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불이익은 어느 정도까지 감수해야 되나

▲ 지난해 9월3일 중국의 전승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미국의 외교를 담당하는 부처의 이름은 외무부가 아니라 국무부(Department of State)다. 언뜻 들으면 한국의 외교부가 아니라 행정안전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오해할 수 있다.

아시아 정치전문가 방세현 시사정책연구소장은 “외교가 사실은 내정의 수단임을 자백하는 명칭”이라고 꼬집는다.

똑똑한 나라든 멍청한 나라든 필연적으로 집권자는 외교를 자기 나라 민심을 끌어내는데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금도’가 있고 정도의 차이가 있다. 내부 결집력을 높이는 목적의 외교술을 누구나 다 쓴다고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외국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반대 정파를 누르기 위해서 외교를 동원하면 그에 따른 필연적 낭패를 겪게 된다. 이것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다.

외교만큼은 초당적으로 일관되게 합심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나라가 있는 것은 이 차이에서 비롯된다. 선진국과 문제 많은 한심한 나라를 구분하는 기준도 된다.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이 명분이야 말로 외교를 자기나라 민심에 묶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무슨 정책을 발표하는데 있어서 자기 나라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하다는 건데, 사실 이 명분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핑계거리나 변명거리다.

현재 한국에서는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가 최대 외교 현안이 됐다.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 단순히 우려가 아니라 이미 현실로도 나타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관련 주식들이 2일 주식시장에서 5%, 7% 넘게 폭락했다.

외교의 속성에 비춰본다면, 중국으로부터의 불이익을 피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무리 개인적으로 사드가 중국과 무관한 것으로 이해를 한다고 가정해도 외교에서는 무의미하다. ‘중국 코앞에 미사일을 놓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중국 대중에게 설명할 것인가.

사드에 따른 중국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중국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처를 잘 했다는 모습을 중국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명분 거리를 주는 것만이 해결책이 된다. 물론 중국 정부는 사드를 없던 일로 돌리는 것만이 그런 해결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외교에서 상당히 많은 해결은 시간과 함께 이뤄진다. 자연스런 시간의 흐름이 곧 명분의 축적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그 나라 국민이 넘지 못할 선으로 여긴 것에 관한 문제라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역사 감정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최근 뉴스 흐름에 보면 중국은 사드 배치에 따른 반대급부를 이미 확보하는 조짐도 보인다. 어느새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갈등이 잠잠해졌다. 중국과 같은 큰 나라가 사드 이후 상황을 결정이 난 뒤에야 대응에 나설 리가 없다. 일정부분은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그에 따른 대응도 이미 시작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대중들이 이해하기 힘든 저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한중 문제를 해결하는 명분이 되지는 못한다. 설령 미 · 중 사이에서 수면 아래 ‘빅딜’이 있다한들 이것을 어떻게 대중들한테 대놓고 설명하겠는가.

무슨 깊은 사정이 있기에 한국 정부가 이렇게 대뜸 큰 ‘카드’를 소진하는 결정을 했는지 납득이 쉽게 되지는 않는다. 특히 지난 해 자금성 문루 위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기념식 우대를 받고 올 정도로 한중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밀접했다. 이런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있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작정 ‘원칙이 어떻고’ 하면서 밀어붙였을 것으로 우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정부가 이 정도 단세포 결정을 했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일개 서생이 상당히 ‘올드 스타일’로 상상하자면, 핵심 외교사절은 여러 번 왕래를 했을 것이다. 한반도의 패권은 한 번도 무기나 군사기지로 결정된 적이 없다. 말 그대로 ‘덕을 얻은 사람’의 천하에 한반도는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단순히 강한 군사력에 대한 굴복과는 거리가 멀다. 병자호란과 그 후의 북벌추진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북벌운동이 사라진 것은 효종 승하보다도 중국 대중들이 청나라 통치를 받아들인 때문이다. 당사자 중국인들이 용인하는 새 왕조를 조선이 무너뜨리겠다는 명분도 불가능하지만, 중국인들 동참 없는 북벌은 진정한 의미의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됐다.)

이런 역사 속에는 한반도 정치 역학의 속성이 담겨 있다. 미국은 몰라도 한국과 중국의 전문가들은 충분히 공유하고도 남을 내용이다.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지만, 지금 한국 정부는 사드 배치를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국 상품의 중국에서 판매가 줄고 경제교류가 위축되는 부작용을 그대로 감수할 모양이다.

이 부작용이 너무 크면 한국에서도 사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커질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중국이 훗날을 생각하지 않고 극단적 선택을 할 때일 것이다. 별로 현실성은 없어 보이는 얘기다. 중국의 대중정서를 의식한 강경한 발언들은 앞으로도 많이 나오겠지만, 그게 모두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외교는 카드를 빨리 소진하는 쪽이 불리해지는 법이다.

이미 중국은 이런저런 향후의 흐름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국제 정세에서 상대역인 미국도 사드에 따른 반대급부를 의식 안할 수 없다. 남중국해 갈등이 뉴스 헤드라인에서 뜸해진 것이 사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강대국 간의 외교는 남의 영역에 먼저 한 발 들인 사람이 절대 유리한 것이 아니다. 그 발이 묶인 형상이 되기 쉽다. 그 이상의 양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어떻든 서로를 인정하는 상대는 절대로 끝장승부나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다.

구차한 얘기지만, 아시아개발은행(AIIB) 부총재 자리에서 한국인이 망신스럽게 쫓겨난 것이나 한국 외교부장관이 중국에서 무례한 대접을 받은 것이 아주 약간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망신살은 북 치고 장구 치면서 뻗칠수록 더욱 효과가 크다.

1990년대 초 미국이 일본에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을 때, 하시모토 류타로 무역상(훗날의 총리)이 미키 캔터 미국 대표가 들고 있는 일본도에 목을 들이대는 이미지를 보여준 건 협상 테이블에 여러 가지 효과를 가지고 왔다.

그래도 ‘꼼수’는 한계가 있다. ‘망신살 자초 코미디’는 궁극의 해결이 못되고 국격의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

한국에 배치한 미국 무기가 절대로 중국 사람들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피해는 피할 길이 없다. ‘반대급부’에 해당하는 많은 지출도 뒤따를 것이다.

이러한 불이익의 총량 규모가 대중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면 사드 배치를 강행한 사람들에게는 책임 규명의 시기가 몰아닥칠 것이다.

그건 지금 정치하는 쪽에 있는 사람들이 상관할 문제고. 수출이나 한류 사업처럼 중국과 관련한 사람들은 어떤 경우든 이게 절대 파국이 아니라는 확신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외교는 사실 내정’이라는 방세현 소장 말처럼 자기나라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과정의 연속이기도 하다. 국민 정서를 앞세운 강경한 조치가 나온다면 우회해 가는 길 찾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쪽에서 중국 지도층들에게 대중을 상대하는 데 좋은 ‘명분거리’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이런 시기는 상당히 길어질 것이다.

좋은 ‘명분거리’를 찾으려면 외교부 공무원들이 밤 새워서라도 많은 자료를 찾아내고 상황분석을 해야 할 것이다. 사드와 같이 중요한 외교카드를 거리낌없이 소진했을 때는 이런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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