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함께 한국 수출시장의 양대 축을 형성했던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최근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미국에서 지난 5월중 현대-기아자동차가 다른 경쟁국 자동차에 밀린 것으로 나타났는가하면 유럽시장에선 한국자동차를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시장에선 일본자동차를 비롯한 수입자동차업체들이 가격파괴를 무기로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어 한국 자동차 산업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자동차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획기적인 경제개혁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일감몰아주기를 시급히 개선함으로써 공정거래질서를 확대할 때만이 한국자동차의 기술 및 가격경쟁력이 회복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울러 국산차 업체들이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서비스를 시급히 개선하지 않을 경우 국내 소비자들의 외제 수입차 선호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美 자동차 시장...미국-일본-독일차 날고 한국차는 부진
   
최근 미국 자동차 시장이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양적완화 덕분에 시중에 돈이 넘치고 금리 또한 크게 낮아지자 미국 사람들의 자동차소비도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미국의 소비경기를 보여주는 대표 지표인 소매판매 실적이 2개월 연속 증가세를 나타낸 가운데 자동차소비가 소매지표 향상을 이끌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5월 소매판매가 전달에 비해 0.6%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고 6월13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는 시장전문가들의 예상증가치(0.4% 증가)를 웃도는 수치로, 전달(0.1%증가)보다도 증가폭이 커진 것이다. 항목별로는 자동차 판매가 1.8%나 늘어 지난 11월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다시말해 미국 자동차 호황이 미국 소비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지난 5월 미국시장의 자동차 판매가 호조를 보인가운데 미국과 일본, 독일 자동차 회사는 쾌재를 부른 반면 한국의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부진을 면치 못해 대조를 보였다.
 
미국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선 미국의 포드사가 전년 동월대비 14.1%, 크라이슬러는 11%의 높은 판매증가율을 나타냈다. GM의 경우도 3.1% 증가했다. 특히 포드의 픽업트럭이 날개를 달았다. 전년동월대비 무려 30%가 넘는 판매증가율을 나타냈다. 이와관련, CNBC는 미국 건설-주택경기가 좋아지다 보니 픽업트럭의 판매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CNBC에 출연한 짐 파들리(포드사 전무)는 “최근 소비자들의 신차구매의향이 늘고 있는 가운데 경차판매와 픽업트럭 판매가 동시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차 업체들도 5월중 높게 날았다. 닛산은 지난해 5월 대비 무려 24.7%의 판매증가를 나타냈다. 또 도요타는 2.5%, 혼다는 4.5% 각각 증가했다. 

독일차도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폴크스바겐은 4%, 다임러는 8.3%, BMW는 10.1%나 늘었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 자동차시장 호황에도 불구, 한국자동차 업체들은 나홀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미국시장에서 지난 5월중 전년 동월 대비 고작 1.6% 증가한 12만685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현대차는 2% 늘어난 6만8358대, 기아차는 1.1% 증가한 5만2327대를 팔았다. 이로써 현대-기아차의 미국차시장 점유율도 5개월만에 상승세가 꺾였고 작년 보다도 하락했다.

현대-기아차의 이같은 판매증가는 업계 평균 8.1%증가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5월중 미국 자동차 시장에선 총 144만3311대가 팔리며 3개월 연속 100만대를 돌파했다. 경기 호전에 대한 기대감에다 통화당국의 양적완화로 인한 시중 유동성 급증, 그에 따른 초저금리, 그리고 고용지표 개선, 안정적인 유가 등이 자동차 판매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 자동차 ‘빅3’가 픽업트럭 등 대형차 위주로 판매를 늘리고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업체들이 가격할인으로 물량을 쏟아 붓는 가운데, 현대-기아차만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소외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기아차가 기록한 1.6% 판매 증가율은 판매량 상위 10개 업체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올해 전체 누적 판매로 환산해도 현대-기아차는 작년 동기 대비 유일하게 마이너스 판매 증가율(-1.4%)을 기록했다.

판매부진여파로 시장 점유율 또한 지난해 8.9%에서 5월엔 8.4%로 하락했다. 월 기준 4개월 연속 상승하던 점유율도 꺾였다. 이에반해 포드(16.2%→17%)와 크라이슬러(11.2%→11.5%), 닛산(6.9%→7.9%) 등은 지난해 보다 점유율이 오르고 있다.

이같은 미국 판매 부진과 관련해 현대-기아차측은 물량 부족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여기에 현대차는 지난달 국내에서 수출하는 물량마저 감소했다. 주력 모델들의 노후화도 수출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쏘나타는 지난 2009년, 아반떼는 2010년에 출시된 모델이다. 경쟁업체 대부분이 올해 신차를 출시한 상황에서 현대차는 구형 모델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국내서도 외국차 파상공세중=미국 독일 일본자동차가 현대-기아차를 위협하는 것은 비단 미국시장 뿐만이 아니다. 국내시장에서도 현대-기아차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이런 가운데 수입차 업체들의 국내판매증가도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지난 5월중 국내 수입차 판매량이 3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 판매 대수를 기록했다. 이에따라 가뜩이나 엔저 타격을 받고 있는 국내 완성차 업계의 불황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5월 수입차 신규등록대수는 1만3411대로 집계됐다.전년 동기 대비 14.5% 증가한 것이다. 이는 지난달 기록한 월 판매 최고 기록을 또다시 경신한 것이며 전월과 대비해서도 0.7%나 증가한 수치다.

국내수입차 시장은 15개월 연속 월 1만대 이상의 판매실적을 기록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했으며 올들어 5월까지 누적 등록은 5만1661대로 집계됐다.

브랜드별로 보면 독일차가 특히 선전하고 있다. 독일차 중에선 BMW가 2663대로 1위를 차지했고 다음은 메르세데스-벤츠(1995대), 폴크스바겐 (1952대), 아우디(1632대)의 순이었다. 다른 나라 차 중에선 토요타(1314대), 포드(657대), 렉서스(521대), 혼다(467대)가 두드러진 판매실적을 나타냈다.

베스트셀링 모델은 BMW 520d(768대)로 8개월 연속 1위를 차지했고, 토요타 뉴 캠리(707대)가 특별할인 프로모션으로 2위에 올랐다. 3위는 벤츠 E300(686대)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외국차 공세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데 있다. 특히 일본차들은 엔저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을 적극 공략할 예정이어서 이같은 외국차 상승세는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특히 엔저효과는 통화당국의 양적완화 시행후 8~9개월 후 본격 나타난다는 점에서 올 하반기엔 일본차 업체들의 엔저를 등에 업은 공세가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말에야 일본은행의 양적완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브랜드들의 파격적인 가격 공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를 더해갈 전망이다. 여기에다 지난 5월 한국토요타가 대대적인 할인 마케팅을 통해 판매량을 크게 늘리자 한국닛산과 혼다코리아도 이에 동참키로 해 국내 자동차 업체들을 더욱 가슴 졸이게 하고 있다.

특히 한국 닛산은 럭셔리 브랜드 인피니티의 2014년형 G25를 기존보다 570만원이나 내린 3770만원에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가격이다. 인피니티가 국내에서 3000만원대 차량을 판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피니티는 G25의 가격을 크게 내렸지만 편의사양을 줄이지 않았기 때문에 고객들의 관심이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혼다코리아도 하이브리드 모델인 CR-Z를 50대 한정으로 900만원까지 내린 2500만원에 판매하는 등 할인 공세에 가담했다. 시빅 유로도 300만원을 할인해준다.

한국닛산과 혼다코리아가 할인 공세에 가세한 데는 한국토요타의 영향이 컸다.

한국토요타는 지난 5월부터 주력 차종에 대해 300만~400만원의 할인을 실시한 결과 톡톡한 재미를 봤다. 한국토요타는 5월중 전년동월대비 53% 증가한 1316대를 판매했다. 전월대비로는 무려 128% 늘어난 판매실적이다. 아울러 한국시장 진출 이후 월별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한국토요타는 6월에도 할인 판촉을 계속했다. 캠리와 캠리하이브리드, 프리우스는 300만원을 할인해주고 캠리 3.5모델은 400만원을 깎아줬다. 작년 11월 출시한 레저용차량(RV)인 벤자는 700만원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 2.7모델은 4020만원에, 3.5모델은 4530만원에 판매했다. 스포츠카인 토요타86 역시 700만원 할인을 적용해 3000만원 후반에 팔았고 미니밴 시에나는 현금 구매시 100만원의 할인혜택을 부여했다.

◆유럽시장도 한국 자동차 견제 강화=유럽시장도 비상이다. 특히 미국 포드사의 유럽법인은 최근 유럽연합(EU)측에 한국산 자동차 수입을 제한 할 것을 요청해 한국 자동차 업계를 긴장케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스티븐 오델 포드유럽법인 최고경영자는 “한국정부가 EU와의 교역에서 무역장벽을 두는 한 EU도 FTA(자유무역협정) 규정에 근거해 원칙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 수입을 제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스티븐 오델은 특히 “EU로 수입되는 한국차는 100만대에 이르는 반면 한국에 수출되는 유럽산 차는 이의 5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며 EU측의 결단을 부추겼다.

이와관련, EU측도 한국을 상대로 비관세장벽문제를 본격 거론키로 해 한국자동차사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국내 시장 과점 구조 외국차가 깨나=이런 가운데 현대차와 기아차중심의 한국 자동차 시장 또한 외국차 시장에 급속히 점령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간 현대-기아자동차에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같은 값이면 서비스 좋고 품질 좋은 일본차나 외제차를 사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김소림 전 자동차공업협회 상무는 “한국시장에서 외국 수입차 점유율이 대수기준으로 20%, 가격기준으로는 40%수준에 이를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또한 최근 제네시스를 구입한 전직 금융업계 CEO인 손모씨는 “최근 제네시스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해당 딜러로부터 길거리에 지나가는 차를 보고 색상을 정하라는 식의 매우 불친절한 서비스를 제공받은바 있다”며 “지금까지는 현대차를 줄곧 이용했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중소기업체 임모사장은 “외국차의 경우 오래 타더라도 소음이 많이 나지 않는다”며 “앞으로는 같은 값이면 외국차를 구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교육사업을 하는 오모 사장은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경우 서비스가 남다르다”면서 “상황이 이런데 누가 수입차를 외면하겠느냐”고 강조했다.

한편 증권전문가들은 “한국 완성차 업체들의 경우 중국 브라질 등 일부 시장에선 여전히 선전하고 있지만 미국 유럽 한국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증권전문가들은 따라서 “주식투자자들의 경우 완성차보다는 자동차부품 업체에 더 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국내 부품업체중 상당수는 현대-기아차 외에 외국 유명 자동차회사에도 부품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이유다.

◆한국자동차가 살길은 바로 “경제민주화”=외국차 업체들의 파상공세가 이어지자 현대-기아차가 2014년형 신형 모델을 ‘착한 가격’에 앞당겨 출시하는 등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외국자동차 업체는 파격할인에 나서는데 국산차 업체는 여전히 착한가격 운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입차 업체들의 파격할인 공세로 2000만~3000만원대 외제차가 대거 몰려올 경우 현대-기아차가 주도해 온 중대형차 시장도 안심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같은 값이면 외제차를 사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간 한국 자동차산업의 과점구조에 피해의식을 지녔던 고객들의 이탈도 주목된다.

그러면 한국 자동차 회사가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경제민주화가 답이다. 우선 완성차업체는 수직계열화에서 탈피해 여러 기업에게 일감을 나눠줘야 한다. 그 경우 납품업체들은 서로 좋은 제품을 싸게 공급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 그렇게 되면 완성차 업체는 싼 가격에 질 좋은 부품을 조달해 품질 높은 완성차를 지금보다 낮은 가격에 생산, 공급할 여지가 생기게 될 것이다. 이와관련, 경제개혁연구단체들은 “한국의 일부 거대그룹은 이른바 ‘기회유용’을 통해 부의 대물림을 하고 있다”며 “이런 관행에서 벗어나야 해당 기업은 한단계 더 선진화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서비스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 한국 자동차 소비자 대부분은 그동안 충성스런 현대-기아차 단골 고객들이었다. 그러나 과점체제가 지속되다보니 서비스에 불만을 느끼는 고객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 뿐 아니다. 현대-기아차 임직원들은 그동안 많은 돈을 벌어 자사 임직원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있다. 지금 현대-기아차 직원들의 연봉수준은 국내 기업 최상위권에 있다. 또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많은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는 현대커머셜 등에 출자해 놓고 많은 배당을 챙겨가고 있다. 현대커머셜의 경우 지난해 400억원대 이익을 내고 주주인 현대자동차와 정몽구회장의 사위인 정태영사장 부부 등 3명의 주주에게 무려 300억원 넘는 배당을 챙겨줬다. 또한 현대자동차 계열 광고는 정몽구 회장의 자녀들이 주주인 이노션에 상당 물량을 몰아주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등을 통해 입지를 굳혔다. 따라서 국민들을 상대로 장사해서 현대차 오너일가와 임직원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사 임직원이나 오너에게 관대했던 현대차와 기아차가 그간 국내 고객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얼마나 줬는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현대-기아차가 자기 집안식구들에게 최고 대우를 해 주는 동시에 대외 경쟁력도 최고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분명 밝히지만 국내 고객중 상당수는 한국 자동차 시장의 과점 구조가 깨져야 소비자들이 제대로된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내 시장에서 자동차산업의 독과점 폐해가 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과점 시장을 헤집고 지금 수입차 회사들이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자칫 외국차 업체에 의해 과점 구조가 깨질 수도 있는 구도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 자동차 산업이 안고 있는 현주소다. 지금 한국 자동차시장은 수입차회사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 지난 2005년 국회에 전시된 초기 한국자동차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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