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일호 경제부총리.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는 데 굳이 한국은행 발권력을 써야겠다고 매달리는 일부의 주장은 여전하다.

참으로 보기가 씁쓸하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가.

원칙에 어긋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현실적으로 그게 타당하다는 확실한 논리도 없다. 게다가 한국 경제는 발권력 잘못 썼다가 수 십 년 골병든 사례까지 있다.

오로지 한 가지 장점이라면, 국회가 꼬치꼬치 따지는 걸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어서 거기에 집착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한국 경제를 위한 장점이 아니라 당국자들 심기 편안을 위한 장점일 뿐이다.

또한, 책임 제대로 져야할 사람을 국회와 국민의 심판으로부터 감추기 위한 의도가 아닌지도 의심된다.

최근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주필은 ‘한국은행 발권력은 그런데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이 칼럼에서 그는 정부는 어디까지나 정도를 걸어 정정당당한 심판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행여 국회가 발목을 잡아 기금 조성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정부의 책임이 아닌 정치권의 책임이요, 정부는 거기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번 맞는 얘기다. 금융이 경제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력을 아는 분들의 얘기는 모두 한결같다.

지금 상황에서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칠 정도로 발목 잡는 정파가 있기도 어렵지만, 그걸 미리 핑계로 내세워 정도 아닌 길을 가려는 것이 더욱 우려되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21일자 주간금융브리프 금융논단에는 눈길 가는 내용이 들어있다.

지난 2000년 말 76조3000억원이었던 국채 발행잔액이 2015년 말 551조5000억원으로 대폭 확대됐다는 것이다.

국채시장은 1998년 유통시장의 발행이 탄생 계기가 됐다.

당시 14조원의 자금이 필요한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면서 이를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행사해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당시 한은의 수장이었던 고 전철환 총재는 이를 거부하고 유통시장에서 발행할 것을 강하게 권유했다.

이것이 효시였다.

지금 한국의 금융에서 채권시장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등 떠밀리듯이 시장에 유통시킨 14조원 국채였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종자돈이 돼서 지금 550조원의 시장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이야 어찌됐든 채권시장 개척의 1등 공신은 바로 재정경제부, 즉 지금의 기획재정부 관료들 아니겠는가.

이런 성공신화를 남긴 사람들이 어찌해서 지금은 한은의 등 뒤로 숨어가려는 모습만 보이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현실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왕 조성하는 돈이라면 시장의 부가가치를 생각했을 때 국채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는지 모르겠다.

금융시장에 좋으니까 무작정 국채를 발행한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지만, 기왕 필요한 돈이라면 논의의 출발부터 국채에 비중을 뒀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회의 승인 절차와 논란은 당연히 감수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것을 회피하려고 무슨 곶감이나 떨어질 것 같은 ‘양적완화’라는 경우가 맞지 않는 용어까지 동원됐지만 이제 그 실체는 다 드러난 마당이다.

1998년과 지금이 사정이 크게 다른 점은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카리스마의 부재다.

1998년 당시는 외환위기 직후 새로 집권한 김대중 정부가 전폭적인 국민지지를 받으며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었다.

지금의 정부도 출범 때는 반대 성향 국민들 상당수도 ‘집권의 대세’를 인정할 정도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참 많이 변했다. 최근 총선을 치른 후에는 더욱 국정의 추진력이 위축된 모습이다.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졸속편법에 기대면 거기서 파생되는 또 다른 부실은 또 어찌할 건가.

‘한국판 양적완화’와 같은 현혹스런 어휘의 껍질은 모두 벗겨진 마당이다.

이런 논란을 지속할 바엔 차라리 정정당당한 국채 발행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급할수록 천천히 가면서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 아닐까.

지금 발행하는 ‘유일호 본드’가 20년 30년 후의 최고 인기 상품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전 사례로 봐서 그만한 가능성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상식과 현실에 부합한 길이 있는데, 엉뚱한 길을 자꾸 찾아가려는 행색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런 행색으로 무슨 큰 일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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