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마이너스 금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빚을 진 사람이 이자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원금을 줄여가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그건 아닌 것 같다.

“돈 가진 사람들이 돈을 굴리기 더 어려워진 세상.” 본지 최원석 대표의 설명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졌던 대기업들의 현금 유보 행태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설명이다.

조금 더 살벌하게 표현하면 안 쓰고 탐욕스럽게 쌓아놨던 돈이 스스로 썩어 없어지게 되는 세상일 수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유례없는 저금리와 양적완화 등 돈을 마구 찍는 정책을 펼쳤다. 이들의 목적에 부응하는 모습도 나타났지만 한편으로는 값이 싸진 돈을, 앞날을 위해 쌓아놓는 행태도 지적이 됐다.

금리는 돈의 가격이다. 금리가 낮다는 건 돈의 가격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마이너스 금리는 돈의 특징인 기회비용을 없앤다는 것이다. 지금 가진 돈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가치가 높아지기는커녕 돈 역시 감가상각이 되는 상황이다.

꼭 필요한 이상으로, 탐욕적으로 돈을 쌓아놓은 자들에 대해 중앙은행들이 근본을 뒤집는 응징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중앙은행들의 본래 의도는 아니라 해도 결과적으로 그렇다.

그래도 돈에 따라 처지는 다르다. 안전통화로 평가되는 엔화는 마이너스 금리가 됐는데도 외환시장에서 더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설 연휴 중인 8일, 동아시아에서 도쿄 시장만 개장했을 때 117엔선에 올라갔던 미국 달러 대비 엔화환율은 11일 112엔대로 떨어져 있다.

0.1%에 불과한 마이너스 금리라면, 엔화같이 귀중한 재화를 보유하는 대가로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모습이다. 엔화 뿐만 아니라 금값도 계속 오르고 있다. 존중받을 가치 있는 재화의 가격은 오르는 모습이다. 

반면 산유국들이 시장점유율 싸움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석유는 현재로선 ‘존중받을 재화’의 목록에서 빠져있다. 11일에도 국제유가는 하락을 지속했다.

원화는 설 연휴를 마친 11일 외환시장에서 5.1원 상승하며 1200원을 넘었다. 원화가치가 더욱 떨어졌다.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욱 커져 전날 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의 발언 효과까지 모두 압도했다.

기준금리는 원화가 1.5%로 마이너스인 엔화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비싼 돈’이지만 시장의 평가는 정반대다. 마이너스 금리가 전세계적 흐름이 돼서 한국의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더욱 내려간다면, 한국이야말로 돈 가진 사람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져야 할 곳이다.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돈을 어디다 써야 한단 말인가. 물론, 하루하루 고달픈 서민에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때아닌 금고 업계 호황을 일으키며 돈을 쌓아놨던 사람들이 해야 할 고민이다.

만약 한국에도 돈 가진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날이 온다면, 비록 타의에 의한 것이긴 해도 정승처럼 쓰기를 바란다. 그렇게 유도하는 정책이 나오는 것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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