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 사진=뉴시스.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25] ‘투기세력’이라 불리는 달러 매수자들이 1996년 8월14일 기습적으로 820원을 넘기면서 시장을 마감시킨 것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광복절 휴일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진압’은 됐지만, 환율 수준은 확실히 올라가 있었다. 14일 이후 815원선을 넘는 건 당연지사가 됐고 818~819원대의 좁은 범위에서 오르내렸다.

820원에 이르게 되면, ‘시위자’들이 알아서 질서를 외치듯 스스로 ‘해산’했다. 살벌한 진압장벽이 버티고 있는 것을 누구나 다 알았기 때문에 맨 앞에 나서서 도전해 볼 엄두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앞장서서 820원에 달러를 샀는데 막강한 개입이 나와서 815원까지 떨어뜨리면 그 손해를 뭘로 감당하나.

하지만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무시하지 못한다. 매달 무역적자가 1년 전에 비해 세 배, 네 배로 늘고 있었다. 시장에 달러가 들어오지 않았다.

개입은 무섭지만, 당장 필요한 달러는 사야할 것 아닌가. 달러가 없다고 해서 수입업체가 원화로 수입대금을 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은행은 수입업자들의 달러 ‘사자’ 주문을 “지금 달러 없어요”라고 뿌리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래서 맨 앞으로 나설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뒤로부터 밀리는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진압선에 다가가는 일이 매일 반복됐다.

그나마 이것이 1997년 위기 직전과의 차이다. 1997년 가을에 이르면 당국의 시장 개입은 유일한 달러 공급선이 돼서, 누구나 이를 배급받으러 앞다퉈 달려가는 막장이 펼쳐졌다.

내 원달러일기에 자주 등장한 단어가 ‘큰 손’ ‘대형(大兄, Big Brother)’ 때로는 ‘님’이다. 모두 외환당국과 시장 개입을 의미했다.

2015년 그리스 경제위기에서 문제가 됐던 것은, 환율 조절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스는 유로존에 통합되면서 본래의 드라크마 대신 유로를 쓰고 있다.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1994년 멕시코와 1997년 한국처럼 자국 통화의 절하를 통해서 새로운 균형을 찾는 것이 가장 확실한 위기 진정방식이다. 그러나 그리스는 유로를 쓰고 있어서 이 방법을 쓸 수 없다.

한국은 1996년 경상수지 적자를 원화 절하를 통해 시장에 반영하는 것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에 이르러 내리는 사후 약방문이다.

하지만, 원화의 절하는 중요한 댓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국민소득 1만 달러의 포기다.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시점이었다. 이런 때 정권의 최대 치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소득 1만 달러 포기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수용해야 할 원화 절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1996년 말 한보, 1997년 초 기아 사태를 맞게 됐다. 이제 세계는 한국 경제에 대해 경상수지 적자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강의 기적’ 시절부터 등장한 한국 재벌들과 금융의 부실한 연계까지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논하는 시점보다는 뒤의 일이다.

수급의 원리로는 진작부터 끝났어야 할 820원 공방은 9월에도 지속됐다.

9월 둘째 주의 월요일 최저가부터 818.90원으로 한국 경제의 ‘발열’이 한층 더 심해졌음을 보였다.

다음날인 10일, 오후 들어 다시 진압벽을 두들기는 시도가 있었다. 며칠 잠잠했더니 또 몸이 근질근질한가 싶었다. 의외로 반응이 없었다. 개입이 없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시도가 있었다. 역시 반응이 없었다. 더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진압선이 물러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했다. 나중에 개입이 나와서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 딜러의 도리였다.

마감 때까지 환율이 상승을 지속했다. 마감가가 그날의 최고가가 됐다. 822.0원이었다. 6월20일 800원선이 무너진 후 2개월20일 만에 820 모자(Cap)도 벗겨졌다.

“○○ 믿고 일 못하겠네.”

시장이 끝난 후 어느 딜러가 토로한 한 마디였다.

대형은 이렇게 한마디 예고도 없이 단단히 쌓았던 보루에서 물러났다.

그날 나의 원달러 일기 제목은 ‘벗겨진 모자와 님의 침묵’이었다.

1996년 7월 외환보유액은 350억6000만 달러다. 8월에는 335억6000만 달러, 9월 328억4000만 달러로 계속 줄었다.

외환보유액 규모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작다. 그 와중에도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는 것이 820을 둘러싼 8월 한 달의 공방을 보여주고 있다. 원달러일기에서 비유적으로 언급한 ‘다탄두탄’은 1억 달러에 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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