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간신이라고 하면 가느다란 눈초리에 굽신굽신하는 비굴한 자세를 가진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이처럼 ‘간신’이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위풍당당한 풍채를 가진 자들이 자신의 외모로 얻은 호감을 나쁜 일에 활용해 간신의 반열에 올라간 사례가 수두룩하다.

 

또한 충신이냐 간신이냐는 구분 또한 매우 주관적이다. 대개 국가의 흥망에 관한 결과를 가지고 논하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동의하는 명백한 간신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앞선 행적에는 대단한 충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놀라운 모범 사례도 존재한다. 명나라를 쇠약하게 만든 간신 위충현은 천계제의 입장에서 보면 목숨 걸고 황제를 지켜준 충신이다. 이런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천계제는 국정을 통째로 그에게 맡겼던 것이다.
 
누가 간신이냐 충신이냐에 대해 삼국지 허소는 매우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하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조조의 관상을 보고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라고 평했다. 때를 잘 만나면 충신일 사람인데 난세에 태어나 간신이 된다는 것이다.
 
간신 중에는 비록 사악한 뜻이 가득했다고 하나 그다지 국가에 해악을 못 미치는 자도 있고, 본래 인간성은 그다지 사악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국가에 엄청난 죄를 짓는 자도 있다.
 
얼마 전 엄청난 물의를 일으킨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의 경우 그동안 끊임없이 성품에 문제를 드러냈지만 사실 그의 추태로 인해 국가가 입은 피해는 체면의 손상 정도다. 시간이 지나면 치유가 될 수 있는 성격이다.
 
반면 박정희 대통령 말기의 차지철 경호실장은 개인의 독실한 신앙이나 청렴한 처신,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감히 타인이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군 선배가 그에게 청탁을 하기 위해 찾아가자 차지철 실장은 “잘 알겠습니다”라며 선배를 집무실 옆의 조용한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차 실장이 기도를 드리는 제단이 차려져 있었다. 그는 선배를 옆에 세워놓고 정말 온 몸에 땀을 쏟아내며 청탁의 내용이 이뤄지게 해 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선배는 뜨악해져서 더 이상 얘기를 붙이지 못했다.
 
굳이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래도 최고 통치자 입장에서 이런 처신을 하는 사람은 너무나 안전하게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얻은 대통령의 신뢰를 그는 인의 장막을 ‘주군’ 주위에 둘러치는데 활용했다. 히틀러의 친위대를 모방한 경호실 제복을 직접 만들 정도로 빈약한 지성을 드러냈던 그는 막강한 권력이 끝내 독이 돼 자신 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 비극적 최후를 맞도록 자초했다.
 
최고 통치권자의 입장에서 사람을 가려쓴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올바르냐 그릇되냐는 성품의 판단만으로도 부족하다. 오로지 결과적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냐를 따져야 하는 데 그것을 판단한다는 게 범부(凡夫)의 수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한국 정치사에서 대통령 또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지낸 사람들은 대부분 신의 경지에 다다른 안목으로 현인과 소인을 가려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이미 지난 2007년 당내 경선을 거칠 때부터 특히 순도가 높은 사람들을 중용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윤창중과 같은 매우 유감스런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지난 2007년 경선 당시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귀하고 곱게 자란 귀공자들은 모두 MB계열로 가고 ‘친박’에는 뚝배기스런 의리파들만 모였다는 비교도 있었다.
 
대통령 이전에 인간 박근혜로서의 사람보는 눈은 크게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평가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사람을 보는 데는 더한층 지속적이고 일관된 혜안이 필요하다. 국민들은 특히 집권 3~4년차 이후 국정의 피로도가 몰려올 때 그 똑똑하던 대통령의 눈이 흐려지는 경우를 많이 봐왔었다.
 
만약 어떤 간신이 있어서 이제부터 대통령의 눈에 좀 띄고 싶어 한다면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일까.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평생의 한이 맺힌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어서는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이런 심리적 급소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공과 논쟁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예민한 모습을 보인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뿐만이 아니다.
 
5공 시기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음덕을 입은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모습에 대해 언짢은 심정을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최근 들어 갑자기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한다면서 도심 한복판에 공원을 짓고 관련 지역을 단장한다는 소식이 빈발하고 있다. 이런 일을 펼치는 자치단체장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환심만을 사려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인가.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 사람들이 벌이는 ‘박정희 재평가’ 사업의 충심을 판단하는 몇가지 기준을 적용해 봄직하다. 우선, 그 사람들이 2013년 들어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2년 이전에는 왜 그런 일들을 벌이지 못했을까.
 
또 하나는, 그 사람들이 만들고 단장한 공원이나 기념시설물들이 과연 2018년 이후에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고민을 해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발상이라면, 오로지 대통령의 눈길 한번 끌어보려는 자들은 아닌지 의심을 해 봐야할 것이다.
 
서울 중구 신당동의 유명한 떡볶이 동네 버스정류장 이름이 한때 ‘박정희 대통령 가옥’으로 변한 적이 있다. 정류장 이름은 얼마 후 다시 ‘신당동 떡볶이 타운’으로 다시 바뀌었지만 지지정당을 떠나 지금 이름으로 바꾼 것을 비판하는 주민은 거의 없다.
 
애초에 무슨 역사나 공항도 아닌 동네 버스정류장에 전직 대통령 이름을 갖다 붙일 때부터 “유난을 떤다”고 꼬집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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