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지난주 기준금리 인하까지 '자동문' 비판받는 건 자업자득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위기 극복의 노력으로 그런 교훈이 상당부분 현실에 도입됐다.

안타까운 것은 그 교훈들 가운데 일부는 정치적 이유로 흔들릴 때가 많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좌파 정책을 없앤다’는 주장에 슬쩍 외환위기 교훈 때 얻은 ‘제대로 된 우파들’의 경쟁 보장 정책이 섞이기도 한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지금도 이어지는 것들도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중앙은행 수장인 한국은행 총재의 4년 임기보장이다.

1998년 4월 고 전철환 총재가 취임한 후 20년 가까이 한은 총재의 해임이나 사퇴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다.

전 총재 이전에는 한은 총재의 임기를 다 채운 사례도 매우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설령 채웠다 해도 그다지 평이 좋은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전철환 총재의 재임은 4년 1회에 그쳤지만, 그가 한국의 금융시장에 보여준 지도력은 당시 절정의 카리스마를 누리던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에 못지 않았다는 평가다. 덕택에 오늘날에도 후임 총재들이 임기만큼은 철저히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국난에서 벗어나면서 금융역사를 새로 쓰는 마당에 만약 전철환 총재가 확고한 한은 총재의 위상을 심어주지 않았다면, 한은 총재 자리는 지금도 4년은 커녕 ‘높은 분들’의 1~2년 회전문 인사 용도로 쓰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후일담에 의하면, 전철환 총재 또한 임기 중 경질될 뻔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2000년 4월 당시의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이 총선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은 후다. 당시 몇몇 장관급 인사들이 유난히 짧은 시기에 경질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총선 두 달 전에 한국은행은 금리를 인상했다. 이것이 핑계를 찾는 정치권에 ‘좋은 미끼’가 됐던 모양이다. 한국 현실에서 금리를 올려서 여당이 졌다기보다는, 3년째 지속되는 위기 극복과 개혁의 피로도가 다소 누적이 된 가운데 일부 집권세력의 기고만장함이 반대표를 결집시킨 것으로 봐야 마땅했다. 여당은 야당의 고정지지층이 자신들보다도 훨씬 더 탄탄하다는 기본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전철환 총재는 과연 금리를 올릴 때 자신이 경질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전철환 총재가 부임 후 보여준 모습은 어떻게 보면, 당장 내일 해임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일 정도였다. 이전의 사고방식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는 정부가 요구한 14조원의 국채 인수도 거부했고, 외환위기 출자 때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거기다 지금의 경제부총리에 해당하는 재정경제부 장관마저 총선에 차출되는 마당에 금리까지 올렸다.

한국의 현실에서 이런 결정은 기관의 수장이 자신의 자리를 각오하지 않으면 내리기 힘든 것이다.

전철환 총재는 ‘처신의 결벽증’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졌다. 조금이라도 의혹이 생긴다면 그 길은 쳐다보지도 않고 멀리 돌아갔다. 한은 총재 임기가 끝나도 교수의 정년이 되지 않는데, 부임과 함께 그는 충남대 교수직도 사퇴했다. 학교 측에서는 본교의 교수가 한은 총재인 점이 학교 위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교수직 유지를 권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털끝의 시비라도 걸릴 소지가 있다면 그는 바로 물러났다.

만약 정부에서 총재를 바꾸기 위해 그의 인품에 조금이라도 손상을 내려했다면 그는 두 말 안하고 먼저 물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는 오히려 그가 2002년 퇴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적자금관리 위원장으로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이해가 엇갈리는 세력들을 조정할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 고 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재의 재임 중 모습.


전철환 총재가 매순간 자리를 걸고 통화정책에 임한 덕택에 오늘날 한은 총재의 위상은 전에 비할 수 없이 높아졌다.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서별관 회의’라는 곳에 불려 다니는 현실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정부와 할 얘기가 있다면 경제부총리와 만나면 되는 것이지, 뭣하러 중앙은행 수장이 일개 부처 장관 행세를 하는지... 나라의 비용이 들어가는 의전 면에서 장관 예우를 받는다고 해서 처신도 장관처럼 해도 되는 게 중앙은행 총재 자리가 아니다. 국회의원들 의전이 ‘차관급’이라고 해서 국회의원들이 장관 앞에서 차관행세를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9일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이번의 금리 인하는 시장친화적인 측면에서는 전에 없이 한은이 노력한 측면이 보인다. 이미 두 달 전인 4월의 ‘통화정책 방향’에서 시장에 금리 인하 가능성을 더욱 높게 전달했다.

그럼에도 금리인하의 뒷맛이 아주 떨떠름하다.

이유는 바로 전날의 일이다. 기획재정부와 한은이 조선부문 구조조정을 위해 한은이 10조원, 기획재정부가 1조원을 동원하기로 합의했다.

발권력 동원을 내주고나서 그 다음날 금리마저 인하한 꼴이 됐으니, 정부 요구는 다 들어주는 ‘자동문 중앙은행’이란 눈총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모처럼 시장친화적으로 노력한 것도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기자는 이 주제에 대해 여러 차례 기왕 필요한 돈이면 국채를 통해 발권력의 남용을 피하고 오히려 금융시장을 풍부하게 하는 길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몇몇 저명한 선배 언론인들께서도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국채를 발행할 때 국회의 심사 과정이 까다롭기는 하겠지만 국민들의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는 그것이 올바른 길이다.

전철환 총재가 18년 전, 임명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자신의 총재 자리를 걸고 국채 인수를 거부하면서 관철시킨 것이 바로 국채발행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 앞서 남긴 명언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는 말이다.

전철환 총재가 남긴 정책 행적을 살펴보면, 전 총재야 말로 자리에 연연하지 않음으로써 자리를 지켜냈던 분이다.

그가 떠난 후의 한은 총재들은 과연 자신들이 이 분의 후임자임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주 토요일인 18일, 이 글을 쓰는 날의 내일은 전철환 총재가 2004년 돌연 이 세상을 떠나신 12주기가 되는 날이다.

기자는 앞서 글을 쓰는 힘이 남아 있는 한, 독자들께 전철환 총재의 얘기를 계속 전해드리겠다고 했었다. 그의 얘기가 더 이상 기사로서 주목할 필요가 없는 그런 날이 온다면 기사가 아닌 블로그의 글이나 수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해가 갈수록 전철환 총재 이야기를 되새겨봐야만 하는 그런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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