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1979년 MBC 일일사극으로 ‘연지’라는 작품이 있었다. 정통사극의 대부 신봉승 작품의 하나다.

드라마 제작의 물질적 여건이 크게 부족하던 시절이다. 이 때 신봉승 사극은 오늘날의 대작들이 쏟아져 나오는 토양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신봉승의 작품은 언제나 부동의 여주인공 김영란과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김영란은 신봉승의 대본 속에서 망해버린 고려 왕실의 왕녀, 연산조 충신 내관 김처선의 손자며느리(내관이지만 대대로 아들을 입양해서 손자며느리가 됐다), 중종조 치맛바람의 대명사 정난정, 사도세자의 부인으로 세자빈은 됐지만 왕후는 되지 못한 혜경궁 홍씨 등 웬만한 조선시대 여인이 모두 김영란의 연기를 통해 형상화 됐다. 장희빈 빼고 유명한 여인은 거의 다 맡았다고 할 수 있다.

‘연지’는 이 가운데 초창기 작품에 해당한다. 고려 왕녀인 연지는 가슴 속에 고려 부활의 열망을 품고 있다. 때는 태종 이방원(정욱 연기)이 등극한 후다. 태종의 측근으로 이숙전(이정길 연기)이 등장하는데 실제 인물 이숙번을 각색한 것이다.

무소불위의 이숙전은 횡포를 부려 이미 시집을 가 아들을 낳은 연지를 자신의 소실로 들인다. 연지가 이런 굴욕을 참으며 사는 이유는 똑똑한 아들이 연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다. 조선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마침 그녀의 아들이 세자의 신임을 얻었다.

세자는 훗날 양녕대군으로 쫓겨나는 인물로, 학문을 멀리하고 방탕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다. ‘제3교실’에서 문제아로 단골 등장했던 이계인이 양녕대군으로 등장했다.

당시 시청자들은 이러한 사극의 각색이 익숙하지 않았다. “연지 혼자 모든 것을 다했냐”는 비난이 나왔다. 지금같은 시청자 게시판이 없던 시절이라, 이들의 의견을 접한 TV 비평가나 기자들이 가끔 이런 쓴 소리를 했다.

하지만 세월이 가고 작품이 거듭될수록, 신봉승-김영란 사극은 완성도를 더해 갔다. 마침내 혜경궁 홍씨를 다룬 ‘안국동 아씨’에 이르러서는 일체의 비판을 신문에서 찾기 힘들었다.

여주인공을 김영란으로 고정한 채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대부분이 재현됐다. 이것은 나중에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전대미문의 초대형 기획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

사극은 잘 나가는 여배우들에게 ‘양날의 검’과 같다. 대사부터 현대물을 연기하는 것과 다르다고 한다. 표정도 좀 더 과장스럽게 해야 한다. 시트콤 ‘세 친구’에서 안문숙이 안연홍을 “야, 사극!”이라고 부른 건 안연홍의 치켜 뜬 눈초리 때문이다. 실제로 안연홍은 ‘용의 눈물’ ‘불멸의 이순신’ 등 사극에 많이 출연했다.

사극의 전통 복장도 여배우에게는 문제가 된다. 남자는 삿갓 쓰고 상투 틀면 모두 그 얼굴이 그 얼굴이지만 여성은 그렇지 못하다.

수려한 미모를 가졌더라도 조선시대 여성 복장을 하면 이미지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가채를 하고 있으면 이런 문제가 없지만 쪽진 머리만 하는 복장은 여배우들의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

김영란은 이런 외모의 함정도 거뜬히 이겨냈다. 연기력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요즘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여주인공인 신세경은 예전 김영란의 활약을 떠올리게 하는 연기자다.
 

▲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분이로 등장하고 있는 신세경. /사진=SBS 홈페이지.

 

아직까지는 정통사극보다 이른바 ‘퓨전’이나 ‘팩션’사극에만 등장하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의 말 못하는 궁녀 소이로 많은 인기를 모았다.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사극에 필요한 외모 조건도 갖춰서 그 시대 여성 복장을 잘 소화할 뿐만 아니라 연기력도 갖췄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그녀가 맡은 분이의 활약이 너무나 많아서 ‘분이가 나르샤’라는 놀림을 받기도 한다. 이 대목이 바로 김영란의 ‘연지’를 닮은 점이다.

등장인물의 역할이 지나치게 많다는 건 연기자 책임이 아닌 연출자나 작가의 문제다.

하지만 대선배인 김영란의 사례에서 보듯, 이것은 사극 ‘퀸’으로 등극하는 과정의 통과의례일 수 있다. 그래도 이 작품은 작가들이 좀 더 치밀하게 사건 전개의 앞뒤를 개연성으로 연결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기 도중 피멍이 든 여배우 얼굴을 보면서 당연히 그러한 의지를 다질 것으로 믿는다.

탁월한 사극 연기자는 이걸 보고 자라는 사람들에게 무수히 훌륭한 역사적 영감을 심어주게 된다. 사극 보면서 역사 공부한다는 건 경우에 맞지 않지만, 흥미를 불러일으켜 제대로 관심을 갖게 해주는 것으로는 사극만 한 것이 없다.

사족: 가장 유력한 차세대 사극의 ‘퀸’이 신세경이다보니, 어쩌면 그녀가 조선의 왕후로 성장(盛裝)한 모습을 보기는 당분간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김영란도 젊은 시절의 전성기 때는 세자빈까지만 올랐을 뿐이다. 그녀가 처음으로 왕후(사실은 이 또한 왕후를 못한 대비마마)가 된 것은 1994년 ‘한명회’에서의 인수대비다. 38세 되던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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