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크래프트 1에서 최강의 유닛으로 위세를 떨친 프로토스의 캐리어. 인터셉터를 꽉채운 캐리어가 6대 이상 모이면 승부는 그것으로 마무리됐다. 그 정도 군세는 전세를 엄청나게 유리하게 이끌어야 가능했다. 온게임넷의 김태형 해설자는 중계 도중 캐리어 함대를 보면 열광해서 '김 캐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진=초이스경제.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블리자드의 마이크 모하임 CEO가 1일 서울에서 구글 알파고에게 “스타크래프트로 한 판 붙자”고 도전장을 던졌다. 만약 구글이 도전에 응한다면 알파고가 아니라 알파스타란 새로운 이름을 써야할 지도 모른다.

모하임 CEO는 이 자리에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마지막 대전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고 말했다.

모하임 CEO는 국내 게임 팬들에게 낯선 인물이 아니다. 자신들의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엄청난 ‘대박’으로 이끌어준 한국의 게임 팬들을 인식하고 그는 수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2007년 스타크래프트2의 제작 또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전 세계 팬들에게 발표했다.

그런데 모하임 CEO와 블리자드에게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블리자드에게는 수 천 년 역사의 바둑에 도전할만한 엄청나게 위대한 제품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스타1, 즉 스타크래프트 1편 브루드워다. 바둑의 역사에 맞설 수는 없겠지만, 스타1 특유의 게임답지 않은 장중한 분위기, 그리고 바둑 돌들의 추상적 이미지와 다른 뛰어난 비주얼, 빠른 게임 진행 속에서도 가끔 한 시간 넘는 대전이 등장하는 예외는 스타1이 천년은 아니라도 반백년의 게임은 될만한 무기였다.

스타1은 성인들의 게임으로 파고들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직접 하는 것보다 전문 선수들의 게임을 관전하는 것이 더 크게 발달했다는 점에서 전무후무한 작품이다. 용산 아이파크 백화점의 e스포츠 스타디움과 강남 코엑스몰에서 터져나오는 관중들의 환호는 스타1만이 누린 특권이었다.

지금 한국 방송가에서 활동 중인 임요환, 홍진호, 기욤 패트리는 모두 스타1 시절의 선수들이다. 이들이 스타1 선수로 활동한 것을 기반으로 이렇게 방송인이 될 정도였다는 사실에서 스타1의 대중적 인기가 간접 설명된다.

이들의 이름 그 자체가 당시 게임에 열광했던 사람들에게 문화코드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스타1으로 인해 프로리그까지 생겼다. 처음엔 PC방을 중심으로 동호인들이 모여서 게임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를 중계하는 전문 게임 채널까지 생겼다.

대기업들도 이 판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동호인들의 길드는 대기업 소속 프로게임단이 됐다. 스타1 리그가 절정에 달했을 때 팀을 보유한 곳은 SK, KT, 삼성전자, CJ, STX, 르까프, 팬택 등이다.

전경련을 축소판으로 옮겨놓은 듯한 게임단들이 생겼지만, 대기업 어른들이 들어온 것은 스타1 게임계가 이미 탄탄하게 정립된 뒤다. 이 모든 것을 게임 좋아하는 ‘애들’만의 자생적 힘으로 토대를 갖춰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생산해냈다는 점이 놀라운 것이다.

모하임 CEO도 스타2를 발표할 때 “한국은 e스포츠의 성지”라며 이런 성과를 격찬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군 또한 스타1 팀을 창설해 입대하는 프로게이머들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워게임 연구의 차원에서도 진행된 일이다. 이 팀은 스타1이 사라지면서 함께 해체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10여년 열풍을 이끌었던 스타1은 그 열기를 스타2에 이어주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같은 회사 후속제품이지만 스타1만이 가진 장점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다.

스타1은 2012년 7월 삼성전자의 허영무에게 마지막 챔피언자리를 주고 방송에서 사라졌다. 스타2 마케팅에 더 이상 방해가 안 되도록 공식 무대를 내려와 다시 PC방 동호인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스타1이 사라지는 과정에서는, 난데없는 중계권 파동으로 원래 지적소유권 보유자인 블리자드를 쓸데없이 자극한 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스타2를 즐기는 사람들의 관점은 다를 수 있지만, 스타1의 향수에 젖은 사람이 보기에 스타2는 WOW 나 다른 게임들의 판타지 같은 성격에서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전략의 귀재 임요환, 무지막지한 전차군단을 토해내는 최연성, 강한 승부근성의 이윤열 같은 ‘명장’들이 탄생하던 스타1의 전쟁터 분위기와는 크게 달라 보인다.

자기들이 탄생시킨 스타1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블리자드만 깨닫지 못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때의 프로 선수들은 이제 나이가 30에 접어들어 손놀림 속도(action per minute, apm 으로도 집계됐었다)는 10대 같지 않다. 그래도 그 이름만 들어도 반갑다는 청년 뿐 아니라 중장년 팬들이 여전하다. 그 선수들을 지금도 보기는 보지만, 게임 화면이 아니라 각종 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모하임 CEO가 바둑을 언급하니 일정기간 바둑에 필적할 수도 있었던 스타1에 대한 향수가 새삼스럽다. 과연 스타1을 퇴장시킨 선택이 옳은 것이었나. 계속 아쉬움이 남는 의문이다.

어린 조카들만의 힘으로 개척한 놀라운 부가가치를 어른들이 상실하게 만들었다는 생각 때문에 아쉬움이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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