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 정비의 핵심... 그것은 곧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보호'

경제적으로 갑에게도 이익이 되고 을에게도 득이 된다고 해서 갑-을간 공정거래 풍토가 무시돼선 안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한 갑을관계 설정시 우리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역점을 둬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갑-을 간의 불공정한 먹이사슬 끝엔 비정규직 차별이 존재하는 만큼 이 문제를 개선하는 것 또한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아울러 갑을 관계의 맨 끝에 있는 자영업자들에 대한 보호대책도 서둘러 마련해애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지난 6월13일 동반성장연구소(이사장 정운찬, 전 총리)가 서울 역삼동 스칼라티움에서 개최한 ‘갑의 횡포, 을의 눈물 끝낼 수 있는가?’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이런 문제들이 중점 논의돼 눈길을 끌었다.

 

정운찬 이사장은 심포지엄 인사말을 통해 “정의의 원칙은 공정함과 평등의 문제에 관련된다”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결정하는 도덕적 기준은 모든 사람에게 사회적 혜택이나 부담이 공정하게 분배되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특히 “생산적인 사회는 ‘차등의 원칙’에 따라 불평등을 수용하되, 모든 사람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장 어려운 형편에 처한 구성원들의 처지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는 존 롤스의 ‘정의론’을 중점 언급했다.

정 이사장은 따라서 “우리 사회가 조속한 동반성장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불공정한 갑을폐해는 깊어지고, 사회양극화는 심화되며 사회구성원간의 갈등 또한 확산돼 종국적으로는 국가생산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또 “갑을관계가 공정하고 대등한 국가일수록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한다“고 덧붙였다.

메디슨 창업자인 카이스트의 이민화 교수도 ‘동반성장사회로 가는 길’이란 발제를 통해 “공정사회 구현이야말로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라고 운을 뗐다. 이 교수는 그러나 “한국의 경우 상대적 빈곤감, 자영업자 자립기반 제도 미비, 과도한 공교육비 및 주거비 등의 요인으로 인해 사회통합지표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들을 치유하려면 연간 300조원이라는 막대한 통합비용 지출을 요한다”고 역설했다.

이민화 교수에 따르면 사회의 질이 최상위인 국가는 ‘과감한 창의성 경쟁’을 하는데 반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소극적 위험회피 경쟁’을 벌이고 있다. 또한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의 균등과 공정한 규칙인데 우리 사회엔 여전히 인맥주의와 부정부패, 학벌주의가 만연해 공정경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갑을문화에서 혁신과 공정성을 기반으로 하는 창조문화로의 이행이 시급하다. 아울러 원칙의 공정성, 절차의 공정성, 결과의 공정성 등 3대 공정성 원칙이 반복되는 선순환구조가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성장이 없는 공정은 도태되므로 공정의 선순환은 분배의 동적 균형에 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이 되면 성장과 공정은 함께 진화하는 현상이 있다”고 강조했다.

노회찬 전 국회의원(진보정의당 공동대표)도 토론회에 참석해 “경제민주화를 통해 완화시켜가야 할 사회 양극화는 경제민주화의 두 수레바퀴인 ‘분배의 정의’와 ‘시장(市場)의 정의’가 함께 설 때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면서 “분배의 정의보다 시급한 것은 시장의 정의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자영업은 곧 중산층 붕괴의 현장”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자영업자들들이 겪는 두번째 난관은 갑의 횡포와 이를 관행화해온 제도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노 전의원은 또 무엇보다 ‘시장(市場)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시장, 즉 ‘노동시장에서의 정의’는 상대적으로 논의도 관심도 적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가장 많은 을(乙)들이 존재하는 노동시장에서의 갑을문화 개선은 단순히 ‘반듯한 일자리’시범 창출로만은 해결될 수 없다고 했다. 비정규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근본적인 갑을관계 개선책이 선행될 때만이 ‘노동시장에서의 탈출’을 막고 자영업의 숨통도 틔워 줄 것이라는 게 노 전의원의 주장이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소속의 김성태 의원은 “어느 한 단계에서의 갑․을 관계에 매몰되기보다는 갑-을 모두상생하는 공정한 거래질서 시스템과 동반성장 문화를 만드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현재 언론에 주로 보도되는 내용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혹은 대리점을 비롯한 영세자영업자 간의 관계이지만 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있는 것은 계약관계의 마지막 단계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밀어내기나 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이 중소기업 또는 자영업자에게 가하는 압박은 고스란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따라서 ”시간제 일자리 근로자도 임금, 근로조건에서의 부당한 차별 없이 일할 수 있도록 갑을 문화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면서 ”갑-을간 먹이사슬의 끝에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경제연구원의 황인학 연구위원은 심리학과 게임이론의 예를 들어 왜곡된 갑을관계의 폐해를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예를 들어 갑이 절대적 이득을 취해도 을에게도 이득이 되는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거래가 왜 문제냐는 식으로 갑의 항변이 제기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이익(효율성)만 따지지 않고 공정성 판단을 하며, 비용과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공정함을 실현하려는 의향이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황 연구원은 강조했다. 모든 갑을 관계에서 당사자들은 경제적 합리성만을 가지고 거래관계를 설정하면 예기치 못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며, 스스로의 영속적 발전을 위해서라도 갑을 문화를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게 황 연구원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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