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김완묵 기자] 삼성그룹의 올해 정기 임원 인사에서 띄는 인사는 연구개발 분야에서 처음으로 여성 부사장으로 승진한 삼성SDI의 김유미(57) 부사장인 듯하다.

주요 언론들은 '배터리와 결혼한 여자'로 소개하며 연구개발 분야에서 '여성 명장'이 탄생한 것을 반기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에게는 남은 꿈이 있다. 바로 우리 기업이 뒤처져 있는 배터리 소재 개발이다. 배터리 완제품은 우리가 앞서 가고 있지만 아직도 그 속에 들어가는 소재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김 부사장이 배터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남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2년 차인 1982년 대덕연구단지 화학연구소에 공채로 입사해 전지 소재를 연구했다. 1983년에 표준연구소로 옮긴 후에도 이 분야 연구개발에 주력했다.

삼성은 1996년 2차 전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김 부사장을 '핵심인력'으로 스카우트했다. 김 부사장은 "입사 당시 연구소의 기술이나 제품이 실제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치 않지만 삼성에서는 그게 가능할 것 같았다. 2차 전지를 연구하면서 연구 결과가 실제 제품으로 나오고 판매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고 뒤돌아봤다.

삼성SDI가 개발한 2차전지 가운데 김 부사장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 없다. 원통형 전지부터 각형, 폴리머까지 김 부사장은 삼성SDI 전지 개발의 살아 있는 역사로 불린다.

삼성SDI는 원형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설치한 지 6개월 만인 1998년 5월 세계 최고용량의 1650mAh를 개발했다. 이 제품의 개발 주역도 김유미 부사장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1400mAh의 제품이 주류였다.

2차 전지는 개발 후 피를 말리는 제품 승인 과정을 겪었다. 까다로운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켜야 통과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김 부사장은 삼성SDI 임원 가운데 항공기 탑승기록이 제일 많다. 고객을 설득하기 위해 수없이 미주, 유럽을 오갔다.

김 부사장은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그래도 회사나 그룹에서 흔들리지 않고 2차 전지를 미래수종 사업으로 밀어줬기에 오늘날 세계 1등이 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 부사장의 꿈은 이제 '소재 일류화'다. 배터리는 일류화됐으나 그 속에 들어가는 소재는 아직 개척해야 할 분야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 부사장이 후배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단어는 '이니셔티브(Initiative)'다. 그는 "'업무에서 옳고 그른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남이 시키기 전에 스스로 실행한다'는 의미"라며 "자신이 결정권을 갖도록 상황을 만드는 것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가장 좋은 회사생활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재가 없도록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품과 기술뿐 아니라 사람도 대체재가 없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며 "회사 안에서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만큼 자신의 경쟁력이 높다"고 조언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는 반려자를 만날 때를 놓쳐버렸다. 유일한 여가·취미 생활은 대전에 계시는 어머니 집에서 한가롭게 TV를 보는 것. 그래서 삼성SDI 후배 직원들은 김 부사장을 '배터리랑 결혼한 여자'라 부르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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