비용도 부담이다"는 말과 함께 "상권이 발달해서 건물 가격이 올라가면 건물주도 좋은 건데 왜 상인을 쫓아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건물주가 세입 상인의 권리금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내쫓으려는 이유는, 그래야만 다른 세입자로부터 월세를 높여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목돈이 들어가는 권리금을 없애는 대신 건물주가 임대료를 2~3배 가량 높게 받는 사례가 늘면서 상가 세입자들은 더욱 애가 탄다.

이에 전문가들은 을의 위치에 있는 상인들이 일부 건물주의 횡포에 대처할 수 있도록 각 지자체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5년의 임차 기간을 더 늘리는 등 보안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권리금에 대한 건물주의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김승종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건물주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지 건물만 사서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며 "임차인이 노력해서 영업적 가치가 높아지면 건물 가격도 같이 올라가는 상생관계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서 장사하는 상가 임차인들의 평균 임대 기간은 지난해 기준 21개월에 그친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근무 기간인 30개월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시사매거진 2580' 제작진은 "들어갈 땐 내야만 하지만 나갈 때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권리금 부담을, 언제나 을이 감당하고 싸우지 않으면 최소한의 권리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여전하다"면서 "건물주와 임차상인 간의 상생대책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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