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먼저 밝혀둘 것은, 이 두 드라마가 최악이었다고 등급을 매기는 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시청률에서 성공한 드라마들이기 때문에 편하게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몇몇 드라마는 소문만 듣고도 아예 그 채널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마치 어쩌다 한번 주워들은 단어 과시하듯이 아무 때나 ‘국본’이란 단어가 난무하고, 죽은 뒤 내려진 시호를 생전의 이름처럼 쓰는 사극들이다. 이런 작품들과 달리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은 작품이라면 무시 못할 장점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시청률이 25.4%에 달한 성공적 드라마다. 지금 방영중인 ‘육룡이 나르샤’의 훗날 이야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뿌리깊은 나무’를 보지 않았다. 임금이 있는 전각 안에 칼을 든 무사들이 도열한 장면을 보고나서다. 사극에 대한 기본 감각만 있어도 나올 수 없는 장면이라 판단되면서 바로 흥미를 잃었다.

▲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한 장면. /사진=SBS 홈페이지.

임금 근처에서 누구도 무기를 가질 수 없는 법도는 조선왕조만 유난을 떤 것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 드라마 ‘한무제’와 비교됐다. 위청 곽거병 이광 등 당대의 무장들이 수시로 흉노정벌을 논의하기 위해 어전에 들 때, 전각 입구에 자신의 칼을 걸어놓고 입장했다. 지난 22일의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성계 일행이 조민수의 연회에 참석하려고 칼을 맡겨놓을 때 등장한 것과 같은 칼 받침이다. 

임금 근처에서는 누구도 무기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은 한국과 중국 왕조의 오래된 임금 경호 원칙이다. 경호에서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장한 사람들은 임금과 거리를 두고 있고 왕의 좌우는 비무장의 환관과 궁인들뿐이다. 철통같은 경호가 뚫린다면 비무장의 환관과 궁녀들이 우선 맨몸으로 막아서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

이런 경호 원칙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은 전국시대 말기 형가의 진나라 왕 암살 시도다. 이 때 진왕이 나중에 진시황제가 되는 사람이다. 형가가 사신으로 가장해 숨겨 들어간 단검을 진왕에게 휘둘렀는데 왕의 호위무사들은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칼을 들고 왕에게 다가갔다는 죄로 처벌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환관 조고가 약주머니를 던져 형가의 주의를 분산시킨 동안 진왕이 자신의 칼을 빼 형가를 죽였다.

그러나 사람마다 드라마 보는 취향은 제각각이어서 뿌리깊은 나무는 이런 고증의 소홀함에도 많은 인기를 모았다. 한 장면의 소홀함이었을 뿐, 드라마 속 사건 전개의 개연성과는 무관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옛날 왕조의 제도와 관습 등에 익숙지 않은 드라마 제작자들이 사극을 만들 때는 누군가의 감수를 받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남기는 장면이다. 사극에 정통한 작가들은 그들 자신이 사학자 못지않은 지식을 갖추고 있지만 처음 도전하는 작가들은 전문가 도움을 꼭 받아서 민망한 장면을 피했으면 한다.

가끔은 예전의 법도가 와전되는 경우도 있다. 한 예가, 태종 이방원의 어전에 뛰어든 호랑이를 활로 쏘아 죽인 송거신과 김덕생이 처형됐다는 낭설이다. 왕이 있는데서 활을 쏜 죄가 왕을 구한 죄보다 더 무거웠다고 말도 안되는 해석을 붙이는 사람도 있다.

이 사건은 이방원이 등극한 후가 아니라 왕자 시절인 태조 4년 발생한 것이다. 장소도 왕궁이 아닌 사냥터다. 정안군 이방원이 사냥 도중 표범의 공격을 받았는데 송거신이 표범을 자신에게 유인하고 김덕생이 활로 쏘아 잡았다는 사실이 이렇게 와전됐다.

두 사람은 당일 태조 이성계로부터 후한 상도 받았다. 김덕생이 일찍 죽기는 했으나 죄를 지어 죽은 것도 아니고 세종이 그의 사위도 중용할 정도로 공을 높이 평가했다. 송거신은 부원군에도 봉해질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다가 79세로 타계했다.

이런 사실이 와전된 것은 김덕생과 동명이인의 죄수가 처형당한 사실 등이 겹쳐 몇몇 말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실을 왜곡한 때문일 것이다.

2000년 ‘태조 왕건’은 중간쯤까지 열심히 시청하다 중단했다. 김성한의 소설 ‘태조 왕건’을 매우 흥미 있게 읽었고 그 연장으로 이광수의 ‘마의 태자’도 읽었기 때문에 상당히 기다리던 드라마였다. 왕건으로 캐스팅된 최수종이 김성한 작품 속 이미지와 비슷해 기대가 더욱 높았다. 견훤이 궁예 휘하 장수인 왕건에게 빼앗긴 나주를 되찾으려고 반격하는 장면까지는 시간도 맞춰가며 이 드라마를 시청했었다.

그동안 당나라 황제에게 여왕이 손수 바느질을 해서 바친 신라 임금들이 자신을 황제라고 칭하는 어색한 장면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주 전투를 앞두고 더 이상 참지 못할 장면이 나오고야 말았다.

왕건의 책사라고 하는 자가 “삼국지 제갈량을 흉내 내서 동남풍을 빌어보겠다”고 말했다.

후삼국시대는 동란으로 백성들이 고초를 겪은 시기지만,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영웅들이 활동하던 시기다. 이런 시대의 영웅담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서 남의 나라 이야기 구도에 갖다 맞춘다는 말인가.

더구나 이 시대에 제갈량 동남풍은 나올 수도 없는 소리다. 삼국지에서 이런 호풍환우는 당연히 정사가 아니라 삼국지연의에나 등장하는 이야기다. 삼국지연의를 지은 나관중은 원나라 때 사람이니 왕건보다 400년 후쯤 태어난다. 왕건의 책사는 400년 후 나올 역사소설을 미리 읽었다는 것이다.

이후로는 이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장면에서 또 삼국지 흉내를 냈는지 알지 못한다.

사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보게 될 시청자들 마음 한 구석에 내나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 단지 흥미뿐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재미있게 잘 만들었지만 뭔가 자긍심에 거슬린다던지, 또는 상당수 시청자들이 갖고 있는 지식을 우롱하는 듯한 엉성한 고증은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

만약 옛날 일에 익숙하지 않은 제작자라면, 필히 전문가 감수를 거쳐주기를 바란다. 물론 전투에 임하는 장수들이 자꾸 투구를 벗고 말에서 내리는 것까지 100% 근절하라고 감히 요구는 못한다. 기마 무예를 갖춘 연기자가 몇이나 된다고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겠는가.

다만 오로지 ‘흥미팔이’만 앞세워, 시청자들의 역사적 지성을 모독하지는 말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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