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작품 초연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실패...공연예술은 인내의 영역

[초이스경제 김용기 논설위원 칼럼] 최근 어느 날 오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하도 스팸성 전화가 난무하는 세상이라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 번호는 어쩐지 낯이 익은 듯도 했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하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바로 알아들었다.

10여 년 전 내가 운영하던 공연시설에서 공연을 했던 예술가다. 그 때 그는 내게 대관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그 금액이 상당했다.

대관료를 제대로 못 냈으면 다른 형편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당시 함께 일하던 우리 측 직원들은 필요한 조치를 취하자고 했지만 나는 내버려뒀다. 대관료조차 못 낼 정도라면 그 사람 심정은 오죽 답답하겠냐며 직원들을 말렸다.

독촉전화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한동안 그가 먼저 “어떻게든 해결 하겠습니다”라고 연락만 왔었다. 그러다가 2~3년이 지나면서 연락이 끊어졌는데 이번에 연락을 해온 것이다.

공연예술 업계에서는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곳과 같은 공공 문화재단들은 이런 경우 불가피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보니 재정 관리가 문화라는 명분에 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공공 문화시설이 대관료를 못 받는 경우가 발생하면 규정에 따른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앞선 칼럼에서 문화재단들이 경제적으로 살아남는 방법, 즉 생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도움만 받지 말고 스스로도 수익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것이다.

예술인들의 경제(재정) 문제를 얘기하는 김에 이번엔 공연 예술가들 얘기를 좀 해야겠다.

문화 예술인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세상 대부분 직업은 일하는 것이 곧 돈을 버는 것이다. 예술은 그렇지 못하다. 예술 혼이 동기가 돼서 하는 활동이니 그것이 꼭 돈이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술인들의 삶은 참 고달프다.

특히 내가 공연장 사업을 하면서 오래 지켜본 공연예술가들의 삶은 말할 수도 없다. 때로는 공연예술가의 혼을 타고난 자체가 형벌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문화 사업은 경제적 관점에서 성공률이 매우 낮다. 어떤 공연예술가가 나를 찾아와 작품을 무대에 올려보고 싶다고 했다. 영화로 나왔던 작품을 뮤지컬로 하고 싶다고 해서 한 시간동안 얘기하고 갔다.

그런데 냉정한 현실을 얘기하겠다.

나는 주말이면 대학로에 가서 공연을 본다. 저 작품을 내 공연장에서 해도 되겠는지를 살펴본다.

1000번도 넘는 공연을 보면서 내가 얻은 결론이다. 초연 작품은 십중팔구 실패한다.

초연이 성공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다. 아무리 경험 많은 사람이 만든 작품도 초연은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거의 예외가 없다.

‘명성황후’가 지금은 대단한 작품으로 명성을 떨치지만, ‘명성황후’도 몇 차례의 공연 실패를 거치면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굳이 예외를 찾는다면, 있기는 하다. 외국에서 건너오는 대형 라이센스 작품은 당연히 성공한다.

“미스 사이공 봤어?” “오페라의 유령 봤어?” “노틀담의 꼽추 봤어?”라고 물어는 보지만 국내 창작 예술을 봤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직 외국 유명작품과 수준 차이는 있지만, 나는 문화적 사대주의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국내 공연예술가들의 초연 작품은 대부분 실패한다. 그런데 초연이 없는 공연이 어디 있나. 이게 바로 공연예술가들이 처한 현실이다. 예술에 미쳤기 때문에 이 세계에 뛰어든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형벌(?)’이다.

알고 지내던 사람이 초연에 실패했던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렸다. 두 번째도 역시 어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마침 그 때 여유가 좀 돼서 약간의 도움을 줬다.

그의 두 번째 공연을 찾아보니 첫 작품 때보다는 나아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를 피하지 못했다. 여기서 말하는 실패는 경제적(재정적) 실패다.

그래도 초연 때와는 좀 달랐을 것이다. 적자가 나더라도 초연 때보다는 줄었을 것이다.

공연 예술가들은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되나? 그렇지 않다.

내가 그들에게 주는 대답은 “그래도 해야 된다”는 것이다. 깨지더라도 또 해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예술을 안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이 길에 뛰어든 것 아닌가. 실패했어도 다음에는 좀 적게 실패하고 그러다가 성공해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힘든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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