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창업군주 문공에게 빗발치는 상소가 쏟아졌다. 중산을 평정하러 간 악양이 적국과 내통할 자라는 것이었다. 악양의 아들이 중산에서 높은 벼슬에 있었기 때문이다.

 
월등한 군사력에도 좀체 승전보가 전해지지 않자 더욱 뚜렷한 내통의 증거로 간주됐다. 그러나 악양은 이 모든 것을 일축하고 커다란 승리를 거뒀다. 돌아와 승리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위문공은 그에게 큼직한 상자를 상으로 내렸다.
 
값진 물건이 들었을 것으로 기대한 악양은 집에 돌아와 상자를 열었다. 뜻밖에도 상자 안에는 편지만 수북이 쌓였을 뿐이다. 하나하나 읽어보니 모두 신하들이 자신을 모함하고 사령관에서 해임하라고 상소한 것들이었다.
 
악양은 곧 이 상자는 이 세상 그 어떤 금은보화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것임을 깨달았다. 임금의 자신에 대한 모든 신뢰가 담긴 상자였던 것이다.
 
다음날 악양은 다시 입궁해 진심으로 임금의 신뢰에 사은했다. 위문공은 그제서야 엄청난 재물을 상으로 내렸다.
 
사실 악양은, 뭇사람의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은 임금의 신뢰에 엄청난 희생으로 보답했었다. 악양의 문제가 됐던 아들이 끝내 중산의 임금한테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춘추시대의 진(晉)나라가 셋으로 갈라진 나라 가운데 하나가 위나라다. 위문공의 시대는 하루하루가 나라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악양 뿐만 아니라 서문표, 오기와 같은 유능한 인재들이 임금의 신뢰에 보답하는 헌신적인 노력으로 곧 위나라는 당당하게 전국7웅의 반열에 합류했다.
 
난세일수록 공직자들의 신뢰에 보답하는 처신은 너무나 절실한 것이다.
 
임금을 대하는 것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총애가 내일은 어떤 증오로 돌변할 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는 것은 사람으로 참으로 누려보기 힘든 혜택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욕하는데 최고 정상만이 나를 믿어준다면, 정말 옛날 표현대로 간뇌도지의 충성을 바칠만한 것이다.
 
 
대통령이 뭇 사람의 비난을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해 온 인물이 외국 나가서 추태를 부리다 나라를 망신시키고 스스로 일신도 망치고 말았다. 악양의 고사처럼 대통령이 그에게도 어떤 상자를 내린다면, 그 안에는 외국 경찰로부터 날아온 출두요청서가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인턴 하나를 대할 때도, 나를 그토록 믿어주는 대통령께서 보내주신 인력이라고 여겼다면, 속옷 바람에 대하는 자세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주군이 외국 한복판에서 이리저리 나랏일 챙기느라 여념없을 때 저 혼자 술판을 벌이는건 더더욱 상상도 못할 일이다.
 
고위직 인간들의 성추문 사건이 날 때마다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뉴스에서는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듯 한데, 이 사람들은 과연 부인의 얼굴을 어떻게 쳐다보고 살까.
 
사족: 악양의 고사에서 아들을 잃고 개선한 점은 나중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위문공은 악양에게 큰 상은 내리되 병권은 회수했다. 성공을 위해 아들도 희생시키는 사람이라면 과연 임금에 대한 충성은 변치 않을 것이냐는 이유에서였다. 난세인 전국시대였지만 한편으로 공자가 주창한 유교의 영향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도 엿보인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