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외환위기 극복했던 산실...또다시 구조조정 총대 매야

▲ 사진 출처=뉴시스

 

[초이스경제 최원석 경제 칼럼] 금융위원회가 다음 주 부실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윤곽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한국의 한계산업·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더는 늦출 수 없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무디스는 “1997년의 한국을 기억하기 때문에 신뢰를 보낸다”고 했다. 한국의 구조개혁, 구조조정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일본·중국보다도 높은, 아니 프랑스와 똑같은 Aa2라는 역대 최고 등급을 부여한다고 강조했다.

무디스의 주장은 틀린 얘기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을 최악의 위기로 내몰았지반 다른 한편으론 한국의 저력을 세계 만천하에 알린 ‘전화위복의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금모으기로 시작한 한국의 합치된 정신은 대단했다. 내것을 다 던져서라도 나라를 구하고 보자는 전 국민적 의지가 세계를 감동시켰다. 아무리 부실이 많아도 덩치큰 기업이나 금융기관은 건드릴 수 없다던 ‘대마불사’의 논리도 더 이상 당시 금융감독위원회(금융위원회의 당시 이름)의 구조조정 앞엔 통하지 않았다. 거대 그룹인 대우그룹이 해체됐고 숱한 은행이 문을 닫거나 다른 은행에 합병됐다.

당시 금융감독위원장들의 기세도 대단했다. 대형 재벌의 구조조정 본부장들을 수시로 불러다 다그쳤고 때로는 거대 재벌 총수와 막후 협상을 벌이며 구조조정을 압박하기도 했다.

초대 금융감독위원회를 이끌었던 이헌재 당시 위원장은 “기울어가는 배위에서 모든 사람이 살려고 하면 안된다”면서 희생을 전제로한 구조조정을 독려했다. “썩은 사과를 골라내야 나머지 사과들이 위태로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입버릇처럼 쏟아냈다. “고름이 살로 가지 않는다”는 논리도 자주 부각시켰다. “살이 썩어 가는데 고름을 짜내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며 부실기업을 치료하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그리고 이런 논리 속에 부실기업, 부실은행에 근무하던 많은 사람들이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다. 직장을 떠나는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우리 몫까지 다 해 달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이곤 했던 일은 한국인들이 구조조정에 얼마나 협조적이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급기야 한국은 대규모 부실을 덜어내고 새로운 경제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로 우뚝 서게 됐다.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선진국으로부터도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일본의 요청으로 한국의 구조조정 기법을 강의하러 현해탄을 건너는 일까지 일어났다.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배우기 위해 러브콜 하는 나라가 많듯이 한국의 구조조정 성공사례를 배우려는 국제사회 손짓도 잇따랐다.

그런데 무디스가 과거 이런 한국의 ‘전화위복 사례’를 모를 리 없다. 당시 무디스도 한국의 성공적인 구조조정 사례를 지켜보며 우리의 신용등급을 복원시켜 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무디스가 최근의 한국 정치-경제 상황이 1997년 못지않은 어려운 처지에 몰렸는데도 “한국의 구조조정, 구조개혁 저력을 믿는다”면서 이번에도 최고의 신용등급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뭘 의미하는가. 한국이 이번에 구조조정, 구조개혁에 실패하면 다시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금융위원회의 전신인 금융감독위원회가 한국의 구조조정을 위해 출범한지도 벌써 17년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이런 금융위원회의 어깨가 다시 무거워지고 있다. 현재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한계산업과 한계기업, 그리고 한계가계가 한국의 위기를 다시 부채질 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가 휘청이면서 조선, 철강, 해운, 건설, 석유화학 등 주요 업종의 기업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해운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일부 대형 그룹은 신용등급을 강등당하고 있다. 재무구조가 나빠진 일부 대형 그룹에선 이제 임직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것조차 버거워지고 있다. 일부 대기업에선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시켰다가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많은 기업들의 사정이 크게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최강의 그룹인 삼성그룹 마저 일부 계열사를 팔고 빌딩을 처분하고 무급 휴직(일부계열사서 시행)을 실시할 정도로 한국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1997년 못지 않은 다급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그러자 각계에서 구조조정을 빨리 하라며 정부를 다그치고 있다. 한국은행이 구조조정의 다급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고 새누리당의 최고 경제통인 이한구 의원은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정치, 경제가 위급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지도층부터 정신차리고 특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희망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전방위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금융위원회가 다음 주에 대기업 구조조정 진행 상황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 7월 구조조정 대상 중소기업을 선정한 뒤 진행하던 대기업 수시 신용위험 평가 결과를 다음주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금융당국과 채권은행이 그간 평가 해 온 368곳에 대한 신용위험 점검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 또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은 등급에 따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분류 하거나 퇴출시킬 예정이다. 금융위원회는 내년 말까지 운영되는 한시조직인 기업구조개선과를 가동해 온 만큼 어떤 진전된 구조조정 결과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지금 금융당국과 채권은행들은 정기 평가보다 대상 기업의 범위와 숫자를 늘려 신용 위험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진행된 대기업 신용위험 조사 결과가 곧 윤곽을 드러낸다. 구체적인 대기업 이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상 기업 수와 전반적인 규모라도 밝힐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서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최근 “현재 기존에 선정된 대기업과 중소기업 일부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무디스까지 인정한 금융위원회가 이번 발표 때 과연 어느수준의 구조조정 의지를 드러낼지 주목된다. 금융위원회가 납득할 수준의 구조조정 윤곽을 내놓을 경우 시장은 안도하겠지만 미흡한 수준의 결과를 발표할 경우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줄 전망이다. 금융위원회가 17년전의 명성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무디스가 금융위원회의 그런 잠재력을 믿고 한국의 신용등급을 프랑스 수준으로 올려놨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